[머니 인사이트]
-정책에 따라 희비 엇갈린 터키와 인도
-경제가 잘못 가고 있다면 투표로 바꿔야


[한경비즈니스=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경제면의 헤드라인을 매일 정치인이 장식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 하나에 글로벌 증시가 반응하고 보리슨 존슨 영국 총리의 발언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나리오가 수정된다. 독일 경제가 순항할 때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개혁정책은 지지를 받았지만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자 비난을 받고 있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과감한 개혁은 잠든 프랑스를 깨워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는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부유세 축소 등 감세를 선택했다. 기업은 투자를 늘리고 높은 실업률도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할 수 없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 진영이 내걸었던 캠프 슬로건이다. 시골 촌구석 아칸소 주지사 출신 클린턴 후보가 미국의 불황을 적시해 경력 면에서 훨씬 압도적이던 조지 부시 당시 후보를 이겼다. 선거에서 경제의 중요성을 예로 들 때 여전히 인용되는 사례다. 선거나 정치적 싸움에서, 특히 미국에서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승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 경제가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다.

◆재정 개혁 실수로 ‘잃어버린 20년’ 만든 일본

하지만 오늘은 그 반대의 이야기다. 경제에 미치는 정책의 영향이다. 경제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만큼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1930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이후 정부의 역할에 대한 비중 차이는 있지만 정책은 경기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돼 왔다.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할 때 미국의 사례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로비스트는 자신을 고용한 정치인을 위해 여든 야든, 좌든 우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대외 정책은 더욱 그러하다. 경제성장과 미국의 이익이라는 큰 줄기 안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없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과 건강보험을 강조했다고 해도 한국에 대한 관세 부과와 제조업의 리쇼링(생산 시설을 본국으로 다시 이전)은 동일하게 시행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도 시장의 예상을 벗어난 발언이 나오기는 하지만 건강보험 등의 정책을 없애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굳이 선진국 중 정책으로 인한 경제 변화를 찾는다면 2000년대 초반 일본의 사례가 적절하다. 일본의 2000년대 초반은 정책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에서 ‘잃어버린 20년’이 되는 시작점이다. 잘 알고 있듯이 일본의 민간 부문은 1980년대 후반 버블 붕괴 이후 일제히 채무 변제를 시작한다. 1995년부터 단기금리가 거의 제로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로 자금을 빌리기는커녕 채무 변제를 우선시한 사회가 일본이다. 버블 붕괴라는 트라우마는 채무 변제라는 지극히 올바른 행동을 자극했지만 경제 전체로는 올바르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국가 경제 내에서 누군가는 저축이나 채무 변제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금융 시스템으로 유입된 자금을 빌려 사용하지 않으면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모두가 채무 변제만 하면 그만큼 경제의 총수요는 감소한다.

일본 기업의 수요가 1990년에서 2003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22%나 축소되는 동안 그나마 일본 경제를 버틴 것은 정부다. 기업 부문이 연간 30조 엔(약 333조6120억원) 이상을 채무 변제에 사용하는 동안에도 GDP가 버블 절정기 수치를 계속 웃돌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GDP 대비 10% 이상 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축 지향의 사회에서는 정부가 건전화를 시행하면 불황의 깊이가 커지고 길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실수를 일본 정부가 보여줬다. 2001년 4월 출범한 고이즈미 내각이 재정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최대 국채 발행 규모를 30조 엔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펼쳤다. 밸런스시트 불황 속에서 무리하게 재정지출을 축소한 결과 경기는 침체되고 세수는 감소했으며 재정 적자는 되레 확대됐다. 일본의 법인 부문은 2001년 GDP 대비 6.9%의 저축 상태를 2003년 10%까지 수요를 줄여버렸다. 1990년에서 2003년까지의 기간 동안 일본 경제가 버틴 원인이 정부 정책 때문이었다면 2001년 이후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가 다시 시작된 이유도 정부 정책 때문이다.

◆좌파 포퓰리즘에 위기 닥친 멕시코

정책 방향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이머징 국가가 훨씬 더 크다. 경제성장률 변화의 폭이 크고 집권 세력에 따라 정책 방향성이 극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터키는 2년 전만 해도 신흥시장 경제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다크호스로 꼽혔다. 하지만 에르도안 집권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우려가 높은 위기국으로 분류된다. 이슬람권 내에서 가장 서구화됐고 민주적이었던 터키는 역설적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이슬람 중심의 정의개발당에 정권을 내주고 이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재자로 변신한다. 부패하고 구태한 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정권 교체였지만 경제는 위기 상황에 내몰려 있다.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다’…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인도는 반대의 상황이다. 전통적인 카스트 사회에서 상위계급인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가 아닌 중간 이하의 신분에 불과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늙은 인도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모디 총리는 구자라트 주의 경제성장에서 이미 능력을 보여줬고 이후 2014년에 이어 2019년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모디 총리는 30년 만의 첫 단독정부를 구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전 정부와 다른 정책 추진력을 갖게 됐다. 모디 총리 이전 인도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각 주별로 결정권이 강하다 보니 총리의 결정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다’…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2014년 모디 총리 집권 이후 인도는 세계에서 성장이 가장 기대되는 국가 중 하나가 된다. 물론 정책의 집행 과정이 지도권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인도가 바꿔야 할 시스템과 제도가 많고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변해야 될 부분도 많다. 하지만 결국 성장을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근 인도의 성장률이 하락하는 구간에서도 주가가 하락하지 않는 이유는 모디 정권이 시장의 우려가 나오는 구간마다 적절한 정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안정성 우려가 부각되는 구간에서는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하게 늘리고 경기 성장 우려가 커지는 구간에서는 법인세를 과감하게 낮추는 등 커다란 틀을 바꾸지 않더라도 시장이 원하는 방향성을 적절히 자극할 수 있다면 리스크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최근 남미 경제의 움직임도 정책적인 움직임에 따른 경제의 변화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멕시코는 경제성장 기대감이 굉장히 높고 안정성이 높은 국가였다. 반면 브라질은 과거의 명성을 이루지 못하는 위기국이었다. 하지만 멕시코가 우파에서 좌파로 대통령 성향이 바뀌고 브라질은 좌파에서 우파로 바뀌면서 최근 두 국가의 경제 평가는 반대로 바뀌었다. 멕시코는 경제가 하락 추세를 보이는 반면 브라질은 지나친 연금을 개혁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시장의 기대를 받고 있다.

많은 이가 ‘한국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실은 악화 일로이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가 제대로 작동돼야 하지만 여든 야든, 좌든 우든 선거라는 이벤트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치의 무능함은 정책 부재를 의미하고 이는 선거를 통해 교정해야 한다. 당장은 정책의 유능함보다 정치의 복원이 필요해 보이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할 지향점은 분명하다. 한국 경제가 잘못 가고 있다면 다시 경제의 선순환 성장이 어떻게 가능한지 제시해 주는 정치를 선택하면 된다.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6호(2019.10.14 ~ 2019.10.2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