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겉도는 퇴직연금 200조]
-2005년 첫 도입, 올해 200조 돌파…DC형·IRP 수익률 1%도 못 미쳐

[편집자 주=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는 나라가 됐다. ‘장수’가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노후 수입원이 확보돼야 한다. 전문가들마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으로 쌓인 3층 연금 탑을 강조하는 이유다. 3층 연금 탑 가운데 주춧돌을 담당하는 퇴직연금은 사실상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퇴직연금 챙기기를 뒷전에 미뤄 두기 일쑤다. 기업과 직장인들의 ‘퇴직연금 문맹’은 퇴직연금의 ‘쥐꼬리 수익률’로 이어진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퇴직연금 시장은 급속도로 그 덩치를 늘려 가고 있다. 노후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 ‘퇴직연금’, 이대로 둬도 괜찮은 걸까. ]
적립금 쌓이는데 수익률은 ‘쥐꼬리’…퇴직연금, ‘노후 안전판’이 흔들린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인류의 평균수명이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인류에게 가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노후 소득’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연금’이다.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서는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의 3층 연금 탑이 탄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중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해당되는 ‘퇴직연금’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들어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정작 수익률에는 잇달아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적립금 쌓이는데 수익률은 ‘쥐꼬리’…퇴직연금, ‘노후 안전판’이 흔들린다


◆2022년부터 전 사업장 의무 도입


퇴직연금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2005년 12월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노동자의 안정적인 노후 자산을 위해 ‘기업’이 금융회사에 퇴직금을 적립하도록 하고 기업 혹은 노동자가 그 적립금을 운용해 향후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수령하도록 한 것이다. 노동자로선 적어도 ‘퇴직금’을 떼일 걱정은 덜 수 있는 것이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적립금 운용의 주체가 되는 확정 급여형(DB형), 노동자가 운용 주체가 되는 확정 기여형(DC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때 노동자가 퇴직 혹은 이직 시 퇴직금을 수령 받을 수 있는 ‘주머니’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개인형 퇴직연금(IPR)이다. IRP는 퇴직금 외에 노동자 개인이 추가 납입을 통해 다양한 투자 상품을 운용할 수 있다.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현재 매우 빠른 속도로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18년도 퇴직연금 적립 및 운용 현황 분석’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90조원으로, 2017년(168조4000억원)과 비교해 12.8%(21조6000억원) 정도 늘어났다. 2016년 이후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해마다 10% 이상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9년을 기점으로 가뿐히 200조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 퇴직연금 시장이 이토록 빠르게 커질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김상일 미래에셋생명 법인영업본부 수석매니저는 “먼저 정부 차원에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기업들에 다양한 세제 혜택을 제공했다”며 “특히 공기업 경영 평가에 퇴직연금 제도의 유무가 평가 사항에 반영되면서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IRP의 가입 대상이 확대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에는 퇴직 일시금을 수령한 퇴직자나 퇴직연금에 가입된 직장인만 IRP 가입 대상이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자영업자와 근속기간 1년 미만인 노동자, 퇴직연금 제도 미도입 회사의 노동자, 군인 등 특수 직격연금 가입자 등도 IRP 가입이 가능해졌다. 사실상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전 국민이 가입 대상자가 된 것이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퇴직연금은 향후 더욱 가파른 속도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부터 10인 이상 30인 이하 사업장도 퇴직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 된데 이어 2022년부터 10인 미만 사업장도 퇴직연금을 의무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DC형 시장의 규모가 빠르게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금감원이 발표한 2018년 퇴직연금 현황에도 나타난다.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DB형의 비율은 감소세를 보이는 반면 DC형과 IRP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DB형과 DC형의 비율은 2016년 1 대 0.35였던 것과 비교해 2018년에는 1 대 0.41로 나타났다. 아직은 DB형의 비율이 높지만 DC형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김 수석매니저는 “DC형의 비율이 높아지는데 특히 임금피크제가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퇴직급여의 손실을 막기 위해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는 노동자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적립금 쌓이는데 수익률은 ‘쥐꼬리’…퇴직연금, ‘노후 안전판’이 흔들린다


◆수익률 1%대, 원금 보장형 쏠림 심화


문제는 수익률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퇴직연금의 연간 수익률은 1.01%에 그쳤다. 2016년 1.58%, 2017년 1.88%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1.5%)에도 못 미친다. 2016년 이후 지난 3년간 퇴직연금 수익률이 2%를 넘지 못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제도별 수익률 현황을 비교해 보면 심각성을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기업이 노동자에게 지급할 퇴직금을 ‘보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DB형은 퇴직연금의 수익은 운용 주체인 기업에 귀속된다. 그러므로 노동자에게 수익률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DC형과 IRP다. 2018년 DB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1.46%를 기록했다. 이와 비교해 DC형의 수익률은 0.44%, IRP의 수익률은 0.39%에 그친다. 퇴직연금 적립금 상위 10개사 가운데 2019년 3분기 공시된 퇴직연금 수익률을 비교해 봐도 DC형에서 2%를 넘어선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 기조에 주식시장의 부진까지 더해진 결과다.


설상가상으로 향후 퇴직연금의 수익률 전망은 더욱 어둡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의 운용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190조원의 적립금 중 원리금 보장형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171조7000억원으로 90.3%를 차지한다. 실적 배당형의 운용 비율은 18조3000억원으로 전체의 9.7% 정도다. 2016년 6.8%, 2017년 8.4%와 비교해 실적 배당형의 비율이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비율의 10%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원리금 보장 상품은 대부분 예·적금을 편입해 수익을 낸다. 금리가 수익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0월 16일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치인 1.25%로 낮췄다. 지금처럼 원금 보장형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초저금리 시대에 애초의 수익률을 높이기 어려운 운용 구조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국내에서 왜 이토록 심각하게 ‘원리금 보장형’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선 퇴직연금의 운용 주체가 되는 기업과 노동자들의 ‘퇴직연금 문맹’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국내 퇴직연금 제도의 역사는 2005년 도입 이후 이제 막 14년째를 맞았다. 1981년 401K라고 불리는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미국 등과 비교해 역사가 매우 짧은 편이다. 오랫동안 ‘퇴직금’ 제도에 익숙해져 있었던 만큼 퇴직연금 제도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욱이 DB형·DC형 등 복잡하기만 한 용어를 낯설어하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적립금 쌓이는데 수익률은 ‘쥐꼬리’…퇴직연금, ‘노후 안전판’이 흔들린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강조되는 것이 노동자들에 대한 ‘퇴직연금 교육’이지만 이조차 거의 태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는 ‘회사가 알아서 해주겠지’, 기업은 ‘연금 사업자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생각에 퇴직금 운용을 맡겨 놓은 채 나 몰라라 하는 곳이 적지 않고 상대적으로 주식 등의 비율이 높은 실적 배당형보다 예·적금의 비율이 높은 원리금 보장형으로의 쏠림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최근 들어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금융권의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 또한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50.7%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권의 경쟁이 치열하다. 퇴직연금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는 것은 물론 별도의 전담 부서를 만들어 퇴직연금 수익률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선 곳들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연금 사업자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퇴직연금 관리에 나선 기업들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이랜드가 대표적이다. 퇴직연금 전담 부서를 만들어 연금 사업자의 수익률과 운용 전략 등을 꼼꼼히 비교한다. 연금 사업자가 퇴직연금 ‘황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기업들이 늘어날수록 수익률을 비롯한 퇴직연금 운용에 더욱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미국·호주 등만 하더라도 퇴직연금을 기반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주식 등에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며 “최근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퇴직연금에 대한 기업과 노동자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커버스토리=겉도는 퇴직연금 200조 기사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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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8호(2019.10.28 ~ 2019.1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