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 단식, 당내 갈등 불식시키고 강경투쟁 치달아
-필리버스터 돌입 등 연말 ‘정치 실종’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저 ○의 ○○들 또 ○○하네.”
1983년 5월 18일부터 단식에 들어간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종종 이렇게 화를 내곤 했다. 전말은 이렇다. 5·18 민주화 운동 3주년을 맞아 단식을 시작한 YS는 전두환 정권을 향해 구속 인사 석방 및 해금, 해직 교수·근로자 복직, 제적 학생 복교, 언론 자유, 개헌 등을 요구했다. 이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단식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전두환 정권은 긴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근인 전 민정당 의원 A 씨는 “10·26 사태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1979년 8월 발생한) ‘YH 여공’ 사태를 계기로 박정희 정권이 YS를 제명한 것이 한 원인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는 부마항쟁을 촉발했고 차지철 경호실장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향해 이에 제대로 대처를 못한다고 질책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로 이어졌다”며 “이 때문에 5공 정부는 YS의 단식이 반정부 시위를 격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 상당히 우려했다”고 회고했다.
◆ 안기부, YS 단식 저지 위해 불고기 굽고 자장면 시켜 먹어
전두환 정권은 단식을 저지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썼다. 단식이 1주일을 넘기자 YS를 서울대학교병원 특실에 입원시켰다. 권익현 당시 민정당 사무총장이 세 차례 병실을 찾아 단식 중단을 촉구하는 전 전 대통령의 의사를 전했지만 YS는 “차라리 나를 시체로 만든 뒤 해외로 부치라”며 거절했다.
오래전 YS의 한 측근이 전해 준 얘기에 따르면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은 YS가 입원한 곳 주변 병실을 차지해 불고기를 구워 먹거나 자장면을 시켜 먹기도 했다. YS의 단식을 방해하기 위해 자극적인 음식 냄새를 풍긴 것이다.
이 측근은 “주요 정치 지도자가 목숨을 건 단식을 하는데 이런 행태를 벌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본 YS가 욕설을 섞어 측근들에게 화를 냈고 나를 비롯한 YS 참모들이 전두환 정권에 강력 항의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단식 투쟁을 선택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 투쟁 결기를 높이고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으며 여론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반면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단식을 활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협상력·대화·소통의 부재를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YS의 단식은 대표적 성공 사례에 속한다. 가택연금 해제를 얻어냈을 뿐만 아니라 지리멸렬하던 민주화 세력이 총집결해 1987년 민주화를 이끈 촉매제가 됐다고 YS는 생전에 회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 시절인 1990년 여권이 추진했던 내각제 포기 선언, 정치 사찰 중단,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 등을 요구하며 13일간 단식 농성을 했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1987년 5월 4·13 호헌 조치 철회 등을 요구하며 15일간 단식했다. 두 사람 모두 일정 정도 성과를 거뒀다. 이후 많은 정치인이 단식에 들어갔지만 모두가 명분과 성과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8일 만에 ‘노숙 단식’을 끝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잇단 벼랑 끝 전술이 통할지 주목된다. 황 대표가 지난 11월 20일 △지소미아(GSOMIA :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 세 가지 조건을 내걸고 단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당 내부에서조차 뜬금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리더십 위기 돌파용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황 대표는 자신의 리더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장외 투쟁, 삭발 투쟁을 이어 온 터라 단식도 그런 차원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단식에 돌입하기 전 황 대표는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 논란, 지지부진한 보수 통합 작업으로 리더십에 대한 적지 않은 비판이 나왔다.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며 ‘민폐’, ‘좀비’ 등 격한 발언으로 당을 비판해 황 대표를 더욱 난감한 처지로 몰았다.
하지만 황 대표의 단식은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효과를 거뒀다. 그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쇄신론·혁신론은 뒤로 밀려났다.
지난 11월 24일 초겨울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황 대표가 단식하던 청와대 앞에서 열린 한국당 의원 총회에서는 황 대표에게 비판적이었던 의원들도 ‘단합’을 외쳤다. 의원 109명 대부분이 참석했다. 수도권 3선의 한 중진 의원은 “선거법을 막지 못하면 보수는 끝장나고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수 밖에 없다는데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추경호 한국당 전략기획부총장은 “나라가 이런 상황인데 대표가 가만있을 수 없었다”며 “당이 일치단결하고 있다. 선거법과 공수처법 저지를 위한 투쟁은 끝까지 간다”고 했다.
지도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김세연 의원도 단식 현장을 방문해 황 대표에게 “한국당이 거듭나기를 바라는 충정에서 말한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 의원의 주장에 동조하며 지도부를 비판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황 대표에게 “제가 했던 말이나 보도된 것에 대해 너무 괘념치 말라”고 했다.
◆ 단식 초기엔 “뜬금없다”는 반응 많았지만 위력 발휘했지만...
문제는 장외 투쟁→삭발→단식으로 이어지는 황 대표의 잇단 ‘지르기식 투쟁’ 이후다. 단식이라는 극한투쟁 중에는 당내 갈등을 잠재울 수 있다. 이는 다른 당과의 현안 협상에서 큰 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국당이 필리버스터(의사방해), 의원직 총사퇴, 21대 총선 보이콧 등 강경 목소리를 내면서도 고민하고 있는 이유다. 선거법과 공수처법 저지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당은 큰 혼란이 빠질 가능성이 높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가면 저지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필리버스터로 불리는 무제한 토론을 하기로 했지만 민생법안까지 포함돼 여론이 얼마나 호응할지 미지수다. 총사퇴도 총선이 코앞이라 정치적 쇼로 비쳐질 수 있다.
황 대표가 단식 후유증을 추스르고 본격 총선 국면에 접어들면 당내 갈등이 되살아날 수 있다. 공천 컷 오프 기준, 물갈이 방향, 공천관리위원회 구성 등 갈등을 유발할 휘발성 높은 사안들이 즐비하다.
황 대표가 공언한 보수 야권 통합 작업이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또다시 리더십에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당 쇄신, 혁신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단식 효과는 단기간에 그칠 수 있다.
홍준표 한국당 전 대표는 “단식을 한다고 패스트 트랙이 해결될 문제인가”라고 반문한 뒤 “진작 정치적으로 해결했어야 했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안 하니 막바지에 와서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식에 대해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리멸렬하던 당을 일사불란하게 만들어 여당을 제대로 견제할 대오를 갖추게 했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수를 결집하고 집토끼를 뭉치게 했지만 자칫 쇄신과 혁신이 뒤로 밀리면서 중도층과 수도권의 표심을 더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단식 투쟁을 한 경험이 있는 한 야당 지도자는 “이실직고하자면 나도 떼밀려 단식을 했다”며 “YS가 단식할 땐 민주화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 이런 수단은 옳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정치의 본질인 ‘타협’이 뒷전으로 밀리면서 정치의 실종을 부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제1야당 대표가 극한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당 고위 당직자는 “여권이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협상 과정에서 소수 야당을 끌어들여 한국당을 포위, 압박하고 있어 강경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말 국회 ‘강대강’ 극한 대결이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3호(2019.12.02 ~ 2019.12.0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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