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회장 ‘용퇴’로 15년 만에 사령탑 교체…2020년 대대적인 변화 예고
허태수 호 닻 올린 GS그룹…“디지털 혁신으로 제2 도약”
[한경비즈니스=김정우] 재계 순위 8위 GS그룹이 약 15년 만에 수장 교체를 단행하며 2020년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나서 주목된다.

2005년부터 경영을 이끌어 온 허창수 GS 회장은 12월 3일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갑작스럽게 회장직을 내려놓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를 대신해 허창수 회장의 막냇동생인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이 주주 간 합의를 거쳐 새롭게 회장에 선출됐다.

공식 승계는 절차에 따라 내년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이뤄질 예정인 가운데 현재 GS그룹은 새해부터 그룹 전반의 사업 계획이 차질 없이 수행될 수 있도록 회장직 업무 인수인계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내부적으로도 변화의 방향이나 강도에 대해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디지털 혁신’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전략들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허창수 회장 “그룹 미래 위해 물러나”


허창수 회장의 사의 표명을 두고 재계에서 갑작스러운 행보라는 평가가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올해 3월 열린 GS그룹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며 2022년까지 회장직을 이어 가기로 한 상태였다. 게다가 GS그룹은 올해 전반적으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실적을 거뒀고 증권가를 중심으로 내년에는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GS그룹 내부에 따르면 허창수 회장의 퇴임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GS그룹 관계자는 “(허창수 회장이) 퇴진에 대해 계속 고려해 왔다”며 “그룹의 미래를 위해 이번에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올해 분기별로 개최했던 사장단 회의를 들여다보더라도 그가 고민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회의 때마다 언급했던 내용들은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기업도 사라지는 시대”라며 임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차별화된 역량 확보를 위한 혁신’을 주문해 왔다. 특히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인공지능(AI)·블록체인 등의 혁신 기술이 어떻게 시장과 사업 모델을 바꾸어 갈지 눈과 귀를 열고 그 변화의 맥락을 짚어내야 한다며 구체적인 디지털 혁신 방안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번에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하면서도 그는 “혁신적 신기술이 경영 환경 변화를 가속화시키는데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지금이 새 활로를 찾아야 할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GS그룹 관계자는 “임기가 2년 이상이나 남았지만 디지털 혁신을 이끌 새로운 리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용퇴’를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허태수 신임 회장을 그룹을 이끌 새 리더로 내정한 것도 이 같은 ‘디지털 혁신’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안정적 궤도에 오른 GS그룹에 새로운 혁신 바람을 불어넣어 제2의 도약을 이뤄낼 적임자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간 허태수 신임 회장이 보여준 경영 능력에서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미국 컨티넨탈은행,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런던 법인장, LG홈쇼핑(현 GS홈쇼핑) 전략기획부문 상무 등으로 재직하다 2007년 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며 경영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GS홈쇼핑에서 모바일·벤처 투자 이끌어


당시 홈쇼핑 시장은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이런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GS홈쇼핑의 수장이 된 그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취임과 동시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매년 GS홈쇼핑의 최대 실적을 갈아 치우며 성공적인 성적표를 거둬들였다. 내수 시장을 넘어 홈쇼핑의 해외 진출을 이끌며 새 돌파구를 마련했고 모바일 사업 확장을 과감하게 추진한 것이 주효했다.

그 결과 취임 직전(2006년) 연간 취급액 1조9000억원, 당기순이익 510억원이었던 GS홈쇼핑의 실적은 매년 꾸준히 올라 지난해 취급액 4조2500억원, 당기순이익 1200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모바일 사업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이 ‘디지털 혁신’ 방향을 고민하던 허창수 회장이 그를 후임자로 낙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허태수 신임 회장은 스마트폰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트렌드를 빠르게 감지하며 이를 공략하기 위해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이를 토대로 2014년 GS홈쇼핑의 모바일 취급액은 7000억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2조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취급액의 절반가량이 모바일에서 창출하며 TV 홈쇼핑에 의존하던 사업 구조를 모바일로 성공적으로 전환시키며 그룹 내에서 ‘디지털 혁신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또한 ‘디자인 싱킹’, ‘애자일’, ‘스크럼’ 등 혁신 경영 기법을 그룹 전반에 적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고 지난 10월 GS그룹이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벤처 투자 법인을 설립한 것도 그의 목소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허태수 신임 회장의 취임과 함께 내년 GS그룹도 대대적인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GS홈쇼핑에 따르면 그는 사장 취임 이후 줄곧 직원들에게 자신의 경영 철학은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강조하며 끊임없이 이를 추구할 것을 주문해 왔다.

즉,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외부 파트너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방침에 따라 GS홈쇼핑은 2011년부터 국내외 스타트업 580여 곳에 약 33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이런 그가 회장직에 오른 만큼 그룹사 전반에 다양한 스타트업 발굴 투자와 사내 벤처 설립 등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계열사 차원에서도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협력을 이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런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계열사 간 보이지 않는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GS그룹은 창업자의 여덟 아들과 그 후계자들이 계열사 곳곳에 포진해 있는 상황이다. 이번 회장 교체를 계기로 점차 각자의 직계 혈족들로 경영진을 꾸려 GS그룹이 다시 한 번 계열 분리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한편 재계에서는 그가 회장 취임을 계기로 내년부터 대내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얼굴을 보일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허태수 신임 회장은 GS홈쇼핑 부회장 재직 시절 ‘은둔형 최고경영자(CEO)’로 정평이 날 만큼 외부 노출을 자제해 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허창수 회장 역시 GS그룹 수장이 되기 전까지 외부 활동에 거의 나서지 않아 ‘얼굴 없는 경영자’라는 말이 나왔지만 회장이 된 이후에는 전경련 회장 등을 비롯해 활발한 대내외 행보를 이어 가며 ‘재계의 신사’로 별명이 바뀌었다”며 “향후 허태수 회장도 이와 비슷한 행보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돋보기 허창수 회장은?
-에너지·유통·건설 등 그룹 ‘3대 축’ 마련한 주인공
허태수 호 닻 올린 GS그룹…“디지털 혁신으로 제2 도약”
이번에 회장직을 내려놓은 허창수 회장은 GS그룹과 LG그룹 공동 창업자인 고(故) 허만정 창업자의 3남 고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허태수 신임 회장은 허준구 명예회장의 5남으로 그의 막냇동생이다.

허창수 회장은 1977년 LG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해 첫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LG상사·LG화학 등 계열사 현장에서 인사, 기획, 해외 영업·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풍부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04년 LG그룹과의 계열 분리를 통해 GS그룹이 탄생하면서 2005년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배려와 신뢰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GS그룹을 재계 8위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GS그룹은 출범 당시 매출액은 약 23조원이었고 1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꾸준히 외연을 넓히며 지난해 기준 매출액 약 68조원을 기록 중이며 거느리고 있는 계열사는 64개에 달한다. 3배 넘게 덩치가 커졌다.

특히 에너지(GS에너지)·유통(GS리테일)·건설(GS건설) 등 3대 핵심 사업의 확고한 경쟁력을 구축해 지속 성장을 위한 발판을 다졌다. 그룹 회장직에서는 물러나지만 아예 손을 놓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허창수 회장은 GS건설 회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장으로 계속 활동을 이어 갈 계획이다. 또한 GS그룹 명예회장으로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그룹 전반에 대해 조언해 나갈 예정이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5호(2019.12.16 ~ 2019.12.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