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국내 제약사 중 가장 많은 파이프라인 보유
-파이프라인 31개 중 26%가 ‘희귀·난치병 약’
‘희귀·난치성 질환 특화 제약사’로 거듭나는 한미약품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국내 제약사 중 가장 많은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을 보유한 한미약품이 ‘희귀·난치성 질환 특화 제약사’로 거듭나고 있다. 3월 12일 기준 한미약품의 파이프라인은 31개다. 이 중 25.8%인 8개가 희귀·난치성 질환 파이프라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을 연이어 ‘희귀 의약품’으로 지정했다. 업계에서는 매년 매출액의 약 20%에 달하는 비용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는 한미약품이 희귀 질환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글로벌 희귀 의약품 시장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세계 희귀 의약품 시장은 연평균 11% 이상 성장해 2024년 총 2620억 달러(약 315조8000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기존 처방 의약품의 연평균 글로벌 시장 성장률인 5.35%의 2배 이상에 해당한다.

최근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희귀 의약품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관련 신약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약 7000종의 희귀 질환이 존재하지만 치료제를 개발한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 산업 분석 업체인 이밸류에이트파마는 세계 의약품 매출 중 희귀 의약품 매출 비율이 올해 18%에서 2024년 약 24%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미약품은 총 8개의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이다. 이 가운데 FDA와 유럽 의약품청(EMA)이 희귀 의약품으로 승인한 파이프라인은 6개, 승인 건수는 총 10건에 달한다.
‘희귀·난치성 질환 특화 제약사’로 거듭나는 한미약품
희귀 의약품 지정(Orphan Drug Designation)은 희귀·난치성 질병 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의 치료제 개발과 허가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세금 감면, 허가 신청 비용 면제, 동일 계열 제품 중 처음으로 시판 허가 승인 시 7년간 독점권 부여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한미약품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로 개발 중인 ‘랩스트리플아고니스트(LAPSTriple Agonist)’는 최근 FDA로부터 원발 경화성 담관염과 원발 담즙성 담관염 치료를 위한 희귀 의약품으로 연이어 지정됐다. 두 질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간 내외 담도의 염증과 섬유화로 발생되는 만성 진행성 담즙 정체성 간질환이다.

한미약품의 독자적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랩스트리플아고니스트는 GLP-1 수용체, 글루카곤 수용체, GIP 수용체의 동시 자극을 통한 다중 약리학적 효과가 있는 치료제다. 간의 염증과 섬유증을 억제하고 담관의 자가면역적 파괴 억제를 통해 각종 자가면역간질환 치료제로 치료 영역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한미약품의 설명이다.

EMA에서 지난해 희귀 의약품으로 지정한 오락솔은 연조직육종을 적응증으로 한다. 연조직육종은 지방·근육·신경·인대·혈관·림프관 등 몸의 각 기관을 연결하고 지지하며 감싸는 조직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이다. 오락솔에는 주사용 항암제를 경구용으로 전환하는 한미약품 자체 개발 플랫폼 기술인 ‘오라스커버리’가 적용됐다.

한미약품은 2011년 미국 아테넥스에 오락솔을 기술 수출(라이선스 아웃)했다. 오락솔은 2018년 FDA 혈관육종 치료용 희귀 의약품으로도 지정됐다. 혈관육종은 혈관 내피세포에서 유래하는 악성 종양으로, 전체 연조직육종의 2% 미만을 차지하는 매우 드문 암이다. 오락솔은 2017년 영국 의약품·건강상품규제국(MHRA) 유망 혁신 치료제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미약품이 선천선 고인슐린증 치료제 로 개발 중인 ‘랩스글루카곤아날로그(LAPSGlucagon Analog)’는 체내 포도당 합성을 촉진하는 주 1회 투여용 글루카곤 제제다. 2018년 FDA 희귀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된 랩스글루카곤아날로그는 생체 유사 환경에서 기존 글루카곤 대비 우수한 용해도와 안정성을 보였다. 고인슐린혈증 동물 실험에서 지속적인 혈당 증가 효과를 나타냈다는 게 한미약품의 설명이다.

단장증후군 치료용 바이오 파이프라인 ‘랩스GLP-2아날로그(LAPSGLP-2 Analog)’는 지난해 5월 FDA 희귀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단장증후군은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전체 소장의 60% 이상이 소실돼 흡수 장애와 영양실조를 일으키는 희귀 질환이다.

한미약품은 랩스GLP-2아날로그가 개선된 체내 지속성과 우수한 융모세포 성장 촉진 효과로 단장증후군 환자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HM43239’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을 유발하는 ‘FLT3’ 돌연변이를 억제하면서도 기존 FLT3 저해제의 약물 내성을 극복한 차세대 파이프라인으로 평가 받는다. 2018년 FDA 희귀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한미약품은 이 밖에 EMA에서 희귀 의약품으로 지정한 성장호르몬 결핍증 치료용 파이프라인 ‘랩스hGH(LAPShGH)’를 비롯해 ‘랩스ASB(뮤코다당체침착증)’, ‘랩스글루카곤콤보(비알코올성 지방간염)’ 등의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권세창 한미약품 사장은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는 환자들의 고통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제약 기업으로서의 사명을 실현할 수 있는 분야”라며 “한편으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으로 제약사들에 새로운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GC녹십자와 희귀 의약품 공동 개발 나서
‘희귀·난치성 질환 특화 제약사’로 거듭나는 한미약품
한미약품은 희귀 의약품 파이프라인 확대와 관련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미약품은 최근 GC녹십자와 ‘차세대 효소 대체 희귀 질환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양 사는 한미약품이 보유한 물질 특허를 기반으로 유전성 희귀 질환의 일종인 리소좀 축적 질환(LSD) 치료제를 공동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LSD 환자의 치료에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개발한 효소를 정맥 주사하는 방식인 효소대체요법(ERT)이 활용된다. 양 사는 기존 1세대 치료제들의 안정성, 반감기, 복용 편의성, 경제적 부담 등을 개선한 차세대 효소 대체 혁신 신약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권세창 한미약품 사장은 “한미약품의 신약 개발 역량과 LSD의 일종인 헌터증후군 치료제(헌터라제)를 보유한 GC녹십자의 노하우가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내 상위 제약사가 파이프라인 탐색부터 상용화까지의 전 과정을 협력하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8호(2020.03.16 ~ 2020.03.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