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확장되는 도시의 이동 공간…글로벌 자동차 기업들 개발 경쟁 본격화
미래 도시의 하늘길 바꿔 놓을 ‘개인용 항공기’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2020년 세계 가전 전시회(CES) 행사에서는 미래의 도심형 이동 수단인 개인용 항공기들이 등장해 큰 주목을 받았다. 개인용 항공기는 한때 벤처 기업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수의 항공기 제조업체들과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개발 대열에 직접 뛰어들면서 상용화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도심의 이동 수단이 더 다양해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상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 중심에서 탈피해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자동차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더 큰 변화는 하늘에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도심의 공중에서 이동하는 교통수단에 대한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어서다.

현재 도심형 공중 이동 수단은 개인용 항공기(PAV : Personal Aerial Vehicle), 드론 택시, 플라잉 카(Flying Car), 도심형 공중 이동체(UAM : Urban Aerial Mobility)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PAV라는 개념은 최근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1970년대부터 수요 대응형(on-demand) 도심형 항공 교통수단으로 헬리콥터가 사용돼 왔다. 하지만 헬리콥터는 대중화된 교통수단으로 발전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복잡한 작동 구조상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가만 조종할 수 있는 데다 대당 가격이 자동차보다 훨씬 비싼 약 10억원대에 달해 대중화되기에는 너무 비싸다. 도심의 일상 활동을 방해할 정도로 소음도 너무 크다. 택시처럼 도심에서 대량 운용되기에는 어려운 문제가 너무 많다. 더군다나 디젤 차량보다 훨씬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는 점에서도 지속 가능한 대중 교통수단이 되기에 부적합하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PAV다. PAV는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대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포화 상태에 달한 도심의 교통 상황과 환경오염이란 두 가지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도 각광받고 있다. PAV는 자원 낭비와 공해를 최소화해 친환경적인 도시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스마트 시티의 정책 입안자들이 주목하는 이동 수단이다.

PAV는 전동 수직 이착륙 항공기
오래전부터 PAV 개발에 참여해 온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전문가 마크 무어에 따르면 기존 항공기와 PAV의 차이는 사용 편의성과 안전성·효율성, 이착륙 거리(Field Length Performance), 사회적 수용성(Affordability)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도시를 연결하는 공간에서 사용되는 기존 항공기와 달리 PAV는 도심에서의 운항을 전제로 한 기술들이 대거 적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즉 대중적인 PAV가 되려면 작동 공간이 부족한 도심에서도 이륙과 착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소음도 적어야 하고 안전한 교통수단이어야 한다. 또 도심의 공해 문제를 초래하지 않도록 친환경성을 충족할 수 있는 동력원이 탑재돼야 한다.
이런 제약 조건 때문에 PAV에는 기존 항공기들과 달리 이착륙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단거리·수직이착륙 기술, 전기 동력원, 소음 저감, 저중량 고강도 복합 소재, 조종성 향상, 자동·자율비행, 집단 PAV 관제 기술, 사이버 해킹 보안 기술, 안전성 향상 기술 등이 필수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PAV로 간주되는 항공기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닌다. 최대 4~5명이 탑승할 수 있고 최고 속도는 시속 300km 이하, 최대 이동 거리는 수백km 이하다. 또 도심에서 누구든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자율비행도 가능하고 소음도 적으며 환경 친화적인 전기 동력원을 갖추고 있다. 기술 발달에 따라 과거 개발되던 PAV들은 단거리 이착륙(STOL : Short Take-off/Landing) 항공기였는데 반해 최근 개발되는 PAV들은 대부분 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Landing) 항공기다.

프로스트앤드설리번 등 조사 기관들에 따르면 PAV는 시장화 초기에는 군용, 재난 대응용, 응급 의료 등 특수한 용도로 도입되다가 가격 하락이 진행되면 여객·화물 운송 등의 민간 상업용으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유형의 PAV
PAV의 개발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최초로 개발된 PAV는 1917년 글렌 커티스의 커티스 오토플레인이다. 1926년에는 헨리 포드가 플리버라는 이름의 PAV를 개발하기도 했다. 초기의 PAV 개발 시도는 모두 무위에 그쳤다. 커티스 오토플레인은 시험 비행에 실패했고 헨리 포드의 PAV는 시험 비행 도중 추락해 인명 사고를 일으키면서 개발이 중단됐다. 미 연방항공청(FAA)의 인증을 받는 등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PAV는 1949년에 등장한 에어로 카(Aero Car)다.

에어로 카는 상용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비행하려면 사용자가 직접 로터와 날개를 달아야 하는 등 실용성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미국과 구소련 등을 중심으로 PAV 개발이 지속되긴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PAV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선구자적인 벤처 기업들이 PAV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는 PAV는 항공기로서의 구조와 기능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개발 초기에 대거 등장한 유형은 지상 주행과 비행을 모두 할 수 있는 공지 복합형 PAV다. 자동차에 고정익기 또는 회전익기가 결합된 형태인데 PAV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한 1990~2010년대에 선구자 격인 벤처 기업들이 주로 개발하던 방식이다. 이런 유형의 PAV로는 테라퓨지아의 트랜지션, 에어로모빌의 에어로모빌 3.0, 4.0 등이 있다. 공지 복합형 PAV는 지상 주행과 비행을 동시에 추구한 대가로 비행 성능의 한계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지상 주행을 하려면 자동차용 안전 관련 법규를 충족해야 하므로 기체를 자동차처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기체가 무거워져 PAV의 핵심인 비행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민간용 소형 드론 시장이 커진 이후에는 복수의 회전익(rotor)을 갖춘 멀티콥터형 PAV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 멀티콥터 방식은 소형 드론의 상용화를 통해 기술적 완성도가 입증된 데다 비교적 구조도 단순해 벤처 기업들이 애용하는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멀티콥터형 PAV는 2016년 CES에 처음 등장해 큰 이목을 끌었던 이항의 이항 184와 이항 216, 볼로콥터의 VC1, VC2 등을 들 수 있다. 에어로펙스와 호버서프 등 소형 모터사이클과 유사한 1인승 호버 바이크형 PAV도 주로 멀티콥터 방식을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틸트로터 또는 틸트윙 방식의 PAV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행기와 헬리콥터가 결합한 것과 유사한 틸트 방식은 항공 역학적으로 보다 진일보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틸트로터(틸트윙)형 항공기는 헬리콥터처럼 로터(틸트윙은 엔진을 포함한 날개 전체)를 수직으로 세워 양력을 조절해 이륙하거나 착륙하고 비행 중에는 로터를 수평 방향으로 회전시켜 추진력을 얻는 하이브리드 방식의 항공기다. 틸트 방식의 기체는 수직 이착륙이란 회전익기의 장점과 회전익기보다 훨씬 많은 짐을 싣고 더 빠르고 더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고정익기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다. 그 대가로 틸트 방식의 PAV는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기술적 난이도도 높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PAV는 에어버스와 NASA 등 고도의 항공 역학 기술을 보유한 항공기 제작 업체들이 주로 채택하고 있다.

에어버스의 바하나, 릴리움의 릴리움 제트는 틸트윙 방식이다. 2020년 CES에서 현대자동차가 소개한 PAV 콘셉트 모델 S-A1도 NASA의 모델을 기반으로 한 틸트로터 방식의 PAV다. S-A1에 장착된 전동 로터 8개 중 4개가 이착륙과 비행에 모두 사용되는 틸트로터다. S-A1는 최대 5명이 탑승하고 시속 290km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약 100km의 단거리 비행을 목표로 한 전형적인 eVTOL 방식의 도심형 PAV라고 할 수 있다.

항공기 제작 업체들이 주도하던 PAV 개발 경쟁에 이제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직접 PAV 개발을 추진하거나 PAV 개발 업체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디는 현대자동차보다 앞선 2018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에어버스와 공동 개발하는 PAV의 콘셉트 모델인 팝업 넥스트를 공개한 바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멀티콥터형 PAV를 개발 중인 볼로콥터에 투자했다. 도요타자동차는 2017년 멀티콥터형 PAV를 개발하는 일본의 카티베이터에 약 4000만 엔(약 4억3000만원)을 투자한 데 이어 2020년 1월 틸트로터형 PAV 개발 업체인 미국의 조비 에이비에이션에 약 4억 달러(약 479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지리자동차는 2019년 공지 복합형 PAV 개발 업체인 테라퓨지아를 인수했다.

PAV 운용을 지원하는 인프라 조성도 중요
일부 국가에서는 PAV 개발을 독려하는 시범 비행 프로그램들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독일과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에서는 수년 전부터 유인 PAV 시험 비행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다. 싱가포르도 2016년 에어버스와 함께 스카이웨이스 프로젝트를 시작해 시험 비행을 추진했다. 중국에서는 이항이 자사 제품의 시험 비행을 수차례 실시했다.

PAV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려면 PAV 자체의 완성도만 높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PAV 운항에 대한 안전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고 유사시에 발생할 피해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각종 운항 관련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또 안전한 이착륙과 운항을 지원하는 전용 탑승장과 충전, 정비 시설, 최종 목적지까지 연결하는 연계 교통 시설 등 각종 인프라도 구축돼야 한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수의 PAV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항공 교통 관리 체계의 구축이다. 미국에서는 NASA와 미연방항공청(FAA)이 무인 항공 교통 관리 체계(Unmanned Aircraft System Traffic Management)를 구축해 모의시험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 도시의 하늘길 바꿔 놓을 ‘개인용 항공기’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5호(2020.02.24 ~ 2020.03.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