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밀집한 울산·구미 휘청…유일한 대응책은 ‘철저한 방역’뿐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제조업 현장이 멈춰 서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장들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는 감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직원들이 오고 가는 것은 물론이고 재택근무 역시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이 지역에 있는 제조 공장들이 확진자의 발생으로 하루이틀간 문을 닫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직원 수 많고 재택근무 사실상 어려워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는 3월 6일 기준으로 여섯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구미2사업장에서는 2월 22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네 명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했다. 구미1사업장에서는 네트워크 사업부 직원과 입주 은행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연이어 확진자가 발생하자 삼성전자는 세 번에 걸쳐 스마트폰 생산 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구미에서 생산하던 갤럭시S20과 갤럭시노트10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한시적으로 베트남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구미에 있는 LG그룹 계열사의 생산 기지들 또한 코로나19로 잠시 가동을 중단했다. LG디스플레이도 2월 29일 구미사업장 1단지 복지동에 입주한 은행 출장소 직원이 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되면서 공장 일부를 폐쇄했다. 폐쇄된 곳은 복지동 건물과 직원들이 근무하는 중소형 패널 모듈 공장 일부였고 3월 3일부터 정상 가동됐다.
LG이노텍도 구미1A 공장 직원 1명이 3월 1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폐쇄 후 방역 조치에 들어갔다. 이 공장은 카메라 모듈을 생산 중이었다. LG이노텍은 직원의 확진 판정 직후 구미1A 공장 해당 생산 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근무 중이던 직원 전원을 자택 대기하도록 했다.
LG이노텍은 방역 후 보건 당국과 협의해 3월 3일부터 구미1A 공장을 재가동하고 있다.
3월 3일에는 방산 업체인 한화 구미공장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공장이 일시 폐쇄됐다. 구미시청은 지침에 따라 공장에 방역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생산 차질이 빚어지는 곳은 비단 구미뿐만이 아니다. 울산에 있는 제조 현장에서도 연이어 코로나19 확진자가발생해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는 2월 28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이에 따라 GV80·팰리세이드 차량을 생산하는 현대차 울산2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확진자는 울산2공장 도장부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곳엔 30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다. 울산2공장 전체로는 오전과 오후 근무조를 합해 4000명 정도가 출퇴근한다.
현대차는 2월 25일에도 경북 경주시의 협력 업체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울산4공장의 소형 트럭 포터 생산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건설기계 울산공장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3월 4일 울산시와 현대중공업그룹에 따르면 현대건설기계에 근무하는 직원 1명이 3월 3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확진자 발생 후 3월 4일 공장을 폐쇄 조치했고 확진자가 근무했던 공장은 3월 5일까지 폐쇄했다.
특히 이들 공장이 있는 산업단지들은 국내 제조업의 ‘심장’ 역할을 도맡고 있어 생산 중단에 따른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현대차·SK이노베이션·현대모비스 등이 입주해 있는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는 지난해 11월 기준 843개 기업이 입주해 있고 2019년 104조6544억원의 생산량을 일궈낸 ‘국가 최대 산업단지’다. 이곳에는 총 9만1424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는 지난해 11월 기준 2379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고 8만3267명을 고용하고 있다. 2019년 생산량은 34조9169억원에 이른다.
◆한국 제조업의 핵심인 ‘대구·경북’ 지역
급기야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2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악화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지역 364개 업체를 대상으로 기업 경기를 조사한 결과 2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53으로 전월보다 7포인트, 비제조업은 55로 3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제조업은 매출·생산·채산성 BSI 모두 전월보다 7~10포인트 하락했다. 대구·경북에 있는 제조업 내수 부진(25.1%), 불확실한 경제 상황(23.5%) 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순학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지금 시점에서는 전 세계 다수의 공급망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이러한 영향이 기업들의 실적에 얼마만큼 반영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다만 확실한 것은 1분기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반도체 등 국내 기업도 영업이익이 기대치보다 5~15%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 공장은 특성상 재택근무가 어렵고 대규모 인원이 조를 나눠 근무하기 때문에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더더욱 클 수밖에 없다. 벨트 컨베이어 등을 통해 여러 명의 근무자가 순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도 ‘완벽한 방역’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생산 공장은 24시간 가동되는 곳이 많기 때문에 드나드는 인력 중 감염자가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막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며 “‘공가 제도’를 활용해 현장에는 최소한의 인원을 투입하고 외부에서도 가능한 업무는 재택근무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감염 확산을 위한 각고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3월 1일 반도체 부문 전 임직원들에게 온라인 문진표를 발송했다. 주말 중 코로나19 위험 지역을 방문했는지, 발열 여부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문진표에 답변을 제출하지 않은 직원은 출근 시 사업장 출입구에서 대면 문진을 실시한다.
LG이노텍은 공장 출입자 전원을 대상으로 체온을 측정하고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으며 사업장 내 일일 방역을 실시 중이다. LG이노텍 관계자는 “임직원들에게 확진자와 이동 경로가 겹치거나 발열·기침·호흡곤란·근육통이 있으면 절대 출근하지 말고 회사에 보고 후 지침에 따라 행동해 달라고 전했다”고 말했다.
공장은 기업 임직원뿐만 아니라 수많은 협력 업체가 드나들어 대규모 인원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로 협력 업체 직원들의 확진으로 공장의 문을 닫는 사례도 이미 발생했다. 이에 따라 LG디스플레이는 사업장을 출입하는 협력사 직원들에게도 자가 진단 애플리케이션을 시행하도록 했다. 은행과 구내식당 등 입주사 직원들에게도 문자로 자가 진단 링크를 발송하고 있다.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생산 기지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기에 분주하다. 현대오일뱅크는 대산 공장에서 정유 시설을 관리하는 조정실 등 핵심 지역에 해당 근무자 외 다른 직원들의 출입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다. 현장 공사 작업의 경우 이전에는 10~20명 단위로 조를 구성했지만 2월 25일 이후부터 4~5명 단위의 소규모로 운영해 작업자 간 감염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액정표시장치(LCD)와 반도체용 특수 가스를 개발하는 SK머터리얼즈는 경북 영주시 공장에 현장 업무 담당자가 사용할 수 있는 임시 업무 공간을 설치했다. 현장 업무와 조정실 업무에 따라 근무 공간을 나누고 구성원 간 대면 접촉을 최소화한다. 각 특수 가스 제품 생산 라인 구역별로 모두 9개소가 설치됐다.
하루만 공장 문을 닫아도 생존과 직결되는 중소 제조사들도 감염 방지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전국 산업단지 내 26개 본부와 지사에 ‘코로나19 산업단지 방역도움센터’를 구축했다. 산업단지에 있는 중소기업들에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 방역 물품을 보급하고 방역 기구를 대여한다. 산업단지 내 다중 이용 시설에 대한 방역도 지원한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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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7호(2020.03.09 ~ 2020.03.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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