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현장에서 바로 검사를 진행하시겠어요.” 12월 10일 서울 합정동 홈플러스 매장에 있는 중고 폰 무인 매입기를 작동하니 즉석에서 정밀 검사와 보상 지급이 이뤄졌다. 휴대전화를 기기에 연결하면 종류와 상태(기능+외관)에 따라 종합 등급을 가린다. 이날 의뢰한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은 종합 등급 B등급, 판매 대금 30만원의 결과를 받았다. 이후 ‘판매’ 혹은 ‘기부’를 선택할 수 있다. 분실·도난 여부 확인부터 가격 책정까지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알림톡을 통해 계좌 정보를 입력하면 그 자리에서 3분 내 입금까지 완료되는 시스템이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중고 폰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민팃(MINTIT)이다. 최근 매장에서 키오스크가 인기를 누린다면 차이가 있다. 돈을 넣는 자판기가 아니라 돈을 뽑는 ATM이다. 쓰지 않는 ‘장롱 폰’을 넣으면 즉각 현금으로 돌아온다. 업계에 따르면 중고폰 두 대 중 한 대(연간 1000만 대 중 약 500만 대)가 서랍 속에 들어간다. 처음엔 추억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철이 된다. 그대로 버리면 중금속 등 환경오염 우려도 있다. 민팃은 잠자는 휴대전화를 밖으로 꺼내 리사이클 소비 문화를 구축하고 정보통신기술(ICT) 자원 순환에 일조한다는 야심찬 포부를 안고 탄생했다.
잠자는 휴대전화를 깨워라, 민팃!
민팃은 ‘민트’와 ‘IT’를 더한 합성어다. 중고 거래에서 민트급은 최상위 상품으로 통한다. 새것과 같은 IT 중고품이라는 의미로, 중고 폰 시장을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SK네트웍스가 금강시스템즈와 협력해 올해 8월 이후 민팃을 전국 마트에 선보이면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300여 대의 민팃을 통해 회수되는 중고 폰은 월평균 1만2000~1만3000대 수준이다. 하성문 SK네트웍스 ICT사업부장은 “비대면으로 새로운 리사이클 문화·기부 경험을 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최근 중고 거래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민팃은 ‘합리적인 ICT 리마켓, 민팃’ 슬로건으로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수 있는 IT 중고품 거래 구조 조성에 팔을 걷었다. 비대면 무인 매입기를 기반으로 중고 폰 시장을 혁신하고 재사용·재활용이 일상이 되는 문화를 구축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믿을 수 있는 시세’, ‘합리적·일관된 가격 기준’ 등의 가치를 추구한다.
기존에도 중고 폰 거래 시장은 있었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민팃을 이용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고 폰 거래를 꺼리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정보의 불균형이다. 복잡한 거래 단계로 개인이 얻기 힘든 전문적 정보가 존재했다. 주로 개인 간 거래(P2P)나 개별 업체의 시세에 의존하다 보니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거래 가격이 들쑥날쑥했다. 일부 거래 사기도 발생한다. 동일한 중고 폰을 같은 업체에 의뢰할 때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뇌의 외장하드’에 해당하는 휴대전화는 개인 정보 유출에 관한 우려가 크다. 특히 설문 조사 결과 여성들이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민감도가 더 높다. 이와 같은 소비자 불편 사항을 제거하고 고객 가치와 사회 가치를 높이는 데 공을 들였다. 민팃은 공정하고 투명한 가격 평가, 개인 정보 보안에 대한 시각적 보증을 전면에 내세웠다.
먼저 ‘합리적 기준’은 AI를 통해 고도화하고 있다. 민팃은 자체 개발 성능 검사 프로그램(Q-Check Enterprise)을 탑재하고 있다. 30여 종의 검사 항목에 따라 스마트폰의 제품 정보와 상태 등 성능을 자동으로 체크한다. 외관 평가는 머신 러닝을 활용한다. ATM에는 7개의 내장 카메라가 있어 스크래치·찍힘·파손 등 외관의 손상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실시간 국내외 시세 데이터베이스에 따라 좋은 조건의 가격을 추천하고 있다. 민팃 관계자는 “P2P와 비교할 때는 낮을 수 있지만 전문 업체들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을 일관되게 제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고객 정보는 수거와 함께 완전 삭제하고 인증서를 발송하는 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민팃은 자체 개발한 랜덤 오버라이트(Random Overwrite)와 암호화 방식의 데이터 완전 삭제 기술을 특허 출원 중이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와 고려대 디지털포렌식연구센터에서 민팃의 삭제 솔루션에 대해 ‘데이터 복구 불가 판정’ 인증을 받았다. 이와 함께 개인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최대 3억원 보상’을 실시하기로 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고객 접점 넓힌다
민팃은 고객 접점을 넓히기 위해 먼저 대형 마트를 선택했다. 전국 홈플러스와 이마트를 시작으로 향후 더 많은 대형마트와 관공서, 오피스 빌딩 등에 ‘찾아가는 민팃’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 시작은 무인 매입기이지만 온라인·모바일에서도 중고 폰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한다. 이를 통해 중고폰 뿐만 아니라 PC·태블릿 등 다양한 IT 기기의 건전한 리사이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다.
일례로 사용할 수 있는 중고 폰을 재사용하면 대당 약 2만6000원의 환경적 가치가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금강시스템즈에 따르면 현재 민팃을 통해 수거한 중고 폰 가운데 재판매 가능한 휴대전화는 95% 이상 수출되고 있다.
SK네트웍스는 향후 리사이어티 클럽(Re:ciety Club, 가칭)을 통해 ICT 리마켓 시장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리사이어트 클럽은 리사이클을 통해 자원 순환형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고객과 파트너들의 멤버십 브랜드로, 다양한 업계와의 제휴를 통해 리사이클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SK네트웍스 자회사인 SK네트웍스서비스는 중소 규모의 IT 사업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상생의 장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이처럼 리사이클 파트너들이 함께 참여하는 플랫폼을 통해 생태계 조성에 앞장설 방침이다.
[인터뷰] 하성문 SK네트웍스 ICT사업부장“기부 경험 통해 기업의 사회적 가치 확대” 하성문 SK네트웍스 ICT사업부장은 “민팃은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위해 시작된 사업”이라며 “민팃을 시작으로 리사이클 문화를 넓혀 가고 싶다”고 말했다.
SK네트웍스가 중고 폰 시장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인가.
“SK그룹 차원에서 사회적 가치와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SK네트웍스의 정보통신사업부는 국내 최대 규모로 휴대전화 유통 사업을 하고 있다. 전국적인 휴대전화 유통망과 물류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전문 유통 사업자로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원 순환형 사회 구축에 앞장서는 데서 새로운 고객 가치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휴대전화를 유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회수하고 재사용하는 데서 사회적 책임의 역할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17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지난해 태스크포스를 통해 올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민팃은 중고 폰 시장의 무엇을 혁신하나.
“국내 중고 폰 시장의 양성화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정보의 비대칭성, 일부 사기 거래, 개인 정보 유출 등 여러 문제점이 있는 상황에서 생태계를 보다 건전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함께 잠재 고객들을 끌어내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부를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현재 1만 대 기준 1000대 정도가 기부되고 있다. 10명 중 1명은 판매가 아닌 기부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기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12월 한 달 동안 ‘따뜻한 기부’를 확산하기 위해 고객이 기부를 선택하면 SK네트웍스가 기부액을 얹어 고객의 이름으로 보내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5호(2019.12.16 ~ 2019.12.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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