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모두가 고성장한다면 좋겠죠.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도 ‘돈이 흐르는 골목’은 있습니다. 밀레니얼 최고경영자(CEO)들은 그 골목에서 기회를 사업으로 연결합니다. 혹은 정체된 시장에서 비효율과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 흐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미디어와 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박 대표는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디지털 투자를 가속하기 위해서는 유료 콘텐츠 모델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신문·잡지·출판 시장에서의 한계를 퍼블리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월 2만1900원에 모든 글을 볼 수 있는 구독 모델을 성공시켰다. 조만간 현장 전문가들의 큐레이션을 통해 뉴스 서비스도 시작한다.
“퍼블리는 ‘일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타깃입니다. 지속적으로 고객들에 대해 시장 조사하고 인터뷰하면서 접점을 만들어 왔어요. 고객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파는 사람도 밀레니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30여 명의 전 직원이 밀레니얼 세대이고 그중 3분의 2는 1990년대생입니다.”
박 대표는 “지금의 밀레니얼에게 중요한 것은 ‘왜(WHY)’입니다”고 말했다. ‘왜’가 명확하지 않으면 동기부여도 설득도 어렵다는 의미다. 그는 “이전 세대는 ‘왜 이걸 해요’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왜’라는 질문을 항상 던질 준비가 돼 있고 답변할 수 있어야 소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또한 19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를 향한 사회적 통념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밝혔다. ‘꿈이 없는 세대’, ‘현재를 즐기는 욜로족’ 등은 일부의 사례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가 현장에서 부닥치는 밀레니얼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절박하고 치열하며 또 일을 열심히 하고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다. 기저에는 ‘불안감’이라는 정서가 있다. 다만 기존 세대와의 차이는 ‘조직에 헌신’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력 쌓기’에 더 열심이라는 데 있다.
일의 결과를 보고 평가하는 조직 문화
전 직원이 밀레니얼인 퍼블리의 조직 문화 철학은 남다르다. 우선 이곳에는 출퇴근 시간이 없다. 별도의 근무 시간을 정해 두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투입된 노동력을 측정하는 관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박 대표는 “어떤 결과물을 냈는지,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 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제조업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요즘의 서비스들은 지식 노동자들이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성과를 일의 임팩트로 측정해야지 옛 방식을 일률 적용하면 안 된다고 봤어요. 각자 그 주의 할 일이 있고 나머지는 개인의 재량에 맡깁니다. 보고 체계가 따로 없는 대신 서로서로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있는 구조죠.”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가치는 ‘투명성’이다. 회사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누구도 정보에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주요 정보가 특정인을 통해 흐르는 곳과 모두에게 개방되는 조직은 “생산성이 다르다”는 게 박 대표의 지론이다. 퍼블리는 재무 정보를 비롯해 회사의 주요 정보들, 타 부서의 업무 흐름, 개인의 스케줄 등이 구글 캘린더와 메신저 ‘슬랙’을 통해 공개된다.
이와 함께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개인의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마음속에 있는 불편한 생각들을 밖으로 꺼내 이야기할 수 있어야 건강하고 오래갈 수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한 전담 인적자원관리(HR) 직원을 채용했죠. 전 직원과 일대일 미팅을 한 시간 이상 갖고 우리 회사의 커뮤니케이션이 건강한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파악해 더 나은 문화를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회사에서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지 문제에 대한 같은 이해가 있어야 각자 본인의 시각에서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신뢰’가 기반이 돼야 투명성이 작동한다. 그래서 퍼블리는 임직원을 채용할 때도 ‘신뢰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협업’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가족적인 분위기’는 지양한다. 공동의 목표에 달성하는 과정에서 협업을 하지만 일 이외의 사적인 대화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혼밥’도 일상적인 풍경이다. 전 직원에게 주어진 법인카드로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 일에만 몰입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회사가 지향하는 미션·비전·전략·문화를 팀원 개인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얼라인먼트(alignment)를 중시한다. ‘어떤 사람이 퍼블리 팀과 문화적으로 잘 맞는지’ 채용 과정에서 확인한다. 퍼블리에서는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 ‘퍼블리의 미션에 공감하는 사람’, ‘항상 배우는 사람’, ‘팀과 함께 일하는 사람’, ‘팀 의사결정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 ‘목적을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 ‘겸손한 사람’, ‘솔직한 사람’, ‘배울 점이 있는 똑똑한 사람’,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사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 사람’과 같은 가치(Value)와 적성(Aptitude)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러한 특성이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고 있다.
일은 곧 삶의 원동력
박 대표의 하루 일과는 미팅으로 시작한다. 오전 미팅 시간에 따라 출근 시간이 결정되고 퇴근은 대개 밤 11~12시 사이에 하는 편이다. “업무 시간은 눈 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라고 한다. 사무실을 벗어나도 스마트폰을 통해 끊임없이 e메일과 메시지를 확인한다. 잠들기 전에도 퍼블리 서비스에 도움이 될 법한 아티클을 찾아 메신저에 공유한다. 주말 중 하루는 휴식을 취하는데 이때도 일과 연결돼 있다.
“웬만하면 집 밖에 나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밀린 책을 보든지 넥플릭스나 왓차플레이를 통해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를 몰아서 봐요. 이런 콘텐츠를 통해 영감을 받곤 하죠.”
최근 감명 깊게 본 책은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슈독’을 꼽았다. 무모한 열정과 끈기밖에 없던 스물네 살의 청년 필 나이트가 일본 운동화를 수입해 보따리 장사를 시작한 이후 세계적 브랜드 나이키를 일궈 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자서전이다. 박 대표는 “20년 가까이 많은 고생을 하면서 전전긍긍 버티는 스토리”라며 “역시 ‘존버(계속 버티다)’가 답이라는 위로를 얻는다”고 말했다.
또 ‘스타트업의 구루’로 통하는 벤 호로위츠가 쓴 ‘하드 씽’은 저자가 스타트업 CEO로 활약하며 겪은 숱한 좌절과 어려움, 역경을 극복한 생생한 경험담이 녹아 있는 책이다. 이와 같이 글로벌 기업가들의 평전을 읽으면서 힘들 때 도움을 얻고 있다.
박 대표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박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롤모델들은 일을 통해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다”며 “일은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대표만큼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조직과 개인의 관계는 ‘기브 앤드 테이크’일 때 더 건강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입사하면 정년을 보장하던 시기는 끝이 났다. 조직에 헌신할 것을 요구하는 게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선 “서로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일하고 주고받을 게 없을 땐 건강하게 헤어지는 게 더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큽니다. 건강을 지키고 공부를 끊임없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퍼블리도 ‘지적 성장’을 돕는 서비스를 하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서비스를 통해 교육 시장을 바꿔보겠다는 게 퍼블리의 비전이자 제 꿈입니다.”

[커버스토리 : 새로운 감각·가치관 지닌 ‘밀레니얼 CEO’가 온다]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기존 성공 공식 뒤집힌 시대...경험 없는 게 오히려 강점이죠"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나의 핏' 중시하는 밀레니얼...관심·취향 공동체에 더 소속감 느끼죠"
-박소령 퍼블리 대표 "밀레니얼 세대를 움직이려면 '왜'에 대한 답월 줘야 합니다"
-조정호 벤디스 대표 "회의록 코멘트에 모르는 신조어 달릴 땐 저도 세대차 느끼죠"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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