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새로운 감각·가치관 지닌 ‘밀레니얼 CEO’가 온다]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회사가 성장 멈추지 않아야 개인의 성장도 가능”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가 우리 사회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은 소비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한편 노동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나타낸다. 지금까지 밀레니얼 세대는 주로 직장인 중심의 이슈로 다뤄져 왔다. 윗세대와 섞이지 못하는 튀는 세대가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됐다.

하지만 이젠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밀레니얼 세대를 조명해 볼 때다. 저성장 시대로 대표되는 지금 오늘의 상황에서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 내는 밀레니얼 CEO들은 맨땅에서 부를 일군 1세대 기업가, 벤처 붐 열풍을 타고 급성장한 벤처 1세대와 무엇이 다를까. 여행·커뮤니티·콘텐츠·오피스 푸드테크 등 각 분야에서 최근 주목 받는 창업 6년차 이상 밀레니얼 CEO 4인을 만났다.
“기존 성공 공식 뒤집힌 시대…경험 없는 게 오히려 강점이죠”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조직의 평균 나이는 30.01세. 직원 130여 명은 모두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최고경영자(CEO)는 ‘재미’를 추구하며 일하고 직원은 ‘본인의 성장’을 목표로 일한다.

34세의 이동건 대표가 이끌고 있는 트래블 테크 기업 ‘마이리얼트립’의 이야기다. 일에서 느끼는 재미와 개인의 성장은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2019년 마이리얼트립은 거래액 3600억원을 기록했다. 2018년에 비해 3배나 늘어난 실적이다. 올 1월에는 사상 최대 월 거래액(520억원)을 찍었다.

CEO와 조직원 대부분이 밀레니얼 세대인 마이리얼트립의 주 고객 역시 밀레니얼 세대다. 밀레니얼이 일하고 밀레니얼이 소비하며 성장한 마이리얼트립의 경영 방식은 무엇이 다를까.

마이리얼트립을 9년째 이끌고 있는 이동건 대표는 어느새 창업 선배가 됐다. 그가 말하는 밀레니얼 CEO들의 특징은 ‘나이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20대에 창업했기 때문이다. 나이에 대한 선입견은 곧 ‘나이가 어리면 경험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대표는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유연성’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경험은 쌓으면 돼요.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고 기존의 성공 방정식이 완전히 뒤집히는 시대에서는 오히려 경험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 될 수 있죠. 지금은 경험보다 새로운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밀레니얼 기업인의 핵심은 ‘유연성’

이 대표 역시 본인의 경험을 경계한다. 직원들의 전문성을 믿고 오롯이 맡기기 위해 본인 사무실도 층을 옮겼다.

“회의 때마다 ‘내가 그거 3년 전에 생각했는데 안 했던 이유가 있어’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데 정말 힘들게 삼켜요. 빠른 변화 속에서 옳은 판단을 내리려면 내 과거의 경험을 부정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마이리얼트립의 모든 의사결정은 데이터에 기반해 이뤄진다. 그러기 위해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가 데이터에 접근해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어제 들어온 신입도 모든 지표를 바로 확인해 그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성장을 거듭해 온 이 대표의 경영 철학은 확실하다. ‘사람’이 전부다. 그는 마이리얼트립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포인트마다 좋은 인재 한 명이 회사 전체의 성과를 바꾸는 것을 경험했다.

“회사에 좋은 사람이 들어오면 기업의 성장과 조직 문화 등 많은 부분이 저절로 해결됩니다. 대표가 책상에 앉아 문서를 작성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 한 명을 찾으러 다니는 게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죠. 대표는 좋은 사람을 찾아 옳은 자리에 배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창업 초반 대표의 역할에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대학 졸업장을 갓 받아든 그는 ‘대표’는커녕 ‘팀장’의 역할도 몰랐다고 말한다.

“큰 청사진을 그리기보다 실무에 간섭하려고 했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서로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전문가들에게 위임할 일들을 모두 위임하고 나니 대표에게 남는 것은 좋은 인재를 채용하고 평가와 보상 체계를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표가 생각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일까. 첫째, 마이리얼트립의 중심 가치인 ‘고객 지향’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둘째, 편안한 목표보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사람이다. 셋째, 우선순위 설정에 능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빠른 시간 내에 성장하는 기업인 만큼 오늘 할 일, 다음 주에 할 일, 다음 달에 할 일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인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좋은 사람을 어떻게 찾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단순했다. “유능하면 소문이 나요. 그럼 연락하고 만나죠. 그런 분들은 보통 그 회사에서 이미 좋은 평가와 보상을 받고 있거든요. 그 회사를 나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하죠. 연봉 25% 올려준다는 금전적 보상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이 대표는 유능한 인재일수록 ‘일의 의미’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조직원이 성과를 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성취감을 줘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좋은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서는 그분들이 신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 일 말고는 다른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리얼트립은 직원의 80%가 재택근무를 경험한 적이 있다. 재택근무를 할 때 출퇴근 이력을 체크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전문성을 믿기 때문이다.
“기존 성공 공식 뒤집힌 시대…경험 없는 게 오히려 강점이죠”
◆빨리 성장해야 더 좋은 인재 모인다
이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은 ‘얼마나 안정적이냐’가 아니라 ‘내 성장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느냐’가 됐다”고 말한다.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이 ‘개인의 성장’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회사의 수명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고 잦은 이직을 통해 몸값을 높이는 게 당연해진 시대다.

그렇다면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회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대표는 회사 역시 성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성장하는 회사에 속한 직원들은 성장할 수밖에 없어요. 반면 회사가 성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성장에 목마른 인재들은 이탈할 수밖에 없죠.”

이 대표는 마이리얼트립을 테크 기업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유통하는 상품이 여행일 뿐 개발과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이라고 말했다. 정규직 직원 중 IT 인력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다.

이 대표가 창업에 뛰어든 것은 스물일곱 살 때다. 여행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기존 사업자들은 반대로 도태되고 있었다. 자유 여행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전통 패키지 여행의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 절반 이상이 해외로 나갔지만 전통 여행사들의 위기는 이어졌다. 이 대표는 시장의 간극을 빠르게 선점했다. 국내에 자유 여행 플랫폼이 전무하던 2012년 마이리얼트립은 자유 여행자와 현지 가이드 투어를 연결하는 사업 모델을 선보였다.

마이리얼트립의 가이드 투어는 상품보다 콘텐츠에 가깝다. 전문 가이드가 아닌 현지 교민이나 전문가들이 만든 특색 있는 프로그램은 마이리얼트립만의 경쟁력이 됐다.

2018년엔 숙박과 항공까지 론칭하며 여행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마이리얼트립은 몸집을 키우며 2016년부터 매년 3배씩 성장해 왔다.

기존 여행사의 수익 모델은 항공과 호텔 예약이었다. 현지에서의 경험은 단가가 싼 현지 하청 업체를 통해 이뤄졌다. 반면 마이리얼트립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던 ‘경험’부터 접근했다. 마이리얼트립은 ‘파리에 간다’는 사실보다 ‘파리에서의 특별한 경험’에 목말라 있던 밀레니얼의 니즈를 충족시켰다.

이 대표는 빠르게 성장하던 여행 시장에 올라탔다. “마이리얼트립이 성장할 수 있던 이유는 시장 자체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업자가 아무리 의지가 넘치고 구성원들이 모두 새벽까지 야근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의 평균 성장률을 이기기 어렵거든요.”

마이리얼트립은 여행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해외 출국자 수는 지난해 2871만4251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외여행 시장은 전 세계에서 5등 규모다. 이 대표는 “이렇게 고성장하는 시장 안에서는 혁신을 이뤄내는 스타트업도 고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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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