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미국이 발표할 환율 보고서에 촉각…한국·일본이 중국에 이은 후보국
‘환율 조작국’ 지정,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한경비즈니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당초 1250원 이상 올라갈 것이라던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50원대로 급락해 온통 난리다. 가장 큰 요인은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위안·달러 환율이 달러당 7위안 밑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원·달러 환율은 위안·달러 환율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안·달러 환율 움직임에 최대 변수는 미·중 간 무역 협상에서 위안화 환율 조작 방지 명문화 여부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플라자 합의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중심으로 각국 간의 국제수지 불균형 문제가 세계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미·중 간 무역 마찰의 바로미터다. 마찰이 심화되면 ‘절하’, 진전되면 ‘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가장 우려해 왔던 무역에서 시작된 마찰이 본격적으로 금융과 연계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미·중 간 마찰은 세계경제에 이어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하반기 이후 숨 가쁘게 벌어졌던 미·중 간 마찰 과정을 살펴보면 직접적인 발단은 중국의 태도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수세적’ 자세를 보였던 중국이 미국의 기대와 달리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당황한 미국은 지난 9월 1일부터 잔여분 3000억 달러(1차 340억 달러 25% 보복관세, 1차 2000억 달러 등 두 단계로 나눠 25% 보복관세 부과) 상당의 중국 수출 상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더 이상 보복관세 부과로 맞대응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던 중국으로서는 ‘1달러=7위안’, 즉 포치(破七)선 진입을 허용했다. 무려 11년 만의 일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포치선 진입은 안 될 것으로 봤다. 중국으로서도 실익이 크지 않다. 금융 위기 이후 다섯 차례 붕괴될 위험을 맞을 때도 중국 인민은행은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 되살아난 ‘환율 조작의 악몽’


막상 뚫리자 충격이 컸던 국가는 미국이었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맞서면 지난 2년 동안 주력해 온 보복관세 효과가 무력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정수지 적자를 채워 줄 관세 수입도 줄어들게 된다. 내년 11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명타를 입게 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곧바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역플라자 합의 이후 사라졌던 ‘환율 조작의 악몽’이 되살아나 중국 이외 다른 교역국에도 충격을 줬다.


‘2015 교역촉진법’에 따라 새롭게 적용된 BHC(베넷-해치-카퍼) 요건으로 환율 조작국에 해당하는 환율 심층 대상국으로 지정되려면 △대미 무역 흑자 200억 달러(약 23조원) 이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이상 △외환시장 개입이 지속적이고 그 비용이 GDP의 2%가 넘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중국은 첫째 요건만 걸려 있다. 오히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기 이전의 중국 지위인 ‘환율 관찰 대상국’에서도 빠졌어야 한다.


BHC 요건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공약은 어떤 경우든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작업을 검토해 왔다.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 근거는 ‘1988년 종합무역법’이다. 종합무역법에는 △대규모 경상수지흑자 △유의미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 중 한 가지 요건만 걸려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마디로 미국 마음대로 환율 조작국에 지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됨에 따라 미국은 첫 제재 조치로 ‘위안화 절하’ 대응 수단으로 찾아낸 상계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에는 중국이 위안화 대폭 절하 등과 같은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301조를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슈퍼 301조는 의회 승인 없이 행정명령으로 100%의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다.


앞으로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가 국제 금융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하해 대응하고 미국도 달러 약세로 맞대응하면 글로벌 환율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볼 보듯 뻔하다. 세계경제도 1930년대에 겪었던 대공황을 재차 겪을 가능성이 높다.
‘환율 조작국’ 지정,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 트럼프 정부와 신뢰 관계 구축 중요


중국은 무역과 환율과의 비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 대응적 요소 등을 감안한 현행 환율 제도에서는 전일 경제지표가 부진하면 ‘절하’, 개선되면 ‘절상’해 고시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중국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어 그 자체가 마찰과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미국의 공분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은 중국도 위안화 절하가 불리한 점이 많은데 실제로 행동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하는 경상거래 면에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자본거래 면에서는 자본 유출을 초래해 금융 위기 우려가 높아진다. 위안화 국제화 등을 통해 중국의 대외 위상을 높이는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위안화 절하’에 가장 명료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달러 약세’다. 하지만 초기에 나타나는 ‘J’ 커브 효과 때문에 대선을 치르기 이전까지 중국과의 무역 적자가 오히려 확대돼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 쉽게 가져갈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글로벌 화폐 발행 차익(seigniorage)이 줄어들고 달러 자산의 평가 손실도 커지는 부담도 있다.

미국과 중국 간 처지를 감안할 때 1985년 플라자 협정처럼 대폭적인 위안화 평가절상을 유도하는 제2 플라자 체제가 태동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양국의 체면과 국익을 반영하는 수준(sweet spot)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환율구조 모형 등으로 추정된 위안·달러 환율은 달러당 6.7위안 내외로 나온다. 지금 3~4% 더 하락한 수준이다.


중국에 이어 어떤 국가가 환율 조작국에 지정될 것인지가 한국 경제의 또 하나의 관심사다. 후보국을 꼽는다면 고질적인 환율 관찰 대상국 가운데 이미 지정된 중국과 역학 관계상 지정이 불가능한 독일을 제외하면 한국과 일본뿐이다. BHC 요건대로라면 경상수지 흑자 요건만 걸려 있는 한국이 대미 무역 흑자, 경상수지 흑자 등 두 가지 요건이 걸려 있는 일본보다 낮다.


하지만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때부터 적용된 1988년 종합무역법 요건대로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하면 한국 정부의 낙관론과 달리 환율 조작국에서 지정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중국도 한 가지 요건만 걸렸다가 지정됐다. 트럼프 정부와 신뢰 관계를 사전에 얼마나 구축해 놓느냐가 중요하다. 일단 상처가 나면 사후적으로 어떤 치료법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잘 아물지 않는 것이 뉴 노멀 시대에 냉혹한 국제 관계의 현실이다. 미국과 관계 개선이 필요한 때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0호(2019.11.11 ~ 2019.11.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