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책상머리 조사와 귀동냥은 망하는 지름길…사업 파트너와의 긴밀한 관계 구축으로 ‘핵심 정보’ 얻어야
세상을 읽고 기회를 만드는 ‘정보 전략’의 중요성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기업이 경영 전략을 짜는 것은 크고 중요한 일이다. 잘못하면 기업이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면밀한 정보 조사와 상황 판단 없이 무턱대고 일을 벌이는 경우가 그렇다.

경영 전략을 짜는 데 토대가 되는 ‘핵심 정보’는 책상머리에서 밤새운다고 얻어낼 수 없다. 사업 환경이나 거래 조건은 직접 일하는 과정에서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그럴듯한 전문가나 정책 관계자의 우아한 말보다 자신과 운명을 같이하는 사업 파트너의 투박한 조언이 훨씬 중요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다.

◆전략과 정보에 대한 환상


경영학 책에는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 수집과 분석에 대해 거창한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세계 경제와 산업의 흐름을 읽고 주요 사업 거점의 사업 환경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전문가 집단의 역할이 나오고 이런 정보를 다양한 기법을 통해 분석해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나온다. 이를 통해 전략과 정보에 대한 환상이 심어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A 대기업의 과거 사례다. ‘세계적 컨설팅사의 전문 인력과 네트워크’를 믿고 러시아 체제 전환에 따른 사업 기회 탐색 작업을 맡긴 일이 있다. 수백만 달러의 돈을 들였지만 몇 명의 컨설턴트가 현지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도서관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국제기구 보고서만도 못했다.

뚜렷한 사업 목표와 아이템 없이 막연하게 ‘경제와 산업 전반’을 조사한다는 생각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자동차·철강·의류·정보통신 등 수많은 사업들의 사업 환경을 도대체 어떻게 파악할 것이며 많은 사업이 비밀스러운 이권 구조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심란한 정치적 속사정을 무슨 수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말인가. 더욱이 사업 환경은 실제로 일하다 보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므로 이런 ‘사전 조사’는 큰 의미가 없다.

나중에 알려진 얘기지만 해당 지역의 기계 및 장비류 수입 관세는 90%에 달하고 까다로운 수입 허가가 필요했다. A 대기업의 사전 조사는 사실상 러시아 지역에 진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추후 현지에 진출해 국영 기업과 합작 공장을 만든 B 기업은 오히려 당국의 적극적 지원으로 무관세 혜택을 얻어냈다. 작은 원자재 무역 거래로 시작해 현지 사업 파트너들의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적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현지 당국자들의 정책 의도에 맞는 사업을 제시해 지원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정말 중요한 정보는 실제로 일하면서 사람을 통해 얻을 수밖에 없다.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시각과 생각도 이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핵심 정보일수록 꼭 필요한, 믿을 수 있는 상대에게만 공유된다. 이런 핵심 정보를 얻기 위해선 사업 활동 등을 통해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첨단의 정보 시스템을 갖춰도 ‘휴민트(humint)’라고 불리는 인적 정보가 중요하고 특히 핵심 관계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확실한 현지 기반을 갖춘 사업가나 전문가 그룹을 활용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핵심 정보를 쥔 당국자가 ‘세계적 컨설팅사의 전문가’에게 이를 공개할 이유가 없고 실제로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신뢰가 쌓였다고 해도 서로의 시각과 이익이 맞지 않으면 함부로 공유하지 않는다.

특히 중국의 인구나 경제 통계에도 일부 나타나듯이 개발도상국의 경우 공개된 정보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 많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개발도상국 특유의 사업 환경에서 공개된 정보는 정확하지 않아 쓸모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현지의 속사정에 밀착해 하나씩 사업을 만들어 가며 정보와 기회를 얻어갈 수밖에 없다.

◆정책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상


정치에 잘못 휘말리면 험한 꼴만 보니 정치는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이들이 있다. 깨끗한 사업을 위해 정치를 멀리한다는 기업인도 있다. 윤리 경영에 대한 소신인지, 정치 혐오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눈에는 ‘나 건드리지 말아 달라’는 하소연으로 보인다.

정치가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상이다. 당연히 정치와 멀리 떨어진 경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탈정치를 외쳐도 경쟁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이를 통해 노조, 협력 업체, 소비자, 유통업자들이 모두 정치를 통해 집단적 이익을(혹은 스스로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국제 관계의 핵심을 이루고 정치·군사적 협력과 경쟁도 산업과 금융에 맞물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경영자는 세계적 범위의 정치·경제·군사적 게임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비롯한 전략 자산의 배치가 한·중 경제 관계 전반을 뒤흔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제아무리 첨단의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으로 ‘중국 마케팅’을 펼친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그렇다면 더 넓은 범위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흐름을 읽고 전략적 의미를 찾아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C 기업은 실제로 국회·언론·시민단체 등 곳곳에 접점을 만들고 전담 임직원을 두는 한편 주요 해외 거점에도 사무소를 두고 정보와 인맥을 관리하고 있다. 홍보인지 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회사의 정보력은 국가 정보 기관을 앞선다는 얘기도 있다.

이 같은 C 기업의 행보에 대해 개인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여기저기 돈 뿌리며 허영심을 달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나름 훈련된 인력들이 곳곳에서 회사 이름을 달고 움직이면 대단히 기민하고 조직적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고만고만한 실무자 수준의 내용, 혹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시시각각 변하는 판을 따라잡는 데는 쓸모없는 한물간 얘기들일 뿐이다.

고급 정보를 다루는 핵심 관계자와 이들과 연결된 정보의 프로들에게 일부 귀동냥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어 귀동냥은 곧 양다리가 되고 눈앞의 업적에 쫓겨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정보 생태계의 프로들에게 봉사하는 ‘기업 내 고정간첩’이 되고 만다.

또한 조직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곳곳에 퍼진 유사 정보원 혹은 유사 정치인들은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폭탄인 셈이다.

◆‘선택적 차단’의 지혜도 가져야


기업은 정보 기관이 아니다. 나름의 전문적 능력과 조직의 힘으로 세상의 흐름을 읽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핵심 정보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그 범위와 깊이는 제한적이다. 깊숙한 속사정과 변하는 판세를 모르고 정보를 다루면 십중팔구 정보원의 의도에 휘둘리게 된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정치는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이라는 말이 있다. 가깝지도 않은데 멀지도 않다니 무슨 뜻일까. 사업에 관련된 핵심 정보는 정확하고 기민하게 확보하되 정치판의 내부자로 휘말려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산업·기술·금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기업은 그 누구보다 중요한 정보를 쥐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제아무리 전문적 식견과 조직을 갖고 있어도 정치권력의 세계에서, 그것도 세계적 범위로 전개되는 정치·경제·군사의 게임에서 내부자로 나설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만만치 않다.

핵심 정보는 정확히 확보하면서 음험한 정보와 권력의 생태계에 휘말리지 않는 불가근 불가원을 위해서는 ‘선택적 차단(decoupling)’의 지혜가 필요하다. 정보 기관들이 조직원이 아닌 ‘관련 인사들’과 적절히 연결해 과업을 수행하려고 노력하듯이 기업도 필요할 때 내부자 커뮤니티에 접속하고 그 접촉면 또한 기업의 본체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사업 파트너는 이런 정보 전략의 소중한 동반자가 된다. 산업과 기술, 나아가 금융의 깊은 내용은 직접 사업하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으니 어떤 전문가보다 낫고 사업 생태계 곳곳의 관계자들과 일정한 협력 관계를 갖추고 있어 필요한 도움을 얻어내는 데도 유리하다. 사업의 성공에 자신의 이익이 달려 있으니 그 누구보다 사업의 성공을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소재·부품 분야의 긴장 관계 속에서 정부는 주요 대기업의 정보 역량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미국이나 중국의 주요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한·일 갈등의 이면에서 가장 예민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한국 업체들과 사업하는 일본의 소재·장비 업체들이고 일본 고위층의 정치적 속사정에 대해 가장 긴밀한 정보를 제공한 것도 역시 일본의 사업 파트너들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공급 업체, 실리콘밸리의 기술자에게 한국의 정보 기관이나 정부 당국자는 별로 신경 쓸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고도의 위성 감시와 도·감청을 하기 전에는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렵다.

국내 대기업들이 여기저기 명함 들고 헤매고 다닌다고 갑자기 답이 나올 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더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 이른 시간에 효과적으로 핵심 정보에 접근해 문제를 풀어 내는 데 사업 파트너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미·중 패권 경쟁이 자동차·반도체·에너지 분야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이에 따라 전개되는 글로벌 분업 체제의 변화에서 어떤 기회와 위협이 생겨날지 관심이다. 전문가 연구 보고서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국내 대기업의 사업 파트너들은 가장 효과적인 정보원이 된다.

성수기에 반도체 물량을 얻어내려면 삼성이나 SK하이닉스의 ‘협력 요구’에는 약해질 수밖에 없고 해외 채권 발행을 따내려는 월스트리트의 금융 사업자들은 죽기 살기로 실리콘밸리 업체들의 협력을 얻어 핵심 정보를 얻도록 도와줄 수 있다.

세계 에너지 패권을 쥐고 있는 강자들도 자원 개발 펀딩에 참여한 국내 사업자들과 관련 투자자들에게는 주요 정보를 공유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보력의 기반들이 모여 나라의 힘이 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5호(2019.12.16 ~ 2019.12.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