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2020 주요 그룹 승부수? - 삼성]
- 폴더블폰·비메모리 반도체·QD디스플레이가 승부처…이재용 “위기의식 갖고 ‘새로운 10년’ 도전”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2020년 한국의 기업들은 미래 혁신으로 나아가는 전환기에 서 있다. 새 도약의 발판이 될 먹거리 발굴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 공통된 관심은 변화다. 올해를 ‘변화의 원년’으로 삼고 기술 투자와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어떤 신사업에서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을 것인지 ‘올해의 승부수’는 미래를 가늠할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올해 어디로 향할지 주요 도전과 과제를 찾아봤다.
메모리 ‘초격차’ DNA, 전 분야로 확산…‘하드웨어 최강자’ 지킨다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난 1월 2일 경기도 화성사업장 반도체연구소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신년사를 대신해 현장에서 새 목표 달성 의지를 다졌다. 화성사업장 반도체연구소는 삼성전자 미래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제품에 적용할 공정과 소재를 연구하는 곳이다. 연구소는 최근 3나노 공정 기술로 반도체 시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3나노 공정 기술을 보고 받고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사장단과 함께 차세대 반도체 전략을 논의했다. 새해 첫 일정을 반도체 개발 현장에서 시작한 것은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비전을 다시 한 번 임직원과 공유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며 “우리 이웃,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100년 기업에 이르는 길”이라고 재차 당부했다.

2020년은 비메모리 경쟁력 강화의 원년
새해를 맞아 삼성은 ‘위기의식’과 ‘새로운 10년’을 강조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경기 수원사업장에서 가진 시무식에서 글로벌 저성장 기조 고착화, 정치적 불확실성의 확대, 투자·수출에서 소비로의 침체 확산 가능성 등으로 경영 환경이 더욱 어려워지는 가운데 2020년을 새로운 미래를 위한 성장과 도약의 해로 만들 것을 다짐했다.

삼성전자는 1월 8일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매출 229조5200억원, 영업이익 27조7100억원을 올린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삼성전자가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2018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약 14조원 줄었고 영업이익은 31조원 이상 줄어 전년 대비 반 토막이 났다. 2018년 말 이후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이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반 토막 난 성적표를 받은 이 부회장은 올해 경영 계획에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이 부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와 이건희 회장의 과거 경영 철학에 이어 100년 가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병철 창업자가 1983년 이른바 ‘도쿄 선언문’을 통해 D램 사업 진출을 본격화했고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통해 글로벌 삼성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면 이 부회장은 ‘100년 삼성’의 화두를 던졌다.

주력 산업이 정체되고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로 산업이 재편되는 현 상황은 과감한 혁신과 도전을 요구한다. 이 부회장은 “더 큰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생각의 한계를 허물고 미래를 선점해 가자”고 독려했다. 삼성은 스마트폰·TV·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 부회장의 언급처럼 과거의 영광이 미래를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100년 삼성을 위해서는 또 다른 ‘성장 엔진’이 필요하다.

핵심은 역시 반도체다. 2010년 이후 지난 10년간 메모리 반도체는 성공을 계속해 왔다. 삼성은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지배력을 키워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렸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약 60%가 반도체 부문에서 나온다. 한국의 수출 1위 효자 품목으로도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반도체 이외의 분야에서의 성장 정체다. 삼성은 2009년 이 회장의 ‘비전 2020’을 통해 10년 단위의 장기 비전을 내놓았다. 2020년까지 한 해 매출 40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2년 매출 200조원 돌파 이후 지난해 230조원까지 매출을 끌어올렸지만 반도체 업황에 따라 실적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당시 성장 동력으로 꼽은 의료기기와 태양전지 등은 결국 제대로 크지 못했다. 스마트폰 사업은 2013년을 정점으로 시장 성숙기를 만났다. 영업이익 기준 2013년 25조원에서 지난해 9조원으로 성장세가 둔화됐다. 또 디스플레이 사업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맞닥뜨렸다.
메모리 ‘초격차’ DNA, 전 분야로 확산…‘하드웨어 최강자’ 지킨다


5G 개화에 맞춰 비메모리 반도체 대응 나서
2020년은 메모리 편중 구조에서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가 확대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지난해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비메모리에 통 큰 투자를 예고했다. 이는 2009년 이후 9년 만에 나온 10년 장기 비전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약 70%에 해당하는 비메모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133조원의 투자 계획을 골자로 한다. 삼성은 올해 5세대 이동통신(5G) 개화에 따른 비메모리 집중 전략으로 실적 가시화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5G는 비메모리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 기회를 제공한다. 먼저 카메라 기능이 강화된 이미지 센서 수요가 기대된다. 극자외선(EUV) 5·7나노 공정이 적용된 5G 시스템온칩(SoC), 108Mp 이상의 고화소 이미지 센서 등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전장·사물인터넷(IoT)용 칩 등 시스템 대규모 집적회로(LSI) 제품 다변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비즈니스의 변혁이 예상된다. 파운드리는 5G·인공지능(AI)·전장·IoT 등 분야의 수주 확대를 통한 고객 다변화로 성장세를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 측면에서도 지난해 업계 최초로 EUV 공정을 적용한 7나노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이와 함께 5나노 양산이 시장 리더십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 2위인 삼성전자는 각각 약 53%, 18%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최근 고성능·저전력의 반도체 시장 트렌드로 미세 공정에 대한 니즈가 더욱 증가하는 상황에서 EUV 기술을 적용한 5나노 공정을 통해 삼성이 본격적인 추격에 나선다. EUV는 초미세 공정 개발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비메모리 집중 전략과 함께 메모리 분야에서도 낸드플래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설비 투자 확대 전략을 통한 시장 점유율 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영산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D램 시장에 비해 낸드플래시는 아직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올해 D램 가격이 상승하는 국면에서 수익성이 개선되고 낸드플래시 분야로의 공격적인 설비 투자를 통해 업계 주요 플레이어를 견제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메모리 ‘초격차’ DNA, 전 분야로 확산…‘하드웨어 최강자’ 지킨다

폴더블과 QD디스플레이로 기술 초격차
스마트폰 분야는 ‘폴더블과 수익성’이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의 제품 차별화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폴더블폰을 통해 다시 한 번 프리미엄 전략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월 11일 언팩 행사를 열고 갤럭시 S20(가칭)와 함께 클램셸(조개껍데기) 디자인의 폴더블폰을 공개한다. 기존 갤럭시 폴드보다 가격을 낮춘 클램셸 디자인의 폴더블폰을 더 많은 국가에 출시해 폴더블폰의 ‘대중화’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폴더블폰의 대중화는 디스플레이 사업에 호재다.

삼성전자는 올해 총 3개의 폴더블폰 제품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갤럭시 폴드의 후속작인 인폴딩 방식의 폴더블폰 등이다. 폴더블 노트북이 출시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전체 스마트폰에서 지난해 폴더블폰 판매량이 50만 대 수준이었다면 올해 최대 500만 대로 내다본다”며 “이익 기여도는 크지 않아도 폼팩터 변화로 차별화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메모리 ‘초격차’ DNA, 전 분야로 확산…‘하드웨어 최강자’ 지킨다
이와 함께 IM(IT & Mobile Communications) 부문에서 네트워크 시장에서의 도약이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3분기 국내 5G 확대와 해외 롱텀에볼루션(LTE) 망 증설을 지속했고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5G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국내 5G 전국망 확산에 지속 대응하는 한편 미국과 일본 등 해외 5G 사업도 적극 확대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인도를 비롯해 해외 5G 네트워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글로벌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 분야에서는 ‘퀀텀닷(Q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의 체질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 7일 열린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0’에서 삼성전자는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를 적용한 가정용 TV ‘더 월’을 공개하면서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QD-OLED와 마이크로 LED를 선보였다.

QD-OLED를 통해 차세대 TV 전쟁에서의 승기를 잡는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차세대 QD 디스플레이에 13조1000억원 투자를 발표했다. 이어 QD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사업 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초대형·8K 초고화질 등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생활 가전 사업은 건조기·에어드레서 등 라이프스타일 가전 판매를 지속 확대할 방침이다. 2020년 프리미엄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라이프스타일 가전 판매를 늘리는 한편 B2B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가전 등 주요 분야에서의 승부수는 ‘초격차 기술’로 요약된다. 메모리 반도체의 성공 공식인 초격차 DNA를 비메모리를 비롯한 전 사업부에 본격화하고 있다. 후발 주자가 따라오기 힘든 압도적인 실력을 갖춰 향후 10년 전 세계에서 초강력 하드웨어 업체로 자리매김한다는 방향이다. 파운드리 1위 TSMC, 이미지 센서 1위 소니,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1위 퀄컴 등 기존의 시장 강자들을 넘어서기 위한 기술 투자가 각 부문별로 확대되고 있다.

남은 과제는 고객 확보다. 삼성전자의 비즈니스 모델에는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바로 고객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파운드리 사업의 가장 큰 고객인 애플은 스마트폰에서 삼성과 경쟁한다. 퀄컴과도 삼성이 자랑하는 5G 모바일 프로세서 ‘엑시노스’ 칩셋에서 경쟁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반도체 기술에서 적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고객이 확보되지 않으면 TSMC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묘연한 일”이라며 “전략적인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장 전문가는 “5G 시장 대응에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불리는 자율주행차 시장에 대비해 인수·합병(M&A)과 같이 더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메모리 ‘초격차’ DNA, 전 분야로 확산…‘하드웨어 최강자’ 지킨다

[돋보기-삼성 M&A 왜 더딘가]
최근 글로벌 하드웨어 기업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새판 짜기에 나서고 있다. 애플은 최근 인텔의 통신칩 사업부를 인수했다. 이에 비해 삼성은 M&A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동차 전장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하만을 인수해 자회사로 둔 것을 제외하곤 대규모 M&A 사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100조원의 보유 현금이 있는 만큼 올해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업체(팹리스) M&A에 나설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네덜란드의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 NXP가 대표적인 후보로 거론된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승기를 잡기 위해선 ‘에코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사업부 분리 등 분업화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9호(2020.01.13 ~ 2020.01.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