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네이버 VS 카카오]- 스마트함과 차분함 vs 대범함과 여유로움- 벤처기업인 특유의 ‘과감성’은 모두 갖춰
이해진 vs 김범수, 한국 IT업계의 최고 맞수
이해진 vs 김범수, 한국 IT업계의 최고 맞수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네이버와 카카오는 한국 인터넷 기업의 ‘양대 산맥’이다. 특히 이들 기업의 창업자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두 사람의 창업자들은 한때 같은 회사에서 같은 길을 걸었던 동지이면서 지금은 양대 기업의 미래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비슷한 시기 서울대 공대를 다녔다. 졸업 후엔 삼성SDS에 나란히 입사해 사회 초년병 시절을 보냈다. 또 대기업 회사원에 만족하지 않고 창업에 나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 점도 비슷하다. 한때는 의기투합해 각자 창업한 네이버와 한게임을 합병해 NHN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반면 김 의장은 사업 초기부터 게임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 GIO는 검색 포털에 승부수를 띄웠다. 또 이 GIO가 네이버를 중심으로 꾸준히 회사를 키워 온 반면 김 의장은 NHN 퇴사 후 잠시 업계를 떠났다가 돌아와 만든 ‘카카오톡’의 대성공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네이버·한게임 합병한 NHN에서 함께 일해
이 GIO는 현재 이사회 의장을 내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공정거래위원회 기준 ‘기업 동일인’으로서 책임을 지고 있다. GIO라는 직책처럼 주로 네이버의 해외사업 부문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GIO는 1967년 6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전산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삼성SDS에 입사했다.
이 GIO는 1999년 삼성SDS에서 나와 네이버를 만들었다. 네이버(NAVER)는 이 GIO가 1997년 삼성SDS에서 근무할 때 만든 사내벤처 이름이다. 네이버는 ‘항해하다’라는 뜻의 내비게이트(navigate)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을 붙인 말로 ‘인터넷을 항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후 이 GIO는 2001년 네이버와 한게임을 합병하면서 NHN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서비스 이름은 네이버로 유지했다.
이 GIO는 2002년 네이버에 ‘지식인’ 서비스를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두고 그해 NHN을 코스닥 시장(현재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그 뒤로도 검색 광고와 온라인 게임 유료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하는 데 성공해 네이버는 2004년 다음을 제치고 포털 사이트 1위가 됐다.
이 GIO는 2004년부터 최고전략책임자(CSO) 겸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2012년에는 2000년 한게임재팬을 설립해 이름을 바꾼 NHN재팬 회장에 올랐다.
2013년 NHN에서 게임 사업을 분리해 NHN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회사 이름을 다시 네이버로 바꿨다. NHN재팬은 라인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2016년에는 라인을 뉴욕과 도쿄 증시에 동시 상장했다.
이 GIO는 2017년 3월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고 2018년 3월 네이버 등기 임원에서도 물러났다. 현재는 GIO로 해외 사업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GIO는 차분한 이미지를 지녔지만 사업적 판단을 할 때는 냉정할 정도로 과감한 면모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격도 꼼꼼한 편으로 전략적이고 치밀한 경영 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벤처 사업가답게 모험과 도전 또한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인이 2016년 7월 15일 미국과 일본 증시에 동시에 상장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저돌적인 면모도 있다. 라인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거의 매주 일본을 방문해 일본 법인 직원들과 밤을 새워가며 사업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한다. 2012년 3월 사내 강연에서 국내외의 치열한 경쟁 아래 네이버(당시 NHN)의 경쟁력과 느슨해진 조직 문화를 지적하며 ‘위기론’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악착같은 근성과 끊임없는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할 것을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이 GIO는 네이버가 수평적 조직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GIO는 노조와의 대화에서 “네이버는 어디까지가 사측이고 어디까지가 사측이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구조로 새로운 지배 구조와 투명성을 지닌 모델을 제시할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다만 네이버가 그의 뜻과는 수직적 관료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비판도 잇다.
◆같은 듯 다른 두 창업자의 생각
이 GIO는 김 의장과 여러 면에서 비교되곤 했다. 김 의장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수재였다면 이 GIO는 서울 강남의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서울대 공대에 진학한 ‘엄친아’로 일컬어진다.
이 GIO는 김정주 NXC 대표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개발총괄 대표, 이재웅 다음 창업자 등과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동문이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 김정주 대표와 기숙사 같은 방에서 지내기도 했다. 이재웅 창업자와는 동네 친구다. 서울 청담동 진흥아파트의 같은 동 위 아래층에 살면서 어머니끼리도 서로 알고 지낼 만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 최대 주주이자 창업자다. 현재 이사회 의장으로 유료 콘텐츠와 금융 서비스·모빌리티·인공지능(AI)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1966년생으로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회사 재직 시절 한양대 앞에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미션넘버원’을 부업으로 운영했다. PC방 사업으로 자본을 모아 게임 회사 ‘한게임’을 세우고 1년 6개월 만에 1000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 이후 한게임을 이해진 GIO가 이끌던 네이버와 합병해 NHN을 만들었다. 네이버에 한게임을 무료로 제공하고 아이템을 판매해 큰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 GIO와 경영에서 의견 차이를 보이자 NHN 해외 지사를 돌다가 회사를 나와 미국으로 떠났다. 몇 차례 사업을 벌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미국에서 아이폰을 보고 PC 웹의 시대가 저물 것으로 판단해 모바일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귀국하자마자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내놓았다.
카카오톡을 성공시킨 뒤 국내 2위 포털 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해 다음카카오의 최대 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합병 1년 뒤 회사 이름을 ‘카카오’로 바꿨다.
그는 평소 ‘소셜 임팩트’를 중요한 키워드로 꼽는다. 소셜 임팩트 기업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재무적 성과도 내는 기업을 말한다. 김 의장은 한 콘퍼런스에서 “사회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대범한 성격의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유명하다. 대학 시절부터 고스톱·포커·당구·바둑 등을 즐겼다. 카카오가 다음과 합병한다는 사실을 직원 대부분이 합병 발표하는 날 알게 됐을 정도로 빠르고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승부사 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는 격식을 차리지 않고 소탈한 편이다. 평소 티셔츠에 편한 바지를 입고 회사에 나온다. 오히려 정장을 입고 오면 직원들이 놀랄 정도라고 한다. 평소 직원들과 소통을 중시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이의 일환으로 카카오는 설립 초기부터 영어 호칭을 도입해 친근한 기업 분위기 형성을 유도하고 있다. 김 의장은 브라이언이라고 불린다.
김 의장은 주요 현안이 있을 때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전체 미팅인 ‘T500(Thursday
5:00)’을 진행한다. 직급과 관계없이 영어 이름을 사용하며 서서 일할 수 있는 ‘스탠딩 데스크’를 도입했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마련했다.
김 의장은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내며 독하게 공부했다. 재수를 했는데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을 베어 혈서까지 썼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김 의장은 ‘흙수저’ 청년들에게 악착같이 살지 말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고문하지 말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내가 안 된 것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야’라며 스스로를 들볶는 것은 잘못이며 그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힘들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출발하자”고 말했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4호(2019.12.09 ~ 2019.12.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