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뉴노멀 속 ‘양극화’ 심해지는 글로벌 경제
-‘축소균형 시대’의 투자 아이디어 찾아야

[한경비즈니스=신동준 KB증권 리서치센터장·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전 세계 금융 시장은 물론 경제와 사회 전반에 다양하고 구조적 변화들이 관찰된다. 수십 년간 검증돼 온 경제 이론과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고 있다.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도 만성화하는 중이다.

반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걱정의 벽을 타고 추세적으로 상승하면서 많은 사람을 당황시키고 있다. 무엇이 변했을까. 새해가 시작된 만큼 경제학을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는 구조적 변화들을 짚어 봤다.

◆역사상 가장 긴 경제 확장기 거치는 미국

우선 다양한 경고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는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미국 경제는 2009년 6월 이후 128개월째, 역사상 가장 긴 확장 국면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오래됐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곧 상승 국면이 꺾일 만한 징후를 찾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가계와 기업은 대출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늘린다.

특히 기업은 생산을 통해 재고를 미리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앞으로의 수요 증가에 대비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수요가 받쳐주지 못하면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며 모든 것이 꼬이면서 경기 침체는 시작된다.

그러나 지금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 이전에 관찰되는 과도한 부채와 대출은 물론 과잉 투자, 소비·재고 등이 별로 없다. 쌓인 것이 없다 보니 경기 침체가 올 만큼 터질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 영향으로 미국 경제의 상승 속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완만하다. 경기 확장 국면이 길어졌으니 곧 끝날 때가 가까이 온 것이 아니라 성장이 천천히 진행됐기 때문에 확장 국면이 길어진 것이다.

경제 성장이 밋밋하게 진행된 이유는 ‘부채 없는 성장’ 때문이다. 미국의 가계는 금융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빚을 줄여 오고 있다. 과거 경기 정점 부근에서 10%를 훌쩍 넘었던 은행의 대출 증가율도 현재는 5%대에 불과하다. 부채의 위기를 겪은 터라 이후 잘 안 빌리려고 하고 잘 빌려주려고도 하지 않는 분위기다.

금융 규제 강화도 한몫했다. 민간에서 돈이 잘 돌지 않아 신용 창출이 되지 않으니 경제 성장은 느리고 물가도 오르지 않는다.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인들이다. 결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돈을 풀고 있다.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QE)가 도입됐고 정부 부채가 급증했다. 하지만 늘어난 정부 부채 수준을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 양적 완화 또는 최근 현대통화이론(MMT)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사 주면 된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장·단기 금리 차가 역전되면 향후 1~2년 안에 예외 없이 경기 침체가 도래했다는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도 비관론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도 지금처럼 중앙은행이 대규모 장기 국채를 보유하고 있었던 사례는 없었다. 2018년 말 기준 미국의 잔존 만기 15~20년 국채의 60% 이상을 미국 중앙은행(Fed)이 보유하고 있었다. 일정 비율 이상의 국채를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규제 때문에 이들은 마이너스 금리의 채권이라도 사야 한다.

◆대형 기술 기업이 이끄는 미국 증시

“가계는 빚을 계속 줄여 가고 있고 경제는 밋밋했는데 주가는 왜 계속해 오르나요. 버블 아닌가요.” 최근 수년 동안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이는 기업의 양극화 때문이다. 미국을 이끄는 대형 기술주이자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인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페이스북의 주가는 2013년 이후 330%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표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10% 상승했다. 반면 한국의 코스피지수는 10% 오르는 데 그쳤다.

이들 소위 4차 산업혁명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나 수요를 창출해 경제 전반의 파이를 키우기보다 기술 혁신·온라인·플랫폼을 무기로 여타 산업과 기업들의 이익을 잠식하며 성장한다. 최근 5년 동안 이들 5개 기업의 순이익 증가율은 연평균 15.9%에 달한다. 반면 S&P500 기업들의 순이익은 7.4% 증가했다. 초우량 500개 기업인 이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국내총생산(GDP)과 함께 발표되는 미국 전체 기업의 이익은 5개 기업에 이익을 빼앗기며 최근 5년간 연평균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가총액 상위 소수 기업들만 성장하며 주가 상승을 이끌어 갈수록 경제 전반과 여타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익을 잠식당한다.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기업의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양극화는 경제에서도 관찰된다. 미국의 ‘투자’는 주택 투자를 제외하면 구조물과 장비(설비), 지식재산권 상품 투자 등 세 부문으로 나뉜다. 전통적 산업과 연계된 구조물, 산업·운송·기타 장비 투자는 아직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만 추세적으로 감소하는 중이다.
‘밋밋함’이 만들어낸 미국 경제의 지속 성장
반면 신산업과 관련된 지식재산권 상품과 정보 처리 장비 투자는 비율이 낮지만 추세적이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결국 이들을 합친 전체 경제 지표는 밋밋하게 성장하거나 둔화하면서 퇴장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신산업들은 작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차별화되는 중이다.

경제는 현재를 반영해 밋밋하지만 주가는 미래의 성장성을 반영하며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대형 기술주들에 높은 시장 가치를 부여하는 중이다. 이러한 추세가 전통 산업으로 다시 되돌려질 수 있을까. 경제와 괴리되고 있는 주가는 버블이 아니라 산업 구조가 변화된 금융 위기 이후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경제든 금융 시장이든 전체를 보고 있으면 투자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분리해서 보고 성장하는 섹터에 집중해야 한다.

인류가 맞이해야 할 인구 감소의 시대는 역성장과 디플레이션에 익숙해져야 하는 축소 균형의 시대다. 일본처럼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2008년부터)한 나라도 있고 아직 인구는 늘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처럼 15~64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시작된 나라들도 있다. 금융 시장의 가격들은 미래에 예상되는 현금 흐름을 앞당겨 현재에 반영하며 형성되기 때문에 이미 우리가 거래하고 있는 금융 자산에는 미래의 인구 감소 현상들이 녹아 있다.

축소 균형의 시대가 무조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일본처럼 1인당 GDP가 성장하는 한 개인의 삶의 질은 개선될 수 있다. GDP보다 1인당 GDP가 중요하다. 축소 균형의 시대에서는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는 역성장한다. 이제 경제나 수요가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자본을 축소해야 한다.

“미국 주식 시장은 자사주 매입 말고는 수요가 없기 때문에 금방 무너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미국 증시를 주도했던 대형 기술주들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따른 발행 주식 수 축소와 배당 확대는 주주 환원 정책의 일환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축소 균형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인당 GDP와 같은 맥락에서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려는 노력이다.

이 기업들은 저금리 부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자기 자본을 줄인다. 이런 정책이 가능할 만큼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차별화는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도 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중요한 이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2호(2020.02.03 ~ 2020.0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