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채굴 산업으로 전선 확장…새 ‘성지’로 떠오르는 미국 텍사스
[한경비즈니스 =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글로벌 전략팀 디지털 파트 과장] 미국과 중국은 무역 전쟁뿐만 아니라 기술 패권 경쟁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공지능(AI)·5G·우주항공·블록체인 등 다양한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미·중은 민간 기업과 협력하며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비트코인 채굴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경쟁력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비트코인 채굴 산업은 대부분 중국계 기업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코인셰어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중국은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 점유율(해시레이트 기준)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쓰촨성은 전체 비트코인 채굴 점유율의 54%를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비트코인 채굴 허브로 자리 잡았다.

비트코인 채굴 산업을 선도하는 중국은 자연스럽게 가장 많은 관련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배출했다. 가령 최근 세계 2대 비트코인 채굴 기업 카난은 나스닥에 상장해 13억 달러(약 1조5000억원) 수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 기업 비트메인은 현재 공식적으로 기업공개(IPO)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120억 달러(약 14조원) 수준의 기업 가치를 평가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격해지는 미국·중국의 블록체인 파워게임
(사진)피터 틸 페이팔 공동 창업자/AP연합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채굴 산업

비트코인이 탄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중앙화 현상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비트코인 채굴 산업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텍사스의 행보가 주목할 만하다. 텍사스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저렴한 전기료, 넓은 부지, 명확한 제도, 세제 혜택 등을 내세워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트메인은 텍사스의 버려진 알루미늄 제련소를 비트코인 채굴장으로 바꿔 25MW 규모(미국 평균 2만 가정이 사용하는 전력량과 비슷한 수준)의 채굴장을 가동하고 있다. 비트메인은 텍사스 지역 비트코인 채굴 전력 규모를 50MW까지 키우고 궁극적으로 300MW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2008년 텍사스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던 앨코아 제련소가 문을 닫으면서 지역 주민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비트메인이 비트코인 채굴 공장을 열고 지역 주민들을 고용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 텍사스 주 정부도 이를 반기고 있다.

비트메인의 독주를 막기 위해 미국 기업 윈스턴과 독일 기업 노던비트코인은 합병이라는 강수를 뒀다. 합병 후 두 기업은 텍사스에 비트메인의 시설을 능가하는 규모의 비트코인 채굴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윈스턴과 노던비트코인은 이미 2011년 초 착공을 시작했다. 2020년 1분기까지 300MW, 2020년 말까지 1GW 전력 규모의 비트코인 채굴장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레이어1이라는 미국 벤처 기업은 최근 5000만 달러(약 582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텍사스에 비트코인 채굴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레이어1은 노골적으로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중앙화 현상을 경계하며 미국의 비트코인 채굴 점유율을 현재 5%에서 1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레이어1에 투자한 주주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며 실리콘밸리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 팰런티어테크놀로지 회장은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비유한 바 있다. 그는 비트코인과 비트페이·레이어1 등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한 대표적인 비트코인 예찬론자 중 한 명이다. 디지털커런시그룹은 비트코인 수탁 상품을 출시한 디지털 자산 전문 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을 운영하고 있다. ‘금을 내려놓고 비트코인을 사라’는 캠페인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그레이스케일은 2019년 11월 기준 21억 달러(약 2조4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전 세계 최대 암호자산 운용사다.

피터 틸 회장과 디지털커런시그룹은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 바로 비트코인을 주류로 만들고 생태계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비트코인 가격은 이들의 부와 직결된다. 현재 비트코인 투자 층은 주로 개인이거나 영세한 규모의 펀드다. 이들은 모두 기관투자가의 참여를 이끌어내 판을 키우고 싶어 한다. 기관 자금이 유입될수록 비트코인 가격은 오를 것이다. 그래야 이들도 더 큰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다.

◆180도 달라진 중국의 블록체인 정책
격해지는 미국·중국의 블록체인 파워게임
(사진)중국의 비트코인 채굴장./AP연합
비트코인이라는 신규 자산에 대해 미국의 기관투자가들은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높은 가격 변동성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문제다.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작동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채굴 산업을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미국계 자본이 비트코인 투자 시장에 본격적으로 기관 자금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채굴 지배력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필요가 있다.

채굴의 탈중앙화, 정확히는 미국 기업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채굴 점유율을 빼앗아 와야 미국 기관투자가들이 안심하고 비트코인 시장에 투자하고 비트코인의 가치가 상승할 여건이 마련된다. 틸 회장과 디지털커런시그룹은 바로 이를 간파하고 자신이 투자한 미국계 기업들로 하여금 비트코인 채굴 사업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레이어1의 다음의 발언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비트코인이 수조 달러 규모의 가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미국 기업의 주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피터 틸 회장을 비롯한 다른 주주들의 공감을 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10월 블록체인 굴기를 선언한 이후 비트코인을 대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은 비트코인을 블록체인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최초의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평가했다. 또 중국 정부는 비트코인 취급 거래소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완전한 금지가 아니라 질서를 교란하는 사기꾼들을 솎아내는 작업이다.

비트코인 채굴 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 역시 달라졌다. 2019년 4월까지만 해도 중국 정부는 비트코인 채굴 산업을 ‘도태 산업’으로 지정하며 전방위적 압박을 가할 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블록체인 선언 이후 2019년 11월 들어 중국 정부는 비트코인 채굴 도태 산업 지정 결정을 철회했다. 이는 앞으로 중국 정부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비트코인 채굴 산업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쓰촨성을 글로벌 비트코인 채굴 허브로 키울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본 기고는 회사의 공식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7호(2019.12.30 ~ 2020.01.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