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달라진 위기 재테크...개미의 반란]-외국인이 던진 주식 개인투자자가 쓸어 담아…3월 코스피 순매수 11조
한 달간 늘어난 주식 계좌만 86만 개…‘동학 개미’, 이번엔 이길까
“오늘도 미어터졌어요. 최근 10년간 이 정도 광풍은 처음이에요.”
3월 31일 서울 강북에 있는 A증권사 창구 직원은 3월 한 달 동안 매일 개인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폭락장에서 저가 매수를 노린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주식 거래 활동 계좌는 86만 개 이상 늘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리테일 비율이 높은 키움증권에서만 3월 한 달 동안 40만 개 이상 계좌가 개설됐다. 지난해 키움증권 월평균 계좌 개설 수와 비교할 때 7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4월에도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행렬은 이어졌다. 4월 첫날 코스피지수는 1700선을 내줬지만 개인 투자자는 1조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순매수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개인의 순매수액은 1조1523억원으로 1999년 1월 이후 역대 셋째로 많았다.

◆부동산·예금에서 주식으로 자금 이동

개인 투자자들은 올해 초부터 3월 말까지 유가증권시장에 20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주식을 사기 위한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3월 말 사상 처음으로 45조원을 돌파했다.
유가증권시장 기준 39%를 차지하던 외국인은 빠졌지만 그 자리를 개미들이 채웠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 개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1조1869억원어치, 코스닥시장에서 298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각각 12조5550억원어치, 2975억원어치를 순매도한 것과 비교하면 개인이 시장 충격을 완화하며 구원 투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열풍이 ‘동학개미운동’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개인이 증시를 떠받드는 기간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관을 살펴보면 국민연금이 무턱대고 들어올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공모펀드는 규모 자체가 많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당분간 개인이 매수의 주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말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를 제외한 공모·사모펀드의 순자산은 총 646조1899억원으로 2월보다 45조6641억원 감소했다. 이는 금투협이 관련 통계를 보유한 2004년 1월 이후 월간 감소 폭으로는 최대 규모다. 김 연구원이 개인 투자 장기전을 전망하는 이유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리먼 사태 이후 유동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헤지펀드와 외국인 투자자가 변동성이 큰 한국 시장에서 미리 빠진 것”이라며 “앞으로 얼마만큼 개인 투자자 열풍이 이어질지 모르지만 이를 단순히 외국인 대 개인 투자자의 머니 게임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개미들이 앞다퉈 주식 시장에 달려들고 있는 이유가 있다. 먼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준 금리가 인하되는 등 유동성이 높아졌다.

사상 처음으로 금리가 0%대를 기록하며 개인의 자산을 책임지던 예금에서 주식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은행 예금에 1000만원을 넣는다고 가정해도 돌아오는 이자는 6만원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올해 2월을 기준으로 은행 예금은 소폭 감소하기 시작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보통 예금은 작년 말 이후, 정기 예·적금은 작년 11월을 기점으로 각각 5조원과 28조원 감소했다. 저축으로 돈을 쌓기보다 저가 매수 타이밍을 기회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자 개인 자금이 부동산에서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소 몇 억원에서 몇 십억원이 필요한 부동산 투자보다 주식 투자가 진입 장벽이 낮다는 장점도 있다.

이 밖에 주식 시장이 반드시 다시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개미들을 주식 시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위기 국면에 주가가 폭락했다가 결국 반등했다는 일종의 학습 효과가 작용하고 있다.

삼성증권 주식을 4만5000원대에 매수했다는 30대 직장인 손성준 씨는 “리먼 사태 때보다 개인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경제 충격이 크고 금리도 사상 첫 0%대를 기록해 주식으로 자산이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현상에 대해 “우량 기업은 언젠가 오른다는 믿음으로 ‘존버’하는 분위기”라며 “주변에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거나 대출을 받아 주식을 사는 지인도 많다”고 말했다.
한 달간 늘어난 주식 계좌만 86만 개…‘동학 개미’, 이번엔 이길까
◆“우량 기업은 언젠가 오른다”는 분위기

전문가들은 개인 투자자들이 단기 투기 목적으로 휘둘리지 않는다면 실제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 7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코스피지수는 278%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인 2008년 11월부터 30개월간 코스피지수는 137% 올랐다.

존 리 대표는 “주식 시장에서 승리하는 법은 오래 들고 있는 것”이라며 “아직은 시장에 변동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린 단기 투자보다 투자 종목과 기간을 꼼꼼히 따져 안정적인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증시 폭락이 역설적으로 한국 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리 대표는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주식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지만 사실 주식을 하지 않는 사회가 더 위험하다”며 “이번 개미 투자 열풍은 가계 자산의 80%를 차지하던 부동산 위주의 불균형적인 경제 구조에서 기업에 투자하고 개인도 노후를 위한 자산을 다양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적어도 6개월~1년은 지나야 개미들의 승리를 예측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과거엔 외국인이 빠진 증시에 개인들이 들어갔을 때 성과가 좋지 않았던 사례가 대부분이다.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여유 자금을 가지고 장기 투자하지 않았고 이들이 대규모 손실을 보고 매도로 돌아선 후에야 다시 외국인과 기관이 유입되며 증시가 반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똑해진 개미들이 과거와 다른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고 전망하는 시각도 있다.

장효선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개인들의 순매수는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우량주에 집중돼 있다”며 “이런 모습은 2008년 개인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규모로 매도하고 테마주 중심으로 매수했던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는 과거 증시 과열 상황에서 여러 지인들의 성공담에 혹해 일확천금을 노린 묻지 마 투자의 모습이 아니다”며 “투자 종목과 투자 기간이 단기 차익보다 꾸준히 배당과 안정적 이익을 추구하는 장기 투자자의 성격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투자 심리에 크게 동요하고 단기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 투자자가 급증할수록 향후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김준석 연구원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고 분기 실적이 발표되기 시작하면 결과 값에 따라 시장에 추가적인 충격이 있을 수 있다”며 “빚을 내 투자하거나 무리하면 반대매매가 들어오거나 파산하면서 매수 주체가 크게 위축되며 다시 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신중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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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1호(2020.04.06 ~ 2020.04.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