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호텔·수입차·명품 브랜드 총출동…“상위 1%를 잡아라”
마천루 아래 펼쳐진 부산, 럭셔리 격전지로 급부상

#12월 10일 찾은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평일 오전 11시인데 로비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이 부산 사투리를 쓰는 로컬 고객이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파라다이스호텔 1층에 자리한 뷔페 ‘온 더 플레이트’가 문을 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파라다이스뿐만이 아니다. 힐튼부산, 파크하얏트 부산 등 부산에 있는 특급 호텔 대부분이 11월과 12월 식음업장 만석 행진을 이어 갔다. 해운대와 20분 떨어져 있는 힐튼부산은 평균 객실 점유율이 80%를 넘기며 매달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부산 대표 부촌으로 꼽히는 해운대구 마린시티. 도로를 달리다 보면 국산차보다 수입차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마린시티 내 고급 아파트 단지인 두산위브더제니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보니 어림잡아 10대 중 7대가 수입차다. 2019년 상반기 1억원 이상 수입차는 서울보다 부산에서 더 많이 등록됐다.

호텔·수입차·명품 브랜드까지. 부산이 럭셔리 시장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압도적인 규모로 경쟁하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과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명품 매출이 전년 대비 20% 이상 늘었다.

도시의 부를 상징하는 마천루와 부동산 시장 역시 들썩인다.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초고층 아파트가 밀집해 있다.

지금까지 완공된 건물 중 전국에서 둘째로 높은 엘시티가 입주를 시작했고 정부가 부산 해운대구와 동래구·수영구 등을 조정 대상 지역에서 해제하며 한동안 얼어 있던 부산 집값이 치솟고 있다. 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전용 면적 111.07㎡)는 11월 26일 실거래가 9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10월 19일 비슷한 층수가 7억35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불과 한 달 반 사이에 2억원 넘게 뛰었다.

◆롯데 시그니엘로 부산 정조준

부산 호텔업계도 분주하다. 부산은 그동안 국내 대표 관광지로서 관광객을 그러모았다. 지난해 부산 관광객은 내국인 2544만 명, 외국인 247만 명으로 전년보다 2.8% 증가했다. 이들이 1년간 쓴 신용카드 지출액은 내국인 3조9852억원, 외국인 4901억원 등 총 4조4753억원으로 전년보다 6.3% 늘었다.

특히 특급 호텔 숙박 지출은 두 자릿수 이상 증가했다. 외국인들이 지난해 특급 호텔에서 쓴 비용은 약 591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29% 늘었다. 내국인들도 특급 호텔에서 약 519억원을 써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최근에는 부산 지역 주민들의 수요도 크게 늘었다. 식음업장 매출은 대부분이 부산 지역 주민들이 책임진다.

파크하얏트 부산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부산을 방문하는 레저 고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 부산 지역 고객들의 객실 예약이 늘고 있다”며 “특히 식음료 부문에서는 부산 지역 수요가 대부분이고 주말에는 부산 근교의 경남·경북 지역에서 유입된 수요도 있다”고 말했다.

내년 6월 롯데호텔의 최상위 브랜드인 ‘시그니엘’이 문을 열게 돼 부산 내 럭셔리 호텔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그니엘 부산은 해운대 랜드마크인 엘시티에 들어선다. 롯데타워 고층부에 자리한 시그니엘 서울과 달리 저층부인 3~19층에 테라스 객실 형태로 들어선다. 바다와 바로 맞닿은 입지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다.

롯데는 엘시티 내 관광 시설로 조성되는 호텔을 선점하며 개관 전부터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시그니엘 부산은 주로 연회와 웨딩 행사에서 부산 지역 주민들의 수요를 기대하고 있다. 부산 지역에 대규모의 고급 연회 행사를 소화할 만한 공간이 지역에 많지 않은 것에 착안해 시그니엘 부산에는 800명 동시 수용이 가능한 대연회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시그니엘 서울의 성공에 비춰 볼 때 국내 시장이 럭셔리 호텔을 소화할 만큼 무르익어 가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부산은 꾸준히 관광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오사카나 싱가포르와 같이 비슷한 규모의 해외 도시들과 관광객 규모에서 차이가 있어 향후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고 말했다.

이미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도 노보텔앰배서더 부산을 인수하며 부산 지역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노보텔부산은 올 초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고 내년 7월 신세계조선호텔 독자 브랜드로 문을 열 계획이다.

이에 앞서 파라다이스호텔은 4년간 700억원을 투자해 객실부터 연회장까지 모두 다 바꾸는 등 대규모 리모델링을 거쳐 2017년 새롭게 태어났다.

특급 호텔 간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자 경쟁력을 잃은 중소형 호텔들은 문을 닫고 있다. 1996년 해운대에 문을 연 그랜드호텔은 올해를 끝으로 폐업할 예정이다. 공급 과잉과 경영 악화로 더 이상 정상 영업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마천루 아래 펼쳐진 부산, 럭셔리 격전지로 급부상
이처럼 부산 지역 호텔 판도가 바뀐 것은 2017년부터다. 2016년까지 파라다이스호텔·파크하얏트·웨스틴조선호텔 등 해운대 일대 특급 호텔이 부산 호텔시장을 주도해 왔다.하지만 2017년 힐튼 부산이 속한 아난티코브가가 개관하며 부산 지역 특급 호텔 경쟁이 가속화됐다.

아난티 코브를 이루고 있는 시설은 크게 세 가지다. 아난티가 위탁 운영을 맡긴 호텔 ‘힐튼 부산’과 회원제 리조트인 ‘아난티 펜트하우스’, 15개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모인 복합 공간 ‘아난티 타운’이 한데 모여 있다.

아난티 코브가 들어서자 부산의 변두리 해안 마을이었던 기장군은 단숨에 부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부산을 관광하기 위해 아난티 코브에 가는 사람보다 아난티 코브에 가기 위해 부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힐튼부산 역시 식음업장이나 부대시설은 부산 지역 주민들의 수요가 많은 편이다. 객실은 부산 지역 고객뿐 아니라 힐튼 멤버십 프로그램인 힐튼 아너스 가입자들의 수요가 많다.
힐튼부산 관계자는 “60% 이상이 힐튼의 멤버십 프로그램인 힐튼아너스 멤버”라며 “기존에 제주도로 여행을 하던 이들이 아난티 코브 때문에 부산에 오고 있다”고 말했다.

힐튼부산의 성공은 부산지역 럭셔리 호텔의 가능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아무것도 없던 기장군에 문을 연 힐튼부산은 비수기에도 객실 점유율 80%를 이어 가며 호텔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오픈 첫해 흑자를 냈다.

그 결과 기존의 노후화된 호텔들은 리노베이션에 들어갔고 부분 리노베이션을 진행한 호텔도 있다. 기장 지역에 오픈을 알리는 호텔들도 있다. 태국의 호텔 브랜드 ‘아바니’ 역시 오시리아 관광 단지에 문을 열 계획이다.

1억원 이상 수입차 서울의 2배

부산이 럭셔리 각축장으로 떠오른 것은 호텔업계의 얘기만이 아니다. 프리미엄 수입차 브랜드 역시 앞다퉈 부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해운대 전체가 ‘외제차 전시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수입차를 흔히 볼 수 있다.

실제 판매율도 높은 편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승용차 가운데 12.2%가 부산에서 등록됐다. 하지만 프리미엄급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해 1억원 이상 수입차 전체 판매량 2만6314대 중 23.5%에 해당하는 6174대가 부산에서 팔렸다.

서울 3287대(12.5%)의 배에 가깝다. 이 같은 추세는 올 상반기 더 뚜렷해졌다. 올 상반기 1억원 이상 수입차 전체 판매량 1만1084대 중 부산에서 2834대(25.6%)가 판매됐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는 1535대(13.8%)가 팔렸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데이터를 보면 수입차 브랜드 중 포르쉐·재규어·랜드로버·벤틀리는 부산에서 등록된 차가 가장 많다.
마천루 아래 펼쳐진 부산, 럭셔리 격전지로 급부상
수입차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동남권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프리미엄 수입차 브랜드 전시장이 2013년 이후 잇따라 문을 열었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연결되는 해운대해변로는 동남권 ‘수입차의 메카’로 불린다. 롤스로이스·마세라티·메르세데스-벤츠· BMW·레인지로버·아우디 등 웬만한 수입차 브랜드 전시장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특히 부산 마린시티에 자리 잡았던 이탈리아 수입차 브랜드 마세라티는 지난 3월 이곳으로 전시장을 확장 이전했다. 마세라티가 부산에 입성한 지 6년 만이다. 마세라티는 이번 확장을 기반으로 부산 프리미엄 수입차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통계를 보면 부산은 인천에 이어 둘째로 많이 마세라티가 등록된 지역이다. 부산 등 동남권 소비자의 성향을 다소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보수적인 소비 성향 때문에 새로운 브랜드를 받아들이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등 기존 독일차 보유자들이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를 찾고 있다. 실제로 2018년 마세라티 구매 고객을 분석한 결과 구매 고객 중 기존에 독일 3사(벤츠·아우디·BMW) 브랜드의 차량을 보유했던 소비자의 비율이 약 60%를 차지했다.

한원석 마세라티 부산 전시장 지점장은 “수입차 시장의 양적 성장은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지만 럭셔리 카를 원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며 “수입차는 치열한 경쟁 속에 있을 때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롯데 vs 신세계 유통 경쟁
마천루 아래 펼쳐진 부산, 럭셔리 격전지로 급부상
부산 지역 해외 명품 패션 소비는 신세계와 롯데가 대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센텀시티에서는 두 개 백화점이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묘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부산 역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최근 백화점업계의 매출을 견인하는 명품 카테고리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부산 지역 소비자뿐만 아니라 전국 소비자들이 찾는 명품 1번지다. 한정판 제품이나 서울에서 구하기 힘든 제품이 센텀시티에 입고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늘 샤넬·루이비통 등 주요 매장 앞에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다.

2009년 후발 주자로 부산에 입성한 신세계는 처음부터 초대형 점포와 명품 브랜드로 승부했다. 오픈 당시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또한 반클리프 아펠·브리오니·파텍필립·톰브라운·오프화이트가 지방 백화점 최초로 입점했다.

그 결과 출점 7년 만에 지방 점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1조952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2019년에도 명품 카테고리 성장은 이어졌다. 11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해외 럭셔리 카테고리 매출은 21% 성장했다.
마천루 아래 펼쳐진 부산, 럭셔리 격전지로 급부상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부산의 중심 상권인 서면에 있다. 롯데백화점은 점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2017년 매장을 대규모로 증축했다.

특히 명품관 확장에 공을 들여 본점과 잠실에 이어 셋째로 롯데의 명품관인 롯데 에비뉴엘을 오픈했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해외 명품 판매 매출은 작년 대비 올해 22% 이상 늘었다. 2015년을 기점으로 최근 4년간 해외 명품 상품군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부산지역 해외 명품 구매 주요 연령대도 점차 젊어지고 있는 추세다. 부산본점은 지난 1~11월 연령대별 명품 구매율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대 60%, 30대 20% 이상 증가세를 보였다. 부산 지역 명품 소비의 특징은 남성 구매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 주요 명품 브랜드 구매 남성 고객 수를 분석한 결과 부산 지역은 33% 이상이 남성 고객이었다. 수도권 남성 명품 구매 고객이 25%인 것과 비교하려면 높은 수치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남성 수요에 발맞춰 선제적인 명품 남성 전문 브랜드 유치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 루이비통 남성 전문관, 벨루티, 던힐, 지방시 맨즈, 로에베, 튜더, 닐바렛 등 지역 단독 남성 특화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며 지난 11월 멘즈관 오픈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상위 1% 소득은 전국 2위

럭셔리 브랜드가 부산을 공략하는 이유유는 소비층이 있기 때문이다. KB경영연구소는 매년 금융 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들을 부자로 판단하고 이들을 분석한 부자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 나온 한국 부자의 지역별 분포를 살펴보면 부산(2만4000명)은 서울(14만5400명)과 경기(7만 명)에 이어 부자 보유 지역 3위에 올랐다.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대비로 살펴보면 서울 인구 1.7%, 부산 인구 0.8%, 경기 인구 0.6%가 부자로 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당연히 씀씀이도 크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자 가구의 월평균 생활비는 1040만원으로 나타났다.
마천루 아래 펼쳐진 부산, 럭셔리 격전지로 급부상
마린시티 두산위브더제니스에 거주하는 유정민(29) 씨는 “서울에 비하면 집값이 저렴해 부동산에 묶여 있는 돈이 상대적으로 적어 활발한 소비가 이뤄지는 것 같다”며 “부산에 돈을 쓸 사람은 많지만 서울만큼 돈을 쓸 만한 장소가 없다. 같은 돈을 내더라도 최상의 경험을 원하는 스몰 럭셔리를 위해 호텔 레스토랑이나 라운지에 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상위 1%만 떼어놓고 봐도 부산 부자들의 경제력을 알 수 있다. 부산은 상위 1%의 연소득이 서울에 이어 둘째로 높은 도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산 상위 1%의 1인당 연소득은 6억7000만원으로 나타났다.

부산에서 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지역은 해운대구다. 해운대구 평균 소득은 3383만원으로 부산시 중 가장 높다. 그중에서도 마린시티가 속한 우3동 평균 소득은 5318만원으로 서울 송파구와 종로구 평균 소득을 뛰어넘는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서울은 호텔 시장뿐만 아니라 다른 럭셔리 시장 역시 많은 성장이 이뤄졌지만 부산은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높은 도시”라고 말했다. 제2의 도시 부산을 무대로 럭셔리 대전이 펼쳐지는 이유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5호(2019.12.16 ~ 2019.12.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