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 보유세 높은 대신 취득세·양도세 매우 낮아
- 지방정부에 납세해 ‘재투자’ 효과도
‘미국처럼 높은 부동산 보유세율’이 집값 잡을까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미국에서는 총기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매년 1만5000명 정도 발생한다. 총기 보유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총기 보유를 왜 허용하고 있을까.

총기 제조업체들의 강력한 로비의 결과 때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3억4000만 명이 넘는 미국 국민이 모두 바보여서 한줌도 안 되는 총기 제조업자들의 로비에 놀아난다는 것이 상식적인지, 수백 년간 수천 명에서 수억 명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왜 총기 소유를 불법으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는지 생각해 보자.

미국에서 총기 보유를 허용하는 것은 총기를 보유하기 때문에 생기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94배나 넓은 나라다. 인구 밀도는 한국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 미국 중부는 몇 km에 한 채씩 집이 있는 곳도 있다. 그러니 집에 총이 없으면 야생 동물이나 불법 침입자들로부터 본인과 가족을 지킬 수 없다.

아무리 미국 연방수사국(FBI)이나 과학수사대(CSI)와 같은 수사 기관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는 이미 늦다. 사후에는 범인을 잡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자기방어 차원에서 총기 보유가 필수적이다. 심지어 총기 보유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 한국보다 높은 미국의 유주택자 비율

미국 사람이 총기를 보유하든 말든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미국에서는 총기를 보유해야 할 이유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주택 보유세도 마찬가지다.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한국보다 주택 보유세율이 높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이나 일부 정치권에서는 한국도 미국처럼 보유세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나라도 이렇게 보유세가 높으니 한국도 더 인상해도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보유세가 높아야 할 이유가 있지만 사정이 전혀 다른 한국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미국은 한국보다 유주택자 비율이 훨씬 높다.

그런데 그 많은 유주택자들이 그리 높은 보유세에 대해 불만이 없을까. 보유세는 높은 편이지만 주택 관련 다른 제도가 유주택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높은 보유세를 부담하면서까지 집을 사는 것이다.

첫째, 취득세가 한국보다 훨씬 낮다. 한국은 집을 사게 되면 금액과 주택 수에 따라 최하 1.1%에서 최대 4.6%의 취득세를 내게 된다. 2주택 이하의 소유주가 5억원짜리 집을 사면 550만원 정도를 내게 되고 10억원짜리 집을 다주택자가 사게 되면 4600만원의 취득세를 내게 된다.

이에 반해 미국은 10억원짜리 집을 사더라도 취득세는 100달러, 즉 12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다시 말해 한국의 취득세는 미국으로 따지면 몇 년분의 보유세에 해당한다.

둘째, 양도소득세도 한국에 비해 파격적으로 적다. 다주택자도 지난 5년 동안 2년간만 실거주했다고 하면 부부의 경우 50만 달러, 즉 6억원의 양도 차익에 대해서는 감면해 준다. 다시 말해 양도 차익이 7억원이라고 하면 6억원을 감면하고 1억원에 대해 일반 세율을 적용하면 된다. 양도소득세율도 근로소득세율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셋째, 납부한 보유세에 대해서는 100% 소득 공제해 준다. 어떤 사람의 연봉이 10만 달러인데 주택 보유세로 1만 달러를 냈다고 하면 9만 달러에 대해서만 소득세를 부과하게 된다. 이러니 보유세를 많이 낼수록 근로소득세를 적게 내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집이 없는 고소득자들이 세금을 가장 많이 내게 된다. 세금 신고를 대행해 주는 회계사들이 집을 사라고 권하는 이유는 집을 사는 것이 세금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 연 2% 보유세 인상 한도는 ‘주거 안정성’ 보장

넷째, 연간 보유세를 올리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한국처럼 집값이 올랐다고 보유세가 대폭 오르지는 않는다. 아무리 집값이 폭등해도 보유세는 1년에 2% 이상 인상할 수 없다. 그 대신 집값이 내리면 보유세는 떨어진다.

보유세 인상 한도를 정한 이유는 주거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소득이 늘지 않는 상태에서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보유세를 급격하게 올린다면 그 집을 팔지 않고서는 세금을 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보유세의 과세 기준이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기준 시가가 아니라 실거래가 다시 말해 취득가다. 이 때문에 주택을 장기 보유할수록 유리하다. 예를 들면 어떤 집이 10년 사이에 집값이 두 배가 올랐다고 하더라도 보유세는 1년에 2%씩 10년간 20%밖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니 비슷한 가치의 집이라도 보유세가 모두 다르다. 10년 전에 산 집의 보유세가 1만 달러였다고 하면 10년 후의 보유세는 최대 1만2000달러까지 오른다. 하지만 나중에 그와 비슷한 집을 산 사람의 보유세는 최대 2만 달러까지 될 수 있다.

그래서 은퇴해 소득이 적은 고령층도 본인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집을 예전에 샀기 때문에 보유세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여섯째, 보유세는 중앙 정부인 연방 정부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자치단체의 몫이다. 그 보유세 중 상당 부분은 교육 관련 예산이나 그 지역 사회 기반 시설 투자 예산으로 활용된다.

다시 말해 어떤 지역에서 보유세를 많이 낸다면 학군이 좋아지거나 주거 환경이 좋아지게 된다. 그것은 다시 그 지역의 집값을 올리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집 소유주로서는 보유세를 내는 것이 일종의 투자와 비슷한 효과를 거둔 것이다.

이상으로 미국의 보유세 제도에 대해 살펴봤다. 미국에서 한국보다 높은 보유세율을 유지해도 주택 소유자들의 불만이 적은 이유는 그 나라 현실에 맞게 다른 제도가 보완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이려면 그 제도가 생기게 된 이유와 그 제도와 연관된 다른 제도를 모두 살피고 한국의 현실에 맞는지 따져본 후 도입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제도를 본인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 받아들이려고 할 때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4호(2020.04.27 ~ 2020.05.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