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Ⅱ]
- 하루 이자 수천만원에 사업 계획 변경만 14차례
- 롯데의 책임감이 만든 도시
500명 주민이 2만 명으로…‘원주기업도시’에 일어난 기적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논과 밭 그리고 산자락이 전부였던 곳에 도시가 들어섰다. 논이 있던 자리에는 기업이 터를 잡고 밭과 산자락에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 시설이 대거 들어섰다. 가로등이 없어 해가 지면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던 곳이 지금은 휘황찬란한 도심의 야경을 뽐낸다.

500명도 채 살지 않던 이곳에 지금은 2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터를 잡았다. 이곳은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계속해 기업과 공장이 들어서며 고층 건물이 쑥쑥 올라가고 자동차와 사람이 뒤엉킨다. 바로 원주기업도시다.
500명 주민이 2만 명으로…‘원주기업도시’에 일어난 기적
“웬만한 도시 못지않죠?”
원주 지식 기반형 기업 도시 개발 사업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 ‘원주기업도시’의 김종수 개발사업팀장이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눈으로 쫓으니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상업 시설 그리고 넓은 부지에 시원시원하게 자리 잡은 기업들이 보인다. 그의 말처럼 여느 신도시 못지않다.

원주시 지정면 가곡리·신평리 일원의 총면적 527만8000㎡ 부지에 사업비 1조원이 투입돼 조성된 원주기업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11월 19일 찾은 원주기업도시는 지금도 곳곳에 세워져 있는 펜스 내부에서 시끄러운 공사 소음이 들려오고 도로에서는 대형 트럭들이 건설 자재를 쉼 없이 실어 나르고 있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사는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고 정비 중인 구역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끊겨 때로 스산한 정막이 흐르기도 하지만 머지않아 시끄러운 공사 소음이 울려 퍼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1~2년 후면 비어 있는 곳곳에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채워지면 첨단 산업 거점 도시의 위용을 뽐낼 것으로 보인다.

◆ 롯데가 완성한 ‘명품 도시’
500명 주민이 2만 명으로…‘원주기업도시’에 일어난 기적
원주기업도시는 100% 롯데건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주기업도시의 시작은 2004년 ‘기업도시특별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당시 정부는 국가 균형 발전 방안으로 공공 기관들의 지방 이전을 핵심으로 하는 ‘혁신도시’와 민간 기업의 주도로 산업 연구·개발(R&D) 시설과 주거·교육 시설을 복합 개발하는 ‘기업 도시’를 추진했다.

2005년 7월 기업 도시 시범 사업 지역으로 전국의 6곳이 선정됐다. ‘미래형 첨단의료·바이오산업의 중추’라는 목표를 내세운 원주기업도시가 여기에 포함됐다. 이후 2008년 10월 착공식과 함께 본격적인 도시 조성에 나섰다.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암초를 만났다. 시범 사업지 6곳 가운데 전북 무주군과 전남 무안군이 잇따라 기업도시 포기 선언을 하는 등 곳곳에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원주기업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부 출자자가 사업 참여에 난색을 표했고 일부 금융 출자자들은 서둘러 발을 빼기도 했다. 초기 분양 실적도 극도로 저조해 사업 추진이 잠시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급기야 원주기업도시의 최대 출자자이자 시공사였던 롯데건설은 2010년 12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다른 건설사들의 지급 보증까지 전액 책임진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추가 금융 조달 등을 통해 총사업비 약 9750억원 가운데 절반가량인 45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하루 이자만 수천만원에 이르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효율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 특수목적법인 원주기업도시 실무진을 롯데건설의 핵심 인력으로 채웠다. 그동안 파견 형태로 원주기업도시에 간 롯데건설 임직원 수만 20여 명에 이른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말부터다. 원주기업도시의 성공 여부는 기업 유치가 절대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롯데건설 측은 기업 유치팀과 외부 용역 등을 통해 공단 밀집 지역을 다니며 기업 유치에 공을 들였고 그 결과 2011년 11월 지식산업용지에 3곳의 기업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2012년부터 이들 기업이 속속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기업 도시 분위기가 조성됐다. 원주기업도시가 탄력을 받은 것은 2016년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원주기업도시 인근을 지나는 제2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국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제2영동고속도로 개통은 기존 2시간 이상 걸리던 원주기업도시와 서울 간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실제로 이날 원주기업도시를 방문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 도심에서 출발해 원주기업도시까지 가는데 소요된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였다. 송파·잠실·분당에서는 1시간 내외가 소요된다.

원주기업도시 관계자는 “제2영동고속도로 개통은 천운이었다”며 이때부터 기업들의 입주 문의가 이어졌고 적자가 예상된 사업이 호전되기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원주기업도시의 성공을 단순히 도로 개통이라는 호재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그 과정에 기업과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롯데건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실제로 롯데건설은 원주기업도시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금까지 개발 계획과 실시 계획 변경을 총 14차례 진행했다.

◆ 충주기업도시보다 유치 기업 많아
500명 주민이 2만 명으로…‘원주기업도시’에 일어난 기적
현재(11월 19일 기준) 원주기업도시의 지식산업용지의 분양률은 76%다. 총 41개 필지 중 4개 필지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는데 이 필지는 대기업 유치를 위해 통분양을 추진했던 곳으로, 대지 면적이 넓어 아직까지 선뜻 나선 기업이 없는 상황이다.

비록 100% 분양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원주기업도시에는 22개 기업이 입주해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5개 기업이 공장이나 사옥을 건설 중이다. 분양이 완료돼 착공을 앞두고 있는 필지는 총 13곳으로 조만간 이곳 역시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입주 기업체 현황은 MCC·누가의료기·성이바이오·애플라인드·씨앤디·제테마·인성메디칼·은성글로벌·아시모리코리아·비씨월드헬스케어·더마펌·현대메디텍·리디스푸드·다림바이오텍·진양제약·네오플램·한라케미칼·은광이엔지·비알팜·쉬크·중부발전·유성엔비텍 등이다.

설성식품·SW신원화학·영남유리산업·서울F&B·바텍 등 5개 기업은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입주 기업체와 입주 예정 기업의 업종별 현황도 퀄리티가 높다. 원주가 첨단의료·바이오산업의 중추라는 명성에 걸맞게 의료기기 기업 9곳, 제약 기업 8곳이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이고 식품(4곳)·의류(2곳)·일반제조(14곳)·기타(3곳) 업종의 다양한 기업들도 자리하고 있다.

특히 원주기업도시는 첨단의료·바이오산업 스타트업들의 요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주의료기기종합지원센터 지원에 힘입어 40여 곳의 스타트업들이 이곳에서 R&D를 진행하고 있다.

원주기업도시는 현재 조성됐거나 조성 예정인 기업 도시들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2012년 충주기업도시 이후 전국에서 둘째로 준공됐지만 충주기업도시보다 내실은 더욱 알차다. 충주기업도시는 완공된 지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현재 18개 기업이 입주해 있는 반면 원주기업도시는 벌써 22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업 수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 기업이 많이 들어서는 만큼 계획 인구 역시 충주기업도시를 압도한다. 충주기업도시의 계획 인구는 2만910명인 반면 원주기업도시는 3만1788명에 이른다.

앞으로 조성될 4개 기업 도시들도 원주기업도시와 견주기는 역부족이다. 우선 내년 준공이 예정된 태안기업도시는 현재 공정률이 47%에 머무르고 기업 유치도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삼호기업도시(2020년 준공 예정)·삼포기업도시(2021년 준공 예정)·구성기업도시(2025년 준공 예정)도 별반 차이가 없다.

원주기업도시의 흡입력은 기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거주민들의 유입도 엄청나다. 원주기업도시 조성 이전 500여 명에 머물렀던 거주민은 현재(11월 10일 기준) 1만 9062명(7769가구)까지 늘어났다. 지난 10월 31일 조사 당시 6192가구, 거주민 1만5981명이었으니 불과 10일 만에 1577가구, 3081명의 거주민이 늘어난 것이다.

원주기업도시의 가구 수와 거주민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12월에 롯데캐슬 골드파크 1·2차 1160가구가 입주를 시작하며 2020년 1월 반도유보라 1·2차 1342가구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2020년 6월에는 이지더원 2차 776가구가 입주민맞이에 들어가며 1522가구가 들어서는 이지더원 3차도 조만간 착공에 들어간다. 이 밖에 원주기업도시에서 분양한 단독주택 부지도 계속 착공에 들어가고 있어 인구 유입은 한층 더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 롯데캐슬의 힘, 주거 도시를 만들다
500명 주민이 2만 명으로…‘원주기업도시’에 일어난 기적
원주기업도시가 주거 도시로 각광받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롯데건설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파워가 한몫했다는 평가다.

원주기업도시 시범 단지로 2015년 분양에 나선 롯데캐슬 더 퍼스트는 원주시 전체에서는 처음 선보인 롯데의 브랜드 아파트로, 원주시 분양 시장 최초 청약 1순위 당해 지역 마감됐고 계약 나흘 만에 전 물량이 주인을 찾아 최단기간 완판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롯데캐슬을 찾는 예비 청약자들의 요청으로 롯데건설은 2017년 추가로 부지를 매입해 롯데캐슬 골드파크 분양에 나섰고 역시 최고 경쟁률 18.71 대 1로 전 주택형이 1순위에서 마감되는 저력을 보여줬다.

롯데건설이 선봉에 선 원주기업도시의 1만 가구에 가까운 분양 시장은 대부분 1순위에서 청약이 마감되는 등 호황을 보였다.

안봉수 원주기업도시 6BL(롯데캐슬 골드파크 2차) 공동주택 현장소장은 “현재 분양 시장이 좋지 않은데도 원주기업도시에는 입주를 타진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며 “롯데캐슬 골드파크는 약 3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원주 구도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마트 시티 조성도 주거 도시로 각광받는데 한몫했다. 원주기업도시는 스마트 시티 조성을 위해 롯데정보통신의 기술력을 총동원했다.

도로에 설치된 카메라로 도시정보센터에서 실시간 교통량을 확인하고 상황에 맞춰 원격으로 신호를 제어함으로써 차량 통행이 원활하도록 만든다. 또한 물건을 도난당하거나 화재·사고 발생 시에도 신속하게 대처한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비상 호출 버튼을 누르면 도시정보센터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버튼 위에는 CCTV가 가로등 형태로 설치돼 통화를 하며 현장 영상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 서비스는 입주민뿐만 아니라 입주 기업에도 제공된다. 사람 건강과 직결된 의료기기는 아무리 간단한 기계라도 국가별로 각종 인증과 허가 제도가 상이해 기업이 어려움을 느낀다.

원주 의료기기테크노밸리에 입주한 기업은 자신이 개발한 의료기기 국제 인증은 물론 필요한 연구 장비까지 통합 포털에서 손쉽게 지원받는다.

아쉬운 점도 있다. 급격히 늘어나는 거주민 수에 비해 공공시설이 아직 부족하다. 2만 명에 가까운 거주민이 살고 있지만 지구대·119안전센터 등의 부재로 치안 사각지대에 놓였고 교육·행정 복지 시설 등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주거·상업·공업지역이 어우러진 복합 자족형 도시로 내년 말까지 아파트와 주택 입주가 완료되면 주민 수만 3만 명(계획 인구)에 달하는 만큼 관련 시설의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 [인터뷰] 신재삼 원주기업도시 총괄본부장
- “아쉽지만 절반의 성공…이제부터가 중요”
500명 주민이 2만 명으로…‘원주기업도시’에 일어난 기적
원주기업도시 준공식(11월 6일)이 유독 특별하게 다가온 사람이 있다. 바로 신재삼 원주기업도시 총괄본부장이다. 롯데건설 소속으로 원주기업도시로 파견 나온 그는 벌써 이곳에서 1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원주기업도시 사업이 2005년 시범 사업으로 최종 선정된 이후 2008년 공사에 착공했으니 원주기업도시의 모든 태동 과정을 함께한 그다. 첫 삽을 뜨자마자 글로벌 외환위기 여파로 사업이 중단됐고 사업의 진행 여부마저 불투명했지만 그는 계속 이곳에 남아 사업을 타진했다.

좌초 위기를 넘어 성공적인 사업을 일궈낸 그지만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는 성공이지만 기업 도시 개발로는 절반밖에 이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 본부장은 “기업은 곧 도시의 얼굴”이라며 “수원은 삼성, 울산은 현대, 포항은 포스코를 떠올리는 것처럼 원주기업도시도 하나의 기업을 떠올리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도권에 있던 중견·중소기업들을 원주기업도시에 유치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나 고용 창출 등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아쉽지만 절반의 성공”이라고 덧붙였다.

신 본부장은 원주기업도시의 성패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롯데건설은 건물을 짓고 도로를 까는 도시의 하드웨어만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생기 넘치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치안·교육·문화 등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남은 기간 동안에도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신 본부장은 “원주기업도시 사업이 완료되면 현재의 특수목적법인은 청산된다”며 “2023년쯤으로 예상되는데 그전에 원주기업도시가 기업과 거주민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2호(2019.11.25 ~ 2019.12.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