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아는 것은 상대도 알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선 안 돼…정확한 수치나 배경 설명 필요
[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심리학에서 유명한 실험 하나를 살펴보자. 문제 출제자들과 그 문제를 맞혀야 하는 피실험자들이 있다. 출제자들에겐 누구나 알 법한 노래 제목을 알려준다. ‘애국가’처럼 모든 국민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출제자는 그 노래에 박자를 맞춰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피실험자에게 리듬을 들려주도록 한다. 피실험자들은 그 박자를 듣고 노래 제목을 맞혀야 한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실험에 들어가기 전 출제자들에게 정답을 얼마나 맞힐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 결과 무려 80%의 출제자들이 ‘쉽게 문제를 맞힐 수 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정답률은 30% 미만에 불과했다. 예상치는 80%였지만 결과는 30%에 불과했다. 정말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이 실험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것은 상대도 알 것’이라는 착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선 ‘지식의 저주’라고 부른다.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도 이러한 지식의 저주 때문에 웃지 못 할 일이 자주 생긴다.
◆중요한 문제는 여러 번 강조해야
지식의 저주와 관련해 인터넷에서 떠도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부의 봉투 하나 갖다 달라”고 말했다. 상사의 지시를 받은 부하 직원은 ‘부의’라는 말이 뭔지 몰라 봉투에 크게 알파벳 ‘V’자를 써서 책상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당연히 부하 직원이 ‘부의’라는 단어를 알 것이라고 생각한 상사의 ‘지식의 저주’가 만든 사례다.
앞선 사례는 웃고 넘길 수 있는 ‘해프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로 ‘알고 있겠지’라는 생각에 그냥 넘어가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업무에 지장을 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안타까운 경우들이 많다.
조직 내 구성원들이 서로 지식의 저주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소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조직에서 생기는 상황을 토대로 함께 풀어가 보자.
A기업의 B부서는 이틀 후 회의에서 신규 프로젝트 기획안을 발표해야 한다. 팀원들이 각자 프로젝트를 맡아 열심히 기획안을 정리하고 있다. 마무리에 열중하고 있는 담당 과장에게 팀장이 “잘되고 있어, 정리해 내일 오전에 같이 리뷰하자. 예산 수준도 잘 고려하고 있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담당 과장은 “네 잘되고 있습니다.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세부 내용 조율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음 날 리뷰 미팅 시간이 다가왔고 팀장이 상기된 얼굴로 담당 과장을 질책한다.
“비용이 왜 이래. 이렇게 되면 우리 팀 전체 가용 예산을 넘는데. 저번 팀 미팅 때 타 부서 프로젝트 볼륨이 커지면서 전체적으로 예산을 줄여야겠다고 했던 것 모르고 있었나?”
담당 과장이 “그래서 애초 계획보다 5000만원 정도 줄였습니다”라고 말하자 팀장은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다시 구성해 봐”라고 지시했다.
어이없는 결과물에 당황한 리더와 갑작스러운 팀장의 지시에 황당한 구성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서로가 ‘투명성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투명성 착각은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의도 등이 상대방에게도 ‘투명하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직 내에서 이런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각자 가지고 있는 정보와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제각각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먼저 팀장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팀장은 ‘회의 때 한 말’이 있으니 ‘알아서 예산을 줄여 오겠지’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열심히 마무리하고 있는 담당 과장에게 “예산 수준을 잘 고려하고 있지?”라고 가볍게 물은 것이다.
여기에서 리더는 2가지 실수를 했다. 첫째는 ‘한 번만’ 말하면 모두가 이해했을 것이라는 착각이고 둘째는 ‘얼마씩’ 절감해야 하는지 명확히 지시하지 않은 채 ‘알아서’ 해 줄 것을 믿은 점이다.
예산 범위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면 가볍게 묻기보다 따로 자리에 불러 기존보다 얼마의 예산을 줄여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 줬어야 했다. 또 보다 명확하게 왜 예산을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리더가 전달한 ‘예산 절감’에 대해 리더만큼의 부담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중요성’을 충분히 몰랐기 때문이다.
◆소통이 결국 성과를 만들어 낸다
애초 팀 미팅 때 ‘이번 프로젝트 기획안의 통과 여부는 예산 절감’이라는 회사의 방향성을 알려주거나 ‘팀 차원에 배당된 예산이 얼마’라는 정확한 정보를 주고 계속 관련해 피드백을 줬다면 구성원 머릿속에 예산의 중요성이 충분히 각인됐을 수 있다.
혹은 ‘왜 타 부서 프로젝트 예산이 늘어난 것 때문에 우리 부서의 예산을 줄여야 하지?’와 같은 의구심을 가지는 구성원이 생기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때로는 타 부서 프로젝트가 예산 배정이 왜 늘어났는지에 대한 상황을 명확하게 밝혀 주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간단한 일 하나 시키는데 뭐 이렇게 복잡하고 따져야 할 게 많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리더라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 그리고 그것의 중요성을 구성원도 그대로 갖고 행동하길 바라는 것은 미안한 얘기지만 욕심이다. 그래서 리더는 ‘많이’ 듣고 ‘자꾸’ 얘기해야 한다. 그게 리더의 숙명이다.
졸지에 팀장의 염려 사항도 제대로 듣지 않은 사람이 돼 버린 담당 과장.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예산 절감을 위한 기획안 수정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전적으로 팀장의 잘못만은 아니다. 담당 과장도 잘못이 있다. 다시 팀장과의 대화 상황으로 들어가 보자.
“예산 수준을 고려하고 있지?”라는 팀장의 질문에 대해 담당 과장은 “예산 절감을 위해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시작됐다. 두루뭉술하게 답하기보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기존보다 2000만원 정도 절감한 예산에 맞춰 기획 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미팅 시간 전에 팀장이 잘못을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바로 수정을 지시해 담당 과장 역시 두 번 일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구성원 관점에서 일을 시킨 리더와 명확한 소통을 위해서는 ‘숫자’ 중심의 보고가 필요하다. 많고 적음은 상대적이다. 하지만 5가 ‘3보다 크고 7보다 작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래서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숫자가 중요하다.
조직 차원에서 고객 초청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인원 모집 관련 진척 사항을 묻는 팀장에게 “신청 전화도 많이 오고 꽤 많이 모일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은 보고가 아니다.
“오전 10시까지 집계했을 때 270명 정도 신청했습니다”라는 게 정확한 보고다. 많고 적음을 설명하는 숫자는 ‘사실(fact)’이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확한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말’ 일을 잘하는 직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리더에게 ‘맥락’ 설명의 지시가 중요한 것처럼 구성원 역시 ‘숫자의 맥락’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270명이 신청했는데 지난번 행사 때의 신청 현황에 비해 10% 정도 많은 수치입니다. 그리고 그중 신규 고객이 절반 가까운 120명 정도 되는데 이 비율 역시 지난 행사 때의 35%에 비해 15%포인트 정도 높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숫자만이 아니라 그 숫자가 지닌 ‘의미’까지 해석해 팀장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숫자에 의미를 담으면 판단까지도 가능해진다. 이는 특히 조직 내 ‘윗분’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할 때 중요하다. 실무자인 본인은 이 숫자가 다른 경우와 비교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일만 하지 않는 상위 리더들은 ‘사실’만 갖고 잘되고 있는지, 뭔가 개선이 필요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의미, 다시 말해 그 숫자가 지닌 맥락을 함께 설명해 줘야 한다.
조직에서 일은 ‘지시’에서 시작해 ‘보고’로 마무리된다. 결국 ‘말’이다. 힘들어도 구체적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는 리더의 10분이 구성원의 몇 시간을 좌우할 수 있다.
구성원의 소통 역시 마찬가지다. 리더와의 생각을 맞추기 위한 구성원의 정확한 보고 한마디가 본인의 업무 효율은 물론 리더의 정확한 판단을 도울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2호(2019.11.25 ~ 2019.12.0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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