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토종 후발 업체로 유명 브랜드 틈새서 고전…‘순한 맛’ 트렌드 읽고 과감한 투자
‘저도주 위스키’ 시장 만든 골든블루…10년 새 17배 매출 증가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국내 위스키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든 지 오래다. 지난해 위스키 출고량은 꾸준히 감소한 끝에 150만 상자 아래로 내려왔다. 약 10년 전인 2008년 280만 상자가 넘는 위스키가 한 해 동안 출고된 것과 비교해 판매 규모가 반 토막 난 상태다.

시장이 불황인데 업체들의 사정이 좋을 리 없다. 자연히 과거 잘나가던 위스키업계의 실적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업계 1위인 디아지오코리아는 약 4년째 매출이 감소 중이다. 업계 2위인 페르노리카코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계속 경영 환경이 악화되자 “이대로 가다간 적자가 불가피하다”며 올해 1월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보유하고 있던 국내를 대표하는 위스키 브랜드 ‘임페리얼’을 드링스인터내셔널에 매각했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같은 위스키업계의 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나 홀로 성장’을 이어 가는 곳이 있어 주목된다. 국내 토종 위스키 업체 골든블루가 주인공이다.

◆위스키 시장 위기 속 ‘나 홀로 고속 성장’


위스키 시장은 2008년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인 하향세를 그려 왔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골든블루의 매출 추세는 이와 역행하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08년 90억원대였던 골든블루의 매출은 이후 매년 단 한 번도 꺾이지 않고 증가해 지난해 약 1640억원을 기록했다. 10년 사이 17배나 매출이 증가한 것이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약 23% 늘어난 91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업황 부진 속에서도 성장세를 이어 갔다.
‘저도주 위스키’ 시장 만든 골든블루…10년 새 17배 매출 증가
골든블루 성장의 일등 공신은 단연 자사 명칭과 동일한 저도주(36.5도) 위스키 브랜드 ‘골든블루’의 활약을 꼽을 수 있다. 골든블루 관계자는 “영업 기밀 사항이라 구체적인 매출 비율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4개 상품으로 구성된 골든블루 제품이 전체 실적의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9년 첫선을 보이며 올해로 출시 10주년을 맞은 골든블루는 국내 최초의 저도수 위스키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최적의 부드러움을 찾기 위해 3년간의 연구 과정을 거쳐 출시됐다.

골든블루가 저도주 위스키를 내놓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당시 국내 위스키 시장은 디아지오코리아의 ‘윈저’와 페르노리카코리아의 ‘임페리얼’ 등 두 골리앗이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밸런타인과 같은 유명 해외 브랜드도 꾸준히 인기를 끌며 좀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차별화된 상품을 고민하다가 골든블루는 급변하기 시작한 소비자 트렌드에 주목한다. 골든블루 관계자는 “소주는 25도에서 20도, 19도, 17도로 점점 도수가 낮아지고 있었고 커피와 담배 등 기호식품도 ‘순한 맛’ 제품 선호 현상이 도드라졌다. 하지만 위스키의 도수는 4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저도주 위스키’ 시장 만든 골든블루…10년 새 17배 매출 증가
물론 기존의 업체들이 위스키의 도수를 낮추지 않는 나름의 이유도 존재했다. 과거부터 국내 위스키 시장은 스코트랜드산 위스키를 의미하는 ‘스카치위스키’가 대세였다.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협회(SWA)는 스카치위스키가 반드시 40도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다.

즉, 40도 미만의 위스키를 만들면 제품 겉면에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스카치위스키라는 표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만큼 기존 업체들은 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골든블루의 생각은 달랐다. 철저한 시장 분석 끝에 국내 소비자들 중 위스키를 소주처럼 스트레이트로 음용하는 이가 많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또 이런 성향에 따라 한 번에 부드럽게 넘어가는 낮은 도수의 위스키를 원하는 ‘니즈’가 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스카치위스키라는 명성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결정하고 한국인의 음용 습관에 맞는 위스키 골든블루를 내놓았다.

◆주식 나눠 주는 ‘블루칩’ 이벤트도 대히트


출발은 쉽지 않았다. 유명 브랜드 틈 사이에서 생소한 위스키 브랜드 골든블루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였다. 결국 내부적으로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골든블루’를 찾게 만들 수 있는 전략을 펼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렇게 골든블루의 판매 증가의 계기가 된 ‘블루칩 프로모션’ 이벤트를 실행하게 된다. 블루칩 프로모션은 위스키 병에 적힌 숫자를 온라인에 입력하면 회사의 주식을 주는 획기적인 이벤트였다.

‘토종 위스키’를 소비자와 함께 키워 간다는 개념으로 구매자에게 주식을 제공해 주주가 되도록 했고 골든블루의 존재감을 각인할 수 있었다. 골든블루의 판매량도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2011년부터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서서히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시장 안착에도 성공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현재 골든블루는 저도주 위스키라는 새로운 시장 카테고리를 형성했다. 위스키 시장은 침체지만 골든블루가 만들어 낸 저도주 위스키 시장은 매년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수치를 들여다보면 최근에는 전체 위스키 판매의 약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골든블루 관계자는 “국내 위스키 시장은 40도 이상의 독한 술 소비가 계속으로 줄어드는 반면 40도 미만의 부드러운 술 판매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시장 주도권이 저도수 위스키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 시장을 만들고 선점한 것이 골든블루인 만큼 매년 꾸준히 실적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저도주 위스키의 인기에 힘입어 4가지 종류로 판매 중인 골든블루는 2018년부터 30%대 점유율을 기록하며 위스키 시장 최강자에 오른 상태다.

2012년 11월 선보인 ‘골든블루 더 사피루스’는 2017년 9월 단일 브랜드 기준으로 판매량 1위에 오른 뒤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고 2014년 5월 출시한 ‘골든블루 더 다이아몬드’는 2017년부터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를 기준으로 골든블루의 총 누적 판매량은 4200만 병을 넘어섰다.

골든블루가 확고하게 자리 잡자 계속해 새 도전에 나서며 매출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2016년에는 둘째 위스키 브랜드 ‘팬텀’을 선보이며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했다. 팬텀은 가성비를 앞세워 젊은 층을 적극 공략하며 위스키업계의 새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2017년에는 국내에서 크게 늘고 있는 ‘싱글 몰트위스키’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세계적 명성을 가진 대만의 싱글 몰트위스키 ‘카발란’을 국내에 독점으로 수입·유통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저도주 위스키’ 시장 만든 골든블루…10년 새 17배 매출 증가
또 지난해에는 세계 4대 맥주 회사인 칼스버그그룹과 유통 계약을 하고 ‘칼스버그’를 국내에 수입·유통하기 시작하며 맥주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높여 나가는 모습이다. 골든블루 관계자는 “향후에도 전통주와 하이볼 등으로 제품 카테고리를 넓혀 국내를 대표하는 주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올해 하반기 들어 갑작스럽게 실적 상승세가 한풀 꺾인 것은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경쟁 업체들 역시 점차 저도주 위스키 시장 진출에 열을 올리며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3분기 골든블루의 매출은 약 17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약 370억원)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위스키 수요가 많은 연말 특수를 노리고 있지만 자칫하다간 10년간 이어 온 매출 상승 기록이 올해 깨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5호(2019.12.16 ~ 2019.12.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