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코로나19가 바꾼 세계, 빅 퀘스쳔5]
- 세계화의 시대는 끝났나
-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정치도 비즈니스도 ‘로컬의 약진’ 예상”
코로나19는 연습게임, 더 진화한 바이러스 주기적으로 온다
일본과 무역 분규로 세 달치 부품 확보, 그 덕에 초기 위기 넘긴 것
제조업 포기했던 나라도 핵심 산업 유지하려 할 것
어느 지역에 살고, 누가 지자체 대표하느냐가 더 중요해져
지역 접근형 사업에 기회, '소규모'라는 키워드도 뜬다
재택 근무, 효율적이지 못한 부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작용
“한국 ‘상승’·일본 ‘하락’… 전쟁도 못 바꾼 OECD 순위 코로나로 바뀔 것”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바이러스 공습이 경제적으로 미칠 파장에 대해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규모보다 패턴의 변화’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 10대학에서 생태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우 교수는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다룬 책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그는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초기부터 “가장 진화한 바이러스가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또한 “‘버티기’가 아닌 의도적인 ‘전환’을 통해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교훈으로 보면 바이러스에 맞서는 ‘인간 시스템의 진화’가 있다. 4월 14일 서울 평창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코로나19 이후 변화에 대해 들었다.

팬데믹 연구를 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주로 보건경제학 쪽에서 연구를 합니다. 제가 전공한 생태경제학에서도 수리생물학 모델들을 많이 다루는데 확장시키면 팬데믹 모델이 되는 거죠. 일반적으로 인류의 난제이자 장기 위협 요인으로 흔히 기후 변화, 빈곤, 팬데믹을 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후 변화와 빈곤 문제는 과거에 다뤄 온 반면 팬데믹은 뒤로 미뤄 왔어요. 그러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던 중 코로나19가 터진 거죠. 처음부터 역대 최강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가 연습 게임이라고 봤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약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코로나19는 바이러스의 성격으로 볼 때 가장 진화한 형태입니다. 종으로 보면 최대한 확산되는 게 유리한 거죠. 사망률이 너무 높으면 위험하지만 크게 확산되지 못합니다. 에볼라나 광견병이 대표적이죠. 적절한 치명률과 긴 잠복기(incubation period)를 가진 게 확산성이 높습니다. 지금보다 더 정교하게 치명률이 약간 높으면서 잠복기가 더 긴 게 나올 수 있거든요. 혹자는 봄이 되면 바이러스가 주춤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온도 때문인데 지금 아프리카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죠. 5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도 한창 더울 때 왔습니다. 메르스보다 더 진화했다고 보면 더워진다고 사라질 게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죠. 저는 처음부터 2년 내 정상화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강도는 약해지더라도 2년 정도 지속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지금 전환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나가는 비’라고 보고 ‘버티면 된다’고 하기에는 주기적으로 올 겁니다. 또 다음엔 더 센 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땐 진짜 힘들어집니다. 바이러스의 진화에 맞서 인간의 시스템도 진화해야 할 때입니다.”

어떤 전환에 신경 써야 합니까.
“1942년 영국에서 ‘비버리지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경제학자 윌리엄 비버리지가 제출한 사회보험 및 관련 서비스 보고서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거기에서 나왔죠. 1945년 전후 영국은 물론 유럽을 재건할 때 기본이 된 보고서입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1944년 스탈린 전투가 한창일 때 이 보고서가 나왔거든요.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영국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해 연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팬데믹 이후의 경제가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야죠. 방역을 전투에 비유한다면 경제는 전쟁과 비슷하거든요. 하루하루의 방역 관리도 중요하지만 전체 시스템을 어떻게 끌고 나가 경제의 ‘복원성(resilience)’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에 비하면 국민 수당과 같은 이슈는 부차적인 논의입니다. 지금은 중요한 논쟁 같지만 어차피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운명이 달라질 것도 아니고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가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을까요.
“셧다운을 했어도 언젠가 다시 문을 열겠죠. 하지만 다시 이전으로 복귀하더라도 이미 성격이 전혀 달라진 직장일 겁니다. 저는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순위가 바뀌는 충격 정도로는 봐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은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 규모와 상관없이 세계를 리딩하는 힘은 커질 것입니다. 일본은 아마 내려가겠죠. 전쟁으로도 바뀌지 않던 순위라는 점에서 큰 변화죠. 과거 경제 위기와 비교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는 효과가 반대 방향일 겁니다. 대부분 전쟁을 치르면 국내총생산(GDP)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팬데믹은 GDP를 낮추는 효과가 있죠. 유사한 위기로는 1973년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이 있습니다. 흔히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비교를 많이 하는데 그때는 금융에서의 불균형이 실물로 전이됐다가 더 전이되기 전에 회복된 것이죠. 정부가 자금을 채워 주면 해결됐습니다. 실물의 위기가 온 것은 석유 파동 때입니다. 그것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일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1929년 대공황과도 비교하는데 그땐 생산 과잉이었거든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풀린 돈이 너무 많아져 꼭 대공황 같은 사건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어려워졌을 겁니다. 대공황은 생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결됐죠. 지금은 완전히 코로나19에서 시작된 위기입니다. 세계 경제, 한국 경제 모두 회복세였거든요. 바닥을 다지고 올라오려는데 바이러스가 공습한 겁니다. 그렇다고 패닉에 빠질 것은 아닙니다. 변화는 분명히 오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면 생산적이고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극복할 것인지가 중요하죠, 미래를 연동해 살펴봐야지 지금 당장의 변화만 보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들이 나옵니다.
“코로나19가 여름에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가 가을에 다시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백신이 올해 안에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다시 클라이맥스가 온다고 할 때 문제는 바이러스의 속성과 양상이 똑같은데 사람들이 가진 재화와 대응력은 떨어질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지금은 가진 예금도 있고 여유가 있어 버티기가 가능하지만 개인이 견딜 수 있는 여력이 훨씬 떨어진 상태에서 실업이 늘어날 겁니다. 지금은 무급 휴직으로 버티는 기업들이 있는데 무급 휴직으로도 안 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래서 산업별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시 회복 가능한 산업, 회복 불가능한 산업을 분류하고 중·장기 계획을 짜야 합니다. 어떤 산업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 논의가 충격의 강도와 규모에 비해 너무 생략돼 있는 것 같습니다.”

위기 상황별 시나리오를 짜는 게 과제일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규모보다 패턴입니다. 이제 무역 규모가 줄 겁니다. 소비가 줄기 전에 지금 공장이 먼저 문을 닫고 있죠. 아직 항구가 막히지는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열어 놓고 봐야 합니다. 생산과 무역에서 위기가 오면 금융 위기 때와는 패턴이 다를 겁니다. 무역을 잘하기 위해 국제 금융이라는 것도 생겨났는데 지금 금융은 아무 문제가 없어도 무역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해요. 사람들이 오랫동안 금융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면 지금은 공장 가동률과 무역 감소 폭이 어떻게 될 것인지 또 농업에서 올해 농사가 흉년인지 풍년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일례로 스페인은 세계 토마토의 주요 공급원이죠. 스페인이 셧다운되면서 토마토가 돌지 않아 세계가 난리 났습니다.”

국제적으로 분업화되면서 타격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이 됐죠. 마지막 종착지가 글로벌 밸류 체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재고는 적이다’고 했죠. JIT(Just In Time) 시스템으로 재고를 없애는 게 생산성을 높인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이 흐름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작년에 일본과 무역 분규를 거치면서 밸류 체인을 재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3개월 치 부품을 확보해 놓겠다는 기조로 바뀌었죠, 그 덕에 코로나19 초기에 큰 위기 없이 수출이 가능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싼 부품을 수급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최선이었다면 팬데믹 시스템에서는 가격뿐만 아니라 ‘안정성’이 중요해졌습니다. 제한적이었던 리쇼링(생산 시설 회귀)도 가속화될 겁니다. 프랑스에서는 일부 명품 패션 산업을 제외하고 공장을 다 중국 등 제3 지역으로 내보냈는데 지금 프랑스에 남아 있는 샤넬 공장에서 손 세정제를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피아트크라이슬러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서도 지금 기계를 갖다 놓고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앞으로 국가별 자급자족, 제조업 인하우스의 중요성도 커질 것입니다.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세계화와는 반대 흐름이 올 겁니다. 전면적인 변화는 아니겠지만 부분적으로 지역화·현지화가 나타날 것이고 제조업을 포기했던 국가에서도 핵심 산업은 유지하려고 할 겁니다. 농업 정책도 강화될 것으로 봅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공공의 역할도 중요해집니다. 다행히 한국은 제조업과 농업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맞게 됐죠.”

세계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리딩 국가가 됐죠. 제조업의 힘으로 빠르게 진단 키트를 만들고 마스크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공공 의료 체계나 정보기술(IT) 같은 강점도 있죠. 코로나19 사태는 각 국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나라 시스템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 문제가 터집니다. 미국은 메디컬 케어, 의료 체계입니다. 미국에서 사망자의 약 70%가 흑인이라는 보고는 인종별 편차성을 드러내죠. 미국에서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1000달러가 넘는 비용이 들고 병원 치료는 그 이상이죠. 최근 아는 미국의 한 대학 교수가 자신의 딸이 증상을 보여 금요일에 911에 연락했더니 그다음 주 화요일에 드라이브 스루에 검사 예약을 잡아 주더랍니다. 지금 선진국 가운데 전화를 하면 앰뷸런스가 와주는 곳은 한국 정도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의사 결정 시스템이 취약점을 드러냈습니다. 일본에서 재택근무가 정착하지 못하는 배경에도 경직된 의사 결정 문화가 있죠. 우리는 교육·종교·정치가 약점으로 보입니다.”

사재기가 없는 것도 특이했죠.
“사재기는 뱅크런과 메커니즘이 비슷합니다. 제약된 자원을 누가 먼저 가지고 갈까요. 제로섬 게임이 시작되면 시스템이 폭발합니다. 은행이 망한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돈을 찾기 시작하면 어떤 은행도 버틸 수 없습니다. 전자금융이라면 더 빨리 뱅크런이 오겠죠. 국가를 믿든 공동체를 믿든 일종의 거대한 협력 게임을 하면서 이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집단 진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팬데믹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을까요.
“전환의 과정이 고통스럽겠지만 버티고 남는 곳들엔 기회가 올 것입니다. 국제적 분업 구조에도 큰 전환이 오겠죠. 한국과 중국은 산업적으로 약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디지털과 인공지능(AI) 전환도 빨라질 것이고 IT 산업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정치와 비즈니스를 통틀어 ‘로컬의 약진’이 예상됩니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 누가 그 지자체를 대표하느냐가 코로나19 국면에서 중요해졌습니다. 뉴욕의 주지사가 미국 대통령보다 더 주목 받기도 합니다. 신경도 쓰지 않던 도쿄 도지사의 말을 찾아봅니다. 우리도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지죠. 비즈니스적으로도 지역 접근형 사업을 하는 곳에 많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또 소규모라는 키워드도 중요해질 겁니다.”

앞으로 가장 큰 변화는 어떻게 올 것 같습니까.
“많은 변화가 올 것인데 코로나19 이후 ‘과거의 균형’은 사라질 겁니다. 거대한 기업의 구조 조정도 예상됩니다. 버티지 못한 업체는 도산하거나 기업 자체가 매물로 나오겠죠. 생존에 성공한 기업들은 인력 구조 조정을 염두에 둘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재택근무를 통해 효율적이지 못한 부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죠. 세계의 공장은 재편될 겁니다. 판매 시스템뿐만 아니라 부품 시스템도 근본적으로 고민하면서 안정성을 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기업들이 핵심 중소기업들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면서 상생의 문화가 커질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1년 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기업이 더 많겠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생을 추구하는 곳이 변별력을 갖게 될 겁니다. 최소한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더 근본적이고 깊은 변화가 올 겁니다. 우리는 수출 주도 국가이기 때문에 무역이 줄면 타격이 큰 약점이 있죠. 어떻게 이 충격에 부딪쳐 시스템을 전환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인구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보통 전쟁이 오면 출산율이 확 높아집니다. 거리 두기가 진행되는 팬데믹 국면에서는 결혼도 미뤄지고 출산율도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보지 않으면 더 애틋해지는 인간 심리로 볼 때 과연 그럴까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상승’·일본 ‘하락’… 전쟁도 못 바꾼 OECD 순위 코로나로 바뀔 것”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