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기업 발목 잡는 지뢰밭 규제 걷어 내자- 이쪽에서 풀면 저쪽에서 막힌다…‘대못 규제’·‘중복 규제’·‘소극 규제’ 걸림돌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촘촘한 ‘규제 트리’ 뽑아내야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전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의 ‘모빌리티 서비스’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본 최대 완성차 업체인 도요타는 지난해 말 차량 공유 서비스인 도요타셰어를 일본 전역으로 확대했다. 혼다와 닛산 등도 일찌감치 차량 공유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유럽에선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손잡고 프리나우라는 이름의 차량 호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폭스바겐도 위라는 브랜드로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은 모빌리티 서비스에 뒤처져 있다. 글로벌 완성차업계가 미래 모빌리티·공유 시대에 대비하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에선 지지부진하다. 현대차그룹은 2017년 국내 카풀 스타트업 럭시에 투자하며 공유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1년 만에 지분 전량을 매각하며 철수했다. 그 대신 해외로 나가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과 인도의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올라 등에 투자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의 신산업 육성 행보는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국내에서 완성차 업체가 렌터카 사업을 하거나 승차 공유 서비스를 하는 데는 제약이 따른다. 신기술 실증을 제대로 할 만한 여건도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가 ‘규제 한국’을 떠나 해외를 주 무대로 미래 투자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모빌리티 산업은 규제로 서비스 중단이 가장 많은 분야 중 하나다.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 규제 걷어내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3월 19일 회원사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총 20건의 ‘2020년 신산업 규제 개선 과제’를 국무조정실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자율주행·신에너지·헬스케어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가 주로 포함돼 있다.

전경련은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자동차 관련 규제에 대해 △모바일 운전면허증 법적 근거 마련 △군집 주행 관련 제도 마련 시기 단축 등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모바일 운전면허증은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국가에서는 시범 운행 중이지만 한국은 법적 근거가 없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2년의 임시 허가를 얻은 상태다. 차량 간격을 가깝게 유지한 채 운영되는 차량의 그룹을 뜻하는 군집 주행은 최근 유럽과 일본 등에서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에 따라 부상하고 있지만 한국은 현행법상 이를 금지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선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적용되는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현행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풍황(풍속이나 풍향 등 바람의 현황) 계측기를 설치한 후 최소 1년 이상의 풍황 자원을 계측해야만 발전 사업 허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업자들은 25억~30억원에 달하는 계측기를 설치하고도 1년 이상을 허가 신청조차 못하고 있다.

또 전경련은 사물인터넷(IoT)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데이터 수집 제삼자 제공 동의’ 절차를 간소화고 의료 기관이 아니어도 제공할 수 있는 헬스케어 서비스 허용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선불 결제만 가능한 간편 결제 등 전자 지급의 경우 후불 결제를 허용하자는 내용을 포함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며 “세계 경제 강국들이 앞다퉈 육성하고 있는 자율주행차·빅데이터·신에너지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의 규제 장벽을 제거하고 기업 혁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규제의 변화 필요
4차 산업혁명을 경제 성장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산업 진입과 활성화를 저해하는 규제 요소를 찾아 해결하는 게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문제는 신산업 분야의 규제가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데 있다. 다부처 법령이 얽혀 있어 이쪽에서 해소하면 저쪽에서 막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신산업에 어떤 규제가 어떤 식으로 얽히고설켜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규제 현황을 분석해 발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이하 SGI)가 발표한 ‘신산업 규제 트리와 산업별 규제 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신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특히 대못 규제, 중복 규제, 소극 규제 등 신산업 3대 규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규제 트리’는 일종의 규제 현황 지도다. 하나의 산업을 둘러싸고 나뭇가지처럼 얽혀 있는 규제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도식화한 자료다. 해당 신산업은 최근 정부가 선정한 9대 선도 사업 중 바이오·헬스, 드론, 핀테크, 인공지능(AI) 등 4개 분야다. SGI와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동으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신산업별 규제 이슈를 분석하고 전문가 인터뷰, 법령 분석을 통해 각 사업을 가로막고 있는 연관 규제를 도출했다.

선병수 대한상의 SGI 과장은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산업과 기술 융합이 이뤄지고 신산업 분야의 제품과 서비스 분화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규제 개선에 대한 요구가 과거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신기술·신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 개선은 하나의 소관 부처에서 과제를 발굴해 해소하는 방식보다 관련 여러 부처의 법령이 한꺼번에 개선돼야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촘촘한 ‘규제 트리’ 뽑아내야
물론 정부도 신산업 활로를 위해 규제 완화를 꾸준히 시행해 왔다. ‘사전 허용, 사후 규제’를 의미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전환 방향(2017년 9월)이 확정되고 규제 샌드박스(2019년 1월)가 시행되면서 정부의 규제 개혁 성과가 일부 가시화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규제 완화가 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기업 현장에서의 체감도는 아직 낮은 수준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규제 개혁 체감도는 94.1로 전년(97.2)보다 3.1포인트 하락했다. 규제 개혁 성과에 대한 불만족(22.0%)은 만족(11.7%)의 두 배에 달했다.

신산업 국제 경쟁력을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인 국가별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 개수는 한국이 주요 경쟁국에 비해 열세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9개로 미국(203개)·중국(101개)·영국(21개)·인도(19개)·독일(11개)에 이어 6위다.

신산업 분야 규제는 ‘곱셈 법칙’을 따르는 특징이 있다. 곱셈에서 영(0)이 하나 있으면 전체가 영인 것처럼 한 규제만 남더라도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신기술·신산업의 규제 체제는 여전히 기존의 산업 분야별 구분을 따르고 있다. ICT 등 신산업 분야는 ‘속도전’이 관건이다. 지금과 같이 부처별로 분절된 칸막이식 규제 집행으로는 신제품·서비스의 도입과 시장화가 지연될 우려가 나온다.
속도 중요한 신산업은 규제도 속도 내야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다부처 법령이 얽혀 있는 신산업·신기술 분야의 현실을 감안할 때 신규 사업 창출을 가로막는 일련의 규제를 폐지하는 근본적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며 “우선 핵심적인 규제를 집중적으로 개선하고 분야별 규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인 규제 개혁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트리 분석에 따르면 먼저 신산업 발전을 막는 ‘대못 규제’는 ‘데이터3법’으로 요약된다. 19개 세부 산업 분야 중 63%에 달하는 12개 산업 분야가 데이터3법에 가로막혀 있었다. 데이터3법은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등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의 원유는 데이터로 꼽힌다.

그런데 데이터3법 규제가 데이터 수집조차 못하게 막고 있다. 지난 1월 9일 20대 국회 여야 대표가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규제 개혁의 첫 발걸음을 뗐지만 빗장을 풀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데이터3법 통과의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시행령 개정안·고시 등 후속 조치가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신산업별 핵심 규제는 분야에 따라 바이오·헬스는 ‘개인정보보호법·의료법’, 드론은 ‘개인정보보호법·항공안전법’, 핀테크는 ‘신용정보법·자본시장법’, AI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 등으로 핵심 규제가 걸려 있다.

여기에 기존 산업을 융·복합하는 신산업은 최소 2~3개의 기존 산업들이 받는 규제를 한꺼번에 적용받는다. 한 청년 벤처 기업인은 “융·복합 신산업의 스타트업이 모든 규제를 다 지켜 사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고 이런 현실에 사업을 접을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IT와 의료 산업을 융·복합한 바이오·헬스는 원격 의료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국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가 집에서 원격 상담을 받고 약 배송이 가능한 원격 모니터링·진료가 가능하다. 한국에서 원격 의료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환자 데이터 수집가 활용이 불가하다. ‘의료법’은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의사-환자 간 원격 진료를 막는다. 또 ‘약사법’에 의해 처방받은 약을 원격으로 조제하거나 택배 발송도 하지 못한다.

핀테크 분야에서는 비금융 ICT 기업의 인터넷 은행 진출 제약을 규제 사례로 볼 수 있다. 소규모 특화 인터넷 은행 설립을 용인하는 영국과 비교할 때 한국에선 소액 대출 업무에도 지방은행 수준의 자본금을 요구하는 인터넷전문은행법 등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드론 분야에 진출하는 청년 창업가는 드론 사업을 하기 위해 최소 자본금 30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산업용 자격증(350만원, 6개월 소요)은 필수이고 국토교통부에 ‘안전점검표’ 80개 항목을 제출해야 한다. 또 도심 비행은 불가해 수도권 내에서는 화성이 유일한 비행 공역이다. 드론을 활용한 서비스 앱을 개발할 때도 비가시권과 야간 비행이 금지되며 전파법에 걸려 주파수 거리는 1km에 불과하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는 부재한 상태다. 미래 핵심 기술인 AI 분야에서 미국과 비교해 한국은 도로교통법이 발목을 잡는다. AI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은 일반도로 주행이 불가능하고 안보 이슈로 정밀 지도 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와 함께 신산업의 규제 틀을 제대로 갖춰 주지 않는 ‘소극 규제’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소극 규제는 기존 산업과의 이해관계로 인해 새로운 산업의 발생을 지연시키는 장벽에 해당한다. 새로운 산업에 적합한 규제 인프라가 없어 기업이 신산업을 추진하는데 불법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새로운 사업 출현 속도를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투자 플랫폼만 제공하는 크라우드 펀딩도 규제 인프라가 없어 ‘자본시장법’상 투자 중개업으로 분류돼 금산 분리를 적용받는다. 자율주행 배달 로봇은 차도 인간도 아니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상 도로 주행도, 인도 통행도 불가능하다.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촘촘한 ‘규제 트리’ 뽑아내야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촘촘한 ‘규제 트리’ 뽑아내야
charis@hankyung.com


[커버스토리 =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기사 인덱스]
① ‘규제 개혁’ 없으면 성장 엔진 멈춘다
- 세계 경제 호령하는 G2의 비결은…‘네거티브 규제’
- ‘말로만 규제 완화’ 언제까지…늘어나는 규제에 속 터지는 기업들
- 조봉현 IBK경제연구소장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미국유럽 등 다른 국가와 규제 수준 맞춰야”
- 김영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코로나19 이후의 경기 반등, 우리가 먼저 올라타야”
② 기업 발목 잡는 지뢰밭 규제 걷어 내자
-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촘촘한 ‘규제 트리’ 뽑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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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