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인터뷰-“검찰, 권력 분산에 저항하는 것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제재 예외 필요…경제 법안, 합의 부분부터 처리”-“586, 복지· 평화 정치에서 디지털 정치 걸맞게 혁신해야”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86(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닌 50대)세대’ 정치인의 대표 주자다. ‘민주 투사’ 때와 달리 명실상부한 국정 운영의 중추적 위치에 올랐다.
그의 말대로 책임 정치의 시험대 위에 선 것이다. 그가 지난 5월 원내대표에 선출된 뒤 사법개혁안, 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 지정 후폭풍, 조국 사태 등으로 정치권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앞으로도 가시밭길이다.
‘조국 대치 전선’은 풀리지 않고 있고 사법 개혁안을 두고서도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국회에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경제 활력 법안 처리도 시급하지만 여의치 않다.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한경비즈니스와 인터뷰를 가진 그의 표정은 답답한 듯했다.
-주요 경제 법안들이 오랫동안 국회에 막혀 있습니다.
“서비스발전법은 의료 분야를 제외하면 쟁점이 없습니다. 합의되는 부분부터 먼저 처리하는 쪽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빅데이터 3법과 관련해선 개인정보보호법 분야에서 부분적인 이견이 있지만 어느 정도 정돈된 것 같습니다. 정기 국회 남은 기간 최대한 입법적 성과를 내기 위해 쟁점이 분명한 사안은 합의를 시도할 것이고 쟁점은 있지만 접근이 가능한 사안과 비쟁점 사안은 민생입법회의를 가동해 정기 국회 내에 처리할 계획입니다.”
-서비스발전법에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하리면 ‘앙꼬 없는 찐빵’이 돼 버립니다.
“‘의료 민영화’에 대한 반대도 있고 작은 병원들이 몰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보건 의료 부문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한국당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당이 총선 표에 도움 되는 것은 서두르고 도움 안 되는 것은 뒤로 미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총선 선심 행정으로 볼 필요는 없어요. 총선은 총선이고 민생은 민생이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가령 고교 무상교육,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공공기관 신속 이전 같은 것은 이해충돌이 별로 없어요. 이런 것들은 신속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국민연금 개혁 등은 이견이 많죠. 이런 문제에 대해선 사회적 공론을 통해 합의를 모아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조국 사태’에 대해 여당 내에선 책임론쇄신론이 제기됩니다.
“공정성과 검찰 개혁, 이 두 가지와 관련해 정치권이 어떻게 제도로 수렴해 국민 통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정치권이 시험대에 올라왔어요. 광장의 외침을 존중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권이 제도로 수렴해 국민 통합의 완성으로 나가야 마땅합니다.”
-국회 상황을 보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렵다고 생각은 안 합니다. 검찰 개혁은 패스트 트랙에 올라와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제도적으로 완성하고 ‘조국 사태’로 제기된 공정정의 문제 제기들은 청년들에게 교육과 취업, 주거의 공정성을 높여 나가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상실된 정의나 공정성에 대한 회의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밟아 나가면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치유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 정부가 주창해 온 정의·공정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해야 했는지요.
“검찰 개혁을 위해 두 가지가 필요했는데 하나는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이고 또 하나는 비대해진 검찰 권력을 분산하고 민주적 통제 범위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필요했던 것은 정권으로부터 검찰 독립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윤 총장 임명) 당시 솔직히 저 칼이 우리를 향해 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검찰의 독립성만큼은 확고하게 견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검찰 스스로 비대해진 자기 권력을 분산시키지 못하니 그 부분의 개혁을 위해서는 조 전 장관이 필요했습니다.”
-윤 총장 임명 당시 여당은 ‘잘 드는 칼’이라고 두둔했다가 조 전 장관 수사에 대해선 비판하는 것은 이율배반 아닌가요.
“그렇게 보지는 않아요. 검찰의 독립성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확고히 보장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비대한 검찰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민주적 통제의 범위로 돌려놓는 것에 대해 검찰이 저항하는 것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수사를 검찰의 저항으로 봅니까.
“단정할 수 없지만 검찰이 조 전 장관 인사청문회 이전에 압수 수색을 시작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검찰의 고유 권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 언론을 통한 피의 사실 유포와 별건 수사 등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 단일한 사건에 70~80회 압수 수색이 이뤄지는 과잉 수사, 심지어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과 정보가 교류되는 것들이 너무 많이 나타났습니다. 수사는 정치적 독립성을 갖고 하더라도 이런 정치 행위로 돌아가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런 얘기 자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 확보를 어렵게 하는 압박 아닌가요.
“패스트 트랙을 위반한 야당 국회의원을 수사하지 말라는 것보다 더 맹랑한 얘기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절제된 요구를 한 겁니다. 수사하지 말라는 얘기를 함부로 하지는 않습니다.”
-조 전 장관의 사퇴를 예상했습니까.
“못했습니다.”
-여당이 조 전 장관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 주변에선 없었습니다. 제가 모르면 당의 공식 방침으로 전달된 것은 없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사의를 수용한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서초동에 수십만 명의 촛불이 타올라 검찰 개혁의 시간이 앞당겨졌고 조 전 장관이 설계한 개혁의 방향, 청사진이 빨리 공개됐습니다. 조 전 장관이 사퇴해도 검찰 개혁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과정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어요.”
-조 전 장관의 퇴진을 위한 길을 터준 것이 아닙니까.
“조 전 장관 한 사람의 명예를 위해 검찰 개혁에 속도가 났다고 볼 수는 없지 않겠어요.”
-야당은 조 전 장관 사태에 대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청와대 참모진 개편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그런 얘기를 할 게 아니고 모든 정치를 정쟁으로 몰고 왔던 것을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시급한 민생과 경제 활력, 검찰 개혁 등에 대해 응답하는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여권 일각에서 윤 총장 사퇴를 주장합니다.
“당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문제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패스트 트랙에 지정된 사법 개혁안 합의가 안 되면 어떻게 할 겁니까.
“10월 29일부터 본회의 안건 상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법리적 해석입니다. 법안 처리를 위해서는 과반 찬성이 필요한데 검찰 개혁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단행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있으니 국회가 어떻게 화답해야 하는지 다른 야당들도 생각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합의가 안 되면 어떻게 할 예정입니까.
“다양한 경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황에 맞게 대응하되 최대한 빠르게, 단호하게 검찰 개혁을 해야 한다는 방침은 분명하게 견지할 겁니다.”
-정해 놓은 시한이 있습니까.
“지금 말씀드릴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설치되면 조 전 장관 수사를 공수처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야당은 ‘조국 구하기용’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안 됩니다. 검찰이 60여 일 수사했는데 그 결과가 조만간 나오지 않겠어요. 그 수사를 공수처로 가져간다는 것은 궤변입니다.”
-기존 특별감찰관제가 있는데 공수처를 만들어 수사·기소권을 모두 주는 것은 무소불위의 ‘옥상옥’이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검찰 권력의 분산과 견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됩니다. 검찰이 제 식구 봐 주듯이 기소권을 남용해 버리면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고 책임을 지지 않는 절대 권력의 영역 속에서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 공수처 설치입니다.”
-공수처장 후보를 국회에서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하고 대통령 직속이어서 중립성 우려를 불식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추천 과정에 야당도 참여하게 돼 있어 그런 과정에서 중립성 우려는 걸러질 겁니다.”
-‘조국 사태’ 이후 여당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집니다.
“조국 장관이 사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분들 중에도 검찰 개혁을 지지하는 분들도 있어요. 검찰 개혁이 성공하면 지지율은 회복될 것으로 봅니다.”
-조 전 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 얘기가 나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게 과연 (여권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판단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정치권의 ‘586세대’가 기득권이 돼 버렸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갈이 대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제 586들이 앞에서 책임 있게 운영해 나가야 하는 시점입니다. 정말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에게 디딤돌, 가교 역할도 잘하고 그들의 성장을 촉진하면서 그들에게 때로는 전략적 거점을 내줘 그들의 역할이 빛나게 하는 도움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가 잘못하면 미련 없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야 합니다.”
-이전에는 선배 정치인들의 전위대에서 지도자 위치에 올라 책임감도 막중해졌습니다.
“우리 586들은 복지의 정치, 평화의 정치, 진보와 민주 연합의 정치를 주도해 왔는데 업그레이드해 진보 정치의 어젠다를 혁신해 내야 합니다. 특히 디지털 경제, 4차 산업혁명이 오고 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삶과 정치 형태가 바뀌는 것에 걸맞은 디지털 정치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40대 후배들에게 가교가 돼 주는 역할 못지않게 2030세대들에게 다리디딤돌이 돼 줘야 합니다. 우리가 달라지지 않으면 이미 달라진 삶을 살고 있는 2030세대와 연대하고 소통할 수 없습니다.”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국정 운영 기조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기본적인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포용 성장의 길을 포기할 것이냐, 대기업중소기업 동반 성장, 기업주와 노동자의 상생 협력을 포기할 것이냐….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혁신 성장을 얹고 남북 관계가 개선돼 경제 협력의 길이 열려 평화 성장의 길이 더해지면 2%대 저성장에서 3%대 중성장 단계로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평화 성장 거론은 낙관적 아닙니까.
“북한이 처한 내부 경제 발전 단계가 이전과 다릅니다. 북한이 낮은 단계에서 중간 수준의 상업화 단계로 올라서고 있다고 보는데 그것을 뒷받침하려면 최소한 산업화 과정이 시작돼야 합니다. 늦어도 내년 초까지 비핵화와 제재 문제, 평화 구조 문제를 타결하지 못하면 산업화 단계를 뒷받침하는 게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중국 의존적인 길을 갈 수밖에 없는데 그건 북한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민족적으로는 지금부터 5년, 10년 지나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이 본격화될 때 남북한 간 어떤 협력과 연합적 힘을 가지고 있느냐가 장기적 민족 운명과 관련해 굉장히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한이 남북한 대화를 거부하고 잇단 미사일 도발에 나서고 있는데 남북한 경협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까요.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정도는 제재 예외로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비핵화 과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변 핵시설을 폐기해 나가는 것에 상응해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연락소 설치, 종전선언 등 조치를 취해 나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북한이 핵을 다 폐기한 다음 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것보다 현실 가능하고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고리로 비핵화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북한이 과거에도 번번이 합의를 깼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완전한 신뢰, 완전한 불신보다 중간 정도의 신뢰, 불신 정도가 더 현명하고 지혜롭습니다.”
-제재 해제에 대해 미국이 반대합니다.
“미국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때보다 조금 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접근을 시작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7호(2019.10.21 ~ 2019.10.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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