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1251호 (2019년 11월 20일)

“취업률 100%…회비 모아 ‘대우 정신’ 품은 글로벌 인재 육성하죠”

기사입력 2019.11.18 오후 02:55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 인터뷰]
- 9년째 동남아 4개국서 ‘김우중 사관학교’ 운영
- 글로벌 인재 1000여명 배출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약력 : 1945년생. 서울대 섬유공학과 졸업. 1972년 상공부 근무. 청와대 경제수석실 근무. 재무부 장관 비서관, 1979년 대우그룹 부장 입사. 대우 무역부문 부사장·사장 역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현).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약력 : 1945년생. 서울대 섬유공학과 졸업. 1972년 상공부 근무. 청와대 경제수석실 근무. 재무부 장관 비서관, 1979년 대우그룹 부장 입사. 대우 무역부문 부사장·사장 역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현).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어느덧 대우그룹이 해체(1999년)된 지 20년이 흘렀다. 해체 당시 대우는 41개 계열사를 보유한 재계 2위의 글로벌 그룹이었지만 현재는 모두 공중분해됐다.

대우건설·대우전자·대우조선해양 등 굵직한 기업들이 아직 대우라는 간판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모두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거나 새 주인을 찾는 중이다.

그렇다고 대우그룹의 정신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09년 전직 대우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버티고 있다. 비영리단체 조직인 이곳은 과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경영 정신과 대우그룹이 축적해 놓은 조직 시스템이 역사에 묻히지 않도록 승계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사업(GYBM)’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경제·산업을 이끌 ‘차세대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 양성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일명 ‘김우중 사관학교’로 불리며 올해로 8년 차를 맞고 있다.

2011년 베트남에서 처음 시작해 지금은 미얀마·인도네시아·태국으로 교육 지역을 넓혔다. GYBM 출신이 어느덧 1000명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설립하고 GYBM 사업을 출범시킨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구 대우 사장)을 11월 11일 서울역 앞 대우재단빌딩에서 만났다.

▶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어떻게 설립하게 됐나요.
“미련과 아쉬움 때문이죠.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세월이 조금씩 지나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대우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대우가 품고 있는 경영 정신, 대우의 임직원들이 추구했던 세계 경영 노하우 등을 과거에 묻어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몇몇이 모여 ‘친목 단체라도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한 것이 여기까지 왔네요.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대우인들이 하나둘 모이다 보니 어느덧 회원이 4700명을 넘어섰네요. 이 중 500명 정도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고 해외 지회가 37곳에 이릅니다.”

▶ 동료와 선후배들은 자주 보나요.
“개별적으로 만나는 것은 제외하고 공식적으로는 매년 3월 22일 모입니다. 이날이 대우그룹 창립 기념일이거든요.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서 행사를 갖고 김우중 전 회장을 비롯해 300~400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 GYBM 프로그램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GYBM은 김우중 전 회장의 아이디어예요. 2010년 창립 기념행사에서 제안하셨죠.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 그리고 한국의 산업·경제에 꼭 필요한 글로벌 인재 육성을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취지였죠. 이날부터 바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교육을 할까’ 회원들의 많은 아이디어를 모아 결국 ‘한국과 함께 번영의 길로 나갈 수 있는 나라를 선정해 현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2011년 베트남 GYBM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해를 거듭하면서 사업이 커져 현재는 베트남을 비롯해 미얀마·인도네시아·태국 등 4개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취지가 너무 좋습니다.
“김 전 회장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청년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커요. GYBM은 김 전 회장이 주창한 ‘세계 경영’과도 맞닿아 있어요. 1993년 김 전 회장이 세계 경영을 선언할 당시 전 세계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어요.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 소련연방이 붕괴되면서 우리로서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셈이거든요. 베트남도 그중 하나였어요.”

▶ 그런데 왜 동남아시아 국가들인가요.
“이미 경제적·산업적으로 성장한 중국·일본·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특별한 기술이나 아이디어 없이는 어려워요. 하지만 동남아는 틈새시장이 존재하죠. 특히 동남아에는 각 나라마다 수천~수만 개의 국내 기업들이 진출해 있지만 한국 직원들을 구하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그렇죠. 그렇다고 아무나 쓸 수 없어요. 한마디로 수요는 있지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졸업생들의 미래나 성장 가능성을 봤을 때도 동남아 국가에 기회가 더 많습니다. 동남아 지역 나라들의 경제·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동남아 지역에서는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요.”

▶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어떤가요.
“일단 현지 취업률만 놓고 이야기하면 100%입니다. 현지 언어나 문화, 현지 사정에 맞는 직업 교육을 현지에서 수개월 동안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 졸업생을 찾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이미 졸업한 선배들의 활약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고요. 우리 졸업생이 얼마나 인정받는지는 지금 이들이 받는 연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처음 교육 시작할 때 평균 3000만원대의 연봉을 받았는데 지금은 5000만원 이상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GYBM 출신은 몇 명이나 되나요.
“2018년까지 1000여 명을 선발해 수료생 전원을 현지에 취업시켰습니다. 올해도 태국을 제외한 3개국에서 총 150명을 선발해 지난 7월부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교육비 지원은 100%인가요.
“100%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비롯한 몇몇 기관에서 받은 50% 그리고 우리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후원금으로 50%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 1인당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되나요.
“약 2000만원 정도 들어갑니다. 사실 이 비용도 여러 동료들과 강사들의 재능 기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고요. 일단 한 국가에 GYBM 연수생을 보내려면 현지 대학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합니다. 현지 대학은 현지어와 현지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나머지는 우리가 교과 과정을 마련해 진행합니다. 베트남은 국내 2개월, 현지 9개월로 총 11개월 동안 교육을 합니다. 100~150명을 교육하려면 이들과 24시간 함께하며 관리할 인력이 필요해요. 연수원장 자격을 갖춘 사람도 필요하고요.”

▶ 지원자가 많나요.
“경쟁률이 3 대 1 정도 됩니다. 국가마다 다른데 베트남은 경쟁률이 조금 더 치열하고 미얀마는 조금 약하죠.”

▶ 지원자들을 뽑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일단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마음가짐이 갖춰진 친구를 뽑습니다. 현지에 나가 뿌리를 내리겠다는 열정과 간절함이 있는 친구들을 말이죠. 사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 출신은 잘 안 뽑아요. 이들에게는 다른 기회도 많거든요. 지원도 거의 하지 않지만요. 그 대신 지방대 출신을 많이 뽑습니다. 국내 취업 시장이 좁아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 교육의 강도가 높은가요.
“굉장히 힘듭니다. 일단 육체적으로 힘들죠. 아침 5시 30분에 기상해 밤 10시까지 교육이 이뤄지는데, 보통 밤 12시나 돼야 잠을 잘 수 있어요. 공부해야 하니까요. 애들은 죽을 지경이지요. 전체의 5~7%가 중도 탈락하기도 해요.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나면 그들이 스스로 변하는 게 보입니다. 이런 강도 높은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은 어느 곳을 가도 성실하고 끊기 있는 자세를 보이게 됩니다.”

▶ GYBM을 운영하면서 아쉬운 것은 없나요.
“많은 기업들이 우리 GYBM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8년 동안 한다고 했는데 졸업자를 1000명밖에 배출하지 못했어요. 훨씬 더 많은 인력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해야 하는데 말이죠. 해외에서 활약하는 우리 인력들이 많아질수록 네트워크가 좀 더 정밀하게 만들어지게 되고 한국의 힘이 세지겠죠. 또한 이들 중에 ‘제2의 김우중’이 나와 창업하면 또 몇 십 만 명을 고용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1호(2019.11.18 ~ 2019.11.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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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11-21 1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