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한 혁신적 시도…열렬한 팬과 극성스러운 안티 팬 모두 가져
‘비트코인과 테슬라’는 무엇이 닮았나 [비트코인 A TO Z]
(사진)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한경비즈니스 칼럼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디지털 자산팀 과장,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침체 우려로 증시가 고점 대비 폭락했지만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는 굳건하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동학개미운동’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와 해외 주식을 활발히 매입하고 있는데 특히 테슬라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2020년 기준으로 테슬라는 아마존·애플 등과 함께 해외 주식 직구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다. 사실 테슬라 열풍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필자가 애널리스트로 일하던 당시에도 전기차 테마주는 수차례 폭등과 폭락을 경험했고 그때도 테슬라는 전기차 산업을 대표하는 대장주로 취급됐다. 필자는 최근 테슬라가 다시 주목받는 것을 지켜보며 비트코인과 테슬라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느낀다. 전통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 극단적인 팬과 안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수익률, 높은 가격 변동성, 불확실성 등등이 그것이다.

◆각각 자동차·돈의 패러다임에 도전


전통적으로 자동차 산업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대량 생산으로 자동차 산업의 황금기를 연 포드를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도요타·폭스바겐·현대차 등 10개 남짓한 기업이 수십년에 걸쳐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의 과반을 점유했다. 신생 기업들은 자동차 산업에 새로 진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2003년에 설립된 신생 기업 테슬라는 자동차 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테슬라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 맞서 전기차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테슬라가 2010년 기업공개(IPO)를 할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테슬라가 자동차 시장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테슬라의 IPO는 1956년 포드가 IPO를 한 이후 처음으로 시행된 미국 자동차 업체 IPO로 주목 받았을 뿐이다.

이후 테슬라는 매분기 막대한 적자를 냈다. 금융 투자업계는 주식 매도 보고서를 내거나 공매도를 하는 방식으로 테슬라의 미래를 비관했다. 테슬라가 약속한 일정을 지키지 못하고 신제품 양산이 늦춰지면 언론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회사를 비난했다. 때로는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사기꾼으로 폄훼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테슬라가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게임 체인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콧대 높던 전통 자동차 업체들은 뒤늦게 전기차 사업을 추진하며 테슬라의 뒤를 쫓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자율주행·로봇택시 기능 등을 선도적으로 선보이며 전통 자동차 업체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비트코인 역시 돈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정체불명의 인물 혹은 집단에 의해 탄생했다. 비트코인은 은행의 도움 없이 가치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방식을 구현하고 이중 지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분산적 신뢰에 기반한 ‘디지털 머니’ 비트코인은 전통적인 돈의 패러다임과 금융 시스템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중앙은행이 원하는 만큼 찍어낼 수 있는 법정 화폐와 달리 비트코인은 수량이 한정돼 있다. 비트코인은 개인이 정부나 은행의 검열 없이 가치를 저장하고 전송할 수 있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현금으로 환금할 수 있다.

왜 필리핀 해외 노동자들은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때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할까. 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시민들은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자국 법정 화폐 사용을 정부에 강제당하며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할까. 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시민들은 전쟁의 위협이나 정부의 일방적인 사유 재산 몰수로부터 개인의 재산을 지키기 어려울까.

비트코인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돈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비트코인은 아직 높은 가격 변동성과 제한적인 확장성으로 인해 현재 ‘화폐’로 기능하지 못하고 투기성 자산으로 취급되는 것이 오늘날의 한계점이다.

테슬라와 비트코인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팬과 안티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이다. 전통 산업에 익숙한 사람들은 머스크 CEO가 자동차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폄훼하며 테슬라가 파산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예를 들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전설 밥 루츠 GM 전 부회장은 “테슬라는 무덤으로 향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미국 최대 민간 석탄 생산 업체 머레이에너지의 로버트 머레이 회장은 테슬라를 “보조금만 축내는 사기꾼”이라고 비하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벤처 투자자와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회사들의 지지를 얻었다. 가령 유명 벤처 투자자 팀 트레이퍼와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은 테슬라에 초기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지난 10년 동안 테슬라의 주가는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였고 테슬라 주식을 공매도하는 헤지펀드들은 테슬라를 저주하며 회사의 파산을 기원했다. 하지만 테슬라의 주가는 IPO 당시 주당 17달러에서 꾸준히 상승해 오늘날 500달러 이상을 웃돌고 있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현대차·GM·포드 등 웬만한 전통 자동차 기업을 넘어섰다.

비트코인 역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대체로 경제학자와 전통 금융 산업 종사자들은 비트코인을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비트코인을 “모든 사기의 어머니”라고 비하했다.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비트코인을 “쥐약”이라고 묘사하며 멀리할 것을 권고했다. 국내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한 유시민 작가가 TV 토론회에서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

반면 벤처 투자자와 실리콘밸리 IT 회사들은 비트코인을 지지한다. 테슬라에 초기 투자한 팀 드레이퍼는 “비트코인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철기 시대와 르네상스 이상의 기회”라고 주장했다. 머스크 CEO와 함께 페이팔을 창업해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유명 벤처 투자자이자 기업가인 피터 틸은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비트코인이 화폐보다 낫다고 발언한 바 있다. 트위터와 스퀘어의 창업자 잭 도시는 “비트코인이 인터넷 기축 통화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예견했다. 참고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스퀘어는 비트코인 관련 신원 증명, 엑스박스 게임 연동, 결제 서비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제로 투 원’을 과소평가한 똑똑한 바보들


테슬라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사람들은 모두 자동차 산업 베테랑 전문가였다. 그런데도 이들은 테슬라가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테슬라의 미래 가치를 평가 절하했다. 이들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프레임으로 테슬라를 평가하며 테슬라가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제로 투 원(피터 틸이 사용한 표현으로 0에서 1이라는 뜻. 즉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대전환을 뜻함) 혁신’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이들은 전기차의 대중화와 자율주행차·로보택시 시대의 도래에 대해 예견하지 못했으면서도 자신이 자동차 산업을 전부 안다고 착각했다. 쉽게 말해 이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똑똑한 바보들’이었다.

테슬라가 자동차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승승장구했듯이 비트코인이 돈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다시금 조명 받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미래에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불분명한 원인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양자컴퓨터에 의해 해킹 당하는 등의 이유로 가치가 0으로 수렴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산업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는 제로 투 원 혁신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10년 전 테슬라가 오늘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패러다임을 선도하며 GM과 포드 같은 전통 자동차 회사보다 시가 총액이 커질지 누가 알았겠는가. 마찬가지로 10년 후 비트코인이 돈의 패러다임을 바꿀지 여부에 대해 오늘날 우리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비트코인은 가치가 0이 돼 역사상 최악의 폰지 사기로 기록될까, 아니면 비트코인이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가치가 상승하며 비트코인의 미래를 비관한 경제학자와 전통 금융 산업 종사자들은 테슬라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자동차 산업 베테랑 전문가들처럼 똑똑한 바보 취급을 받을까.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섣부른 판단을 하기는 어렵다.
* 본 기고는 회사의 공식 의견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4호(2020.04.27 ~ 2020.05.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