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11일 NH농협은행의 이른바 '시리즈 펀드'와 관련한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농협은행은 비슷한 펀드를 쪼개 파는 일명 ‘시리즈 펀드’를 통해 공모펀드 규제를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맞물리며 제재수위와 관련해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투자 위험에 대해 공시를 해야 하고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는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때문에 금융사들이 덩치가 큰 펀드를 여러 개로 나눠 사모 펀드로 시리즈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농협은행은 2016~2018년 파인아시아운용과 아람운용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펀드’ 방식으로 주문한 펀드를 사모펀드로 쪼개 팔아 공모 규제를 회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문제가 된 펀드가 OEM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농협은행을 펀드 주선인으로 보고, 주선인이 행해야 하는 증권신고서 제출 등 공시의무를 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증권신고서 제출의무 위반 규정을 언제부터 적용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지난해 5월 법 개정으로 같은 증권을 두 개 이상으로 쪼개 발행할 경우 펀드 당 투자자를 49인 이하로 설정했더라도 증권신고서 제출 등 공모펀드 공시 규제가 적용된다. 농협은행이 해당 펀드를 판매한 것은 법 시행 전으로, 과거 행위를 현재 규정으로 소급적용하는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7일 금융위원회는 농협은행의 공모펀드 규제위반 건에 대해 과징금 부과결정을 보류시킨 바 있다. 금융위 산하 자문기구인 법령해석심의위원회와 자본조사심의위원회에서 현행법상 판매회사에게 과징금을 부과하기 어렵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원금손실이 발생한 ‘DLF사태’를 계기로 펀드 판매사에 대한 감시 및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금융위 내부에서는 ‘시리즈펀드’에 대해서도 제재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류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법적 근거가 모호한 사안으로 펀드 판매사에 무리한 제재가 가해지면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중이다. 증선위는 이번 의결이 추후 진행될 DLF 사태 판매사 제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더욱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이다.

강희주 증권법학회 회장(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은 “과거 명확한 법규와 선례가 없어 별문제가 없이 판매한 상품에 대해 금융당국이 현재 법을 소급 적용해 제재하는 것은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과도한 조치다”며 “특히 농협은행의대상 펀드는 채권형 펀드로 안전성 등에서 최근 문제가 된 DLF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DLF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했지만 시리즈 사모펀드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농협은행의 경우 대상 펀드와 관련해 운용사들로부터 주선 수수료(펀드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강 회장은 “통상 과징금은 ‘수수료 수익의 몇 퍼센트’로 부과가 되는데, 농협은행의 경우 수수료 수익이 0이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금융당국이 투자자 손실 발생여부에 상관없이 시리즈 사모펀드가 공모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건전한 금융거래 질서를 해치는 행위로 제재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이에 대한 제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난 후 제재를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인 법집행일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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