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기존 규범과 제도보다 ‘행동주의 가치’ 중시돼-‘위기관리 능력’이 최우선 과제
[한상춘의 국제경제]위험이 ‘상수’가 된 디스토피아의 시대
[한경비즈니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홍콩은 중국과의 국경 일부를 폐쇄했다. 마지막 홍콩행 열차를 타려는 중국인들.
매년 초 스위스의 작은 휴양 도시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 경제 포럼(WEF)이 2020년대 진입을 앞두고 단골 메뉴로 다뤄 왔던 유일한 과제가 있다. ‘디스토피아’다. 미국도 ‘우리 국민, 우리 미래(our people, our future)’라는 오바마 정부 시절에 제시됐던 미래 어젠다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디스토피아 문제를 거론해 주목을 끌었다.

디스토피아눈 유토피아(utopia)의 반대되는 개념인 반(反)이상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의 가장 어두운, 특히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는 인간 현실 세계의 이상향으로 유토피아를 제시했는데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란 뜻으로 현실에 없는 이상적인 곳을 말한다.

디스토피아 사상이 담긴 문학 작품으로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꼽힌다.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환경 문제로, 지구는 태양이 사라져 어두운 세계가 되고 다른 하나는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돼 치안과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도시와 위생 환경이 사람보다 쥐에 익숙하도록 변한다는 것이다. 2020년대 진입을 앞두고 다시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높은 관심을 끄는 것은 당시의 예상이 현실로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위험이 ‘상수’가 된 디스토피아의 시대

◆한국 ‘실업에 따른 디스토피아’ 위험 지적

WEF는 앞으로 10년 동안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위험 요인으로 경제·환경·지정학·사회·기술 등 5개 분야에 걸쳐 총 28개의 디스토피아 우선 과제를 발표했다. 28개 디스토피아 우선 과제를 발생 가능성과 파급력 등의 기준으로 각각 순위를 매긴 점이 특징이다. 각국 정책 당국자, 기업인, 금융인 그리고 개인이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도 역력하다.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다섯 가지 위험은 ①국가 간 분쟁 ②극단적 기상 이변 ③사이버 테러 ④국가 거버넌스 실패 ⑤높은 구조적 실업과 불완전 고용이다.

발생 시 파급력이 가장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다섯 가지 위험으로는 ①수자원 위기 ②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과 같은 급속한 전염병 ③대량 살상무기 ④국가 간 분쟁 ⑤기후 변화 대응 실패 순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30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국가 간 분쟁 등 지정학적 위험이 최상위권에 자리한 것이 주목된다. 글로벌화에 대한 환멸은 △국가 거버넌스 실패 △국가 간 분쟁 △대규모 사이버 테러 공격 △국가 붕괴 위기 △대량 살상 무기 등으로 촉발된 국민 감정과 함께 각국의 이기주의와 군축 경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위험은 사이버 테러 공격 등 기술적 위험의 대두와 새로운 경제 환경의 영향으로 종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지적한 점도 눈에 들어온다. 금융 위기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 가릴 것 없이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이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음에 따라 앞으로는 국가주의의 동인이 강화돼 국가 간 혹은 국가 내 갈등을 더 조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재해, 국제 분쟁, 사이버 테러 등을 지적한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에 대해서는 특별히 실업에 따른 디스토피아를 지적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적인 위험의 경우 대규모 사이버 공격은 파급력과 발생 가능성 면에서 해가 지날수록 상위권으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사물인터넷(IoT) 기술은 혁신을 가져 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환경은 해킹과 정보 유출 등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IoT 등의 기술은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환경에 큰 혁신을 가져오고 있지만 노동 시장의 대규모 파괴 등 잠재적인 시스템 위험도 함께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교토 의정서 등을 통해 각국이 노력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와 대응책 마련이 없어 환경 디스토피아의 가능성이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2020년대 들어 파급력이 가장 큰 환경적 디스토피아로 △수자원 위기 △기후 변화 대응 실패 △생물학적 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 등이 꼽힌다. 식량 자원, 수자원, 에너지, 기후 변화 등을 미국 국가정보회의(NIC)에서 2030년 가장 중요한 메가트렌드로 선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 위험의 경우 경제적·사회적·환경적 발전으로 시스템상 취약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우려한 것도 주목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국가 간에 차이가 좁혀지고 있지만 국가 내에서는 높아지는 것이 사회적인 디스토피아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지적이다. 특히 개도국에서는 빠른 기술 변화로 만성적인 대규모 실업을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방치한다면 ‘아랍의 봄’과 같은 폭동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위험이 ‘상수’가 된 디스토피아의 시대

◆중국 시진핑 주석, 우한 폐렴이 시험대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은 사회적 안정을 저해하고 평등과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사회적 위험에 대한 논의와 해결책 마련을 어렵게 한다. 이 상황에서 사회 구성원은 안정감을 찾기 위해 국가 전체에 속하기보다 심리적 소속감과 동료 의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은 집단, 즉 다양한 커뮤니티에 속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사회적 디스토피아 해결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더 우려되는 것은 공공 부문의 과다 부채와 고용 문제로 세계 경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실업 문제가 2020년대 들어 개선되기보다 오히려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높은 실업은 임금 수준을 낮게 유지해 저물가 압력을 유발하고 저물가는 채무자의 채무 상환 능력을 떨어뜨려 금융 시스템 안정에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 시대에는 종전의 규범과 제도보다 정의와 도덕 등과 같은 이른바 행동주의 가치와 기본(back to the principle)이 더 중시될 가능성이 높다. 디스토피아 그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포해 위험이 상수항(함수 y=a+bx에서 ‘a’)이 되는 2020년대에 모든 경제 주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위기관리 능력이 최고 덕목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우한 폐렴 사태로 위기감을 느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종전과 달리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2021년 공산당 선언 목표 달성을 앞두고 중국 경제는 나라 안팎에 현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우한 폐렴을 포함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느냐에 따라 중국 경제가 ‘재도약하느냐’ 아니면 ‘중진국 함정에 빠지느냐’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시 주석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