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드러난 수치에만 연연해선 안 돼…데이터를 가공해 유리한 논리로 활용해야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배우는 협상의 지혜
[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최근 프로야구 ‘스토브리그’가 뜨겁다. 자유 계약 선수(FA) 조건을 둘러싼 구단과 선수의 줄다리기가 보도되며 야구팬들은 실제 경기와 또 다른 ‘재미’ 혹은 ‘열받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리고 또 다른 스토브리그도 있다. 야구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른바 ‘야알못’도 빠지게 만들며 시청률 15%를 돌파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드라마 ‘스토브리그’ 얘기다.

이 드라마에서 선수와 구단, 구단과 구단 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협상의 원칙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나타난 3가지 상황을 살펴보며 성공하는 협상을 위한 핵심 요소를 찾아보자.


◆숫자에 깔려 있는 의미를 찾아보자


드라마의 협상을 보면 협상 과정에서 첫째, 논리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엿볼 수 있다. 만년 꼴찌 팀 ‘드림즈’에 부임한 신임 단장 백승수가 처음 시도한 변화는 ‘트레이드’다. 그런데 그게 상식을 벗어난다. 구단의 핵심이자 4번 타자로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임동규라는 선수를 다른 구단으로 보내버리겠다고 폭탄 선언한 것이다.

신임 단장이 야구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 때문에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직원들이 들고일어난다. 당장 트레이드를 철회하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다.

1 대 다수의 협상 상황. 백 단장은 직원들을 불러 모아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왜 임동규는 드림즈를 나가야 하는가’라는 도전적인 제목과 함께 말이다. 한숨을 내쉬며 ‘한 번 얘기해 봐라’는 표정의 직원들 앞에서 백 단장은 스스로 준비한 다양한 통계 자료와 함께 그 이유를 밝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임동규 선수가 지난 시즌엔 많은 홈런을 쳤지만 다음 시즌에 구장의 펜스를 높이게 되면 홈런이 얼마나 줄어들게 될지, 타율은 높지만 정작 팀이 필요한 시기에 안타나 홈런을 쳐 팀의 승리에 기여한 빈도가 다른 선수에 비해 얼마나 낮은지 등이다. 한참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난 직원들은 ‘반박할 말’이 없어진다. 정확한 데이터를 활용해 설득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협상은 결국 ‘논리 싸움’이다. 이 세상에 정보는 많다. 핵심은 그 정보를 어떻게 가공해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로 활용할 수 있느냐다. 위의 사례로 생각해 보면 누구에겐 단순한 ‘홈런 개수’나 ‘타율’이란 숫자지만 그 아래 깔려 있는 의미를 찾고 재해석해 보면 그 숫자를 단순한 사실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즈니스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재료를 납품하는 업체의 영업 사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늘 그렇듯 구매 업체는 단가 인하를 요구한다.

하지만 제조사로서는 더 이상의 단가 인하는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게 ‘자료’다. 최근 원자재 생산 단가 인상 추이, 환율 변동에 따른 단가 상승,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자신이 주장하는 것과 ‘정확히’ 연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요소들이 ‘단가 인상’과 직접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그 자료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주의해야 할 부분은 자기가 근거로 제시한 것과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을 때는 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환율 변동이 예상과 달리 흘러갔을 때는 단가 인상이 아닌 오히려 더 싼값에 팔아야 한다. 결국 다양한 데이터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부터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둘째, 협상에서 항상 안건을 추가해야 한다. 제한된 예산으로 해외 용병 스카우트에 나선 드림즈. 국내에서 점 찍어둔 선수와 어렵사리 미팅이 성사됐는데 갑자기 애초 얘기가 오갔던 금액의 2배 가까운 금액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만큼의 비용 지불은 불가능한 상황. ‘예산 부족’이 대부분 기업의 고민이기에 현실에서도 자주 벌어질 법한 상황이다.


◆열린 시야를 갖고 ‘안건’을 추가해야


이때 또 한 번 백 단장이 협상력을 발휘한다. 선수와의 협상 프레임을 ‘연봉’이 아닌 ‘안정적 출전 기회’로 바꿔 버린다.

다른 구단은 용병 선수가 적응하기를 기다려 주지 않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방출하지만 백 단장은 “드림즈는 한 번도 그런 경우가 없었다”, “선발 투수로 출전을 보장하겠다”, “드림즈에서 안정적으로 한 시즌을 보내면 훨씬 더 많은 돈을 주는 일본 진출도 쉬워질 것이다” 등의 방식으로 선수를 설득했다.

협상에 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시야가 좁아진다. 그러다 보니 단가나 물량 등 애초에 제시된 상황에서 서로 어떻게 ‘덜’ 피해를 볼 것인지에 집중한다. 하지만 성공하는 협상을 하려면 안건을 늘려야 한다.

공장에 기계 설비를 납품해야 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상대는 우리의 제안 가격보다 10%의 단가 인하를 요구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단가 조정이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붙일 수 있는 안건을 찾아보자. 무상 애프터서비스(AS) 기간을 늘려준다는 조건을 제시하면 어떨까. 만약 상대가 현재 운용 중인 설비의 잦은 불량으로 고민이 있다면 AS 비용 절감 측면에서 충분한 메리트를 느낄 수 있다.

혹은 납기 일정이라는 안건을 추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재 주문 물량이 몰려 빠른 설비 세팅과 운용이 필요하다면 납기 일정을 2~3주 앞당기는 게 단가를 10% 낮추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이 밖에 ‘붙일 수 있는’ 안건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열린 시야에서 협상판을 바라볼 수 있느냐다.

많은 돈을 원하는 선수와의 협상은 항상 어렵다. 게다가 모기업의 지원 규모가 줄어들면서 선수 연봉 총액이 줄어든 상황이라면 더 어렵다. 성적에 대한 논리를 제시해도, 연봉 이외의 추가적 혜택을 어필해도 움직이지 않는 상대라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협상력을 좌우하는 딱 하나의 요소만 꼽으라면 많은 협상 학자들은 공통된 얘기를 한다. 바로 ‘배트나(BATNA :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다.

협상 결렬 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뜻이다. 배트나가 있다는 말은 자기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의미다. 결국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배트나가 있어야 한다.

‘스토브리그’의 백 단장 역시 선수들과의 연봉 협상에서 우위에 점하기 위해 배트나 카드를 꺼낸다. 연봉 계약이 지지부진한 선수들을 2차 드래프트(타 구단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에서 충원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린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의 단장들과 접촉해 트레이드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단(단장)으로서는 연봉 계약에 소극적인 선수들에게 ‘당신 말고 다른 선수를 영입하겠다’는 배트나가 있는 셈이다.

그러면 선수들은 어떨까. 드림즈라는 구단이기에 주전으로 뛰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 타 구단 감독과 불화가 있는 선수는 드림즈와의 재계약 말고는 배트나가 없다. 결국 불안해진 선수들은 애초 구단이 제시했던 금액에 맞춰 사인을 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배우는 협상의 지혜
협상을 할 때마다 뭔가 손해 보는 느낌으로 계약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자신이 지금 협상하고 있는 상대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나. 만약 선택지가 없다면 그 협상은 어려운 게 당연하다. 자신의 협상력을 탓하지 말고 비즈니스 구조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지 고민하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이 있다. 협상 과정에서 상대가 요구하는 것 중 자신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지’를 남기며 협상을 끌고 가는 게 맞을까 아니면 단호하게 ‘그 이슈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게 좋을까.

드라마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용병 선수와 만난 자리에서 백 단장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일단 ‘쿨하게 인정’한 것이다. 다른 구단에서 제안한 금액만큼은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이는 절대 바뀔 수 없는 사항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협상에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빨리 밝히는 게 낫다. 그래야 그 안건에 대해 더 이상 논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지가 없는 것을 ‘가능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가능성을 열어두면 오히려 상대가 헛심을 쓰게 해 협상을 더 어렵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끼리 만난 협상은 어렵다. 하지만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좀 더 분석적으로 그리고 좀 더 폭넓게 협상에 다가가는 게 어떨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1호(2020.01.27 ~ 2020.0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