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주식 시장에 새로운 ‘종족’이 나타났다. 바로 공부하는 개미 투자자들을 일컫는 ‘주린이(주식+어린이)’들이다. 전통적으로 개미 투자자들은 시장을 이기기 힘들다고 여겨져 왔다. 기관투자가들에 비해 자금 동원력과 투자 지식 등이 밀리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돼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펼쳐지고 있는 ‘동학개미운동’에서는 개미가 이길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먼저 ‘열공’하고 투자하는 ‘똑똑한 개미’들 덕분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최근의 서점가다. ‘부자’나 ‘주식 투자’과 같은 키워드가 들어간 책들이 연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주린이’들의 학구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코로나19가 불붙인 ‘부자 공부’ 열풍
현재 서점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책을 꼽자면 단연 ‘더 해빙’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4월 중반 이후 꾸준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운명학자인 이서윤과 기자 출신의 홍주연이 저자인 이 책은 미국에서 먼저 출판돼 인기를 끈 뒤 한국에 선보였다. ‘자기 계발서’와 ‘인문학’ 분야로 분류돼 있지만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부’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성공 키워드로 꼽고 있는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당기고 평범한 사람도 ‘부자’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고 설파한다.
현재 교보문고 ‘인문학’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책 중에서도 ‘부’라는 키워드가 들어가 있는 책이 제법 있다. 세계 석학 5인이 말하는 기술 자본 문명의 대전환을 말하는 ‘초예측 부의 미래’가 대표적이다. ‘자본주의 미래 보고서’ 등의 작가인 미류야마 이치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경영학자 스콧 갤러웨이, 암호화폐 개발자 찰스 호스킨스 등과 인터뷰를 통해 인류의 삶의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부의 기회’를 잡을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부자’라는 키워드가 더 이상 경제·경영 서적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교보문고 측에 따르면 현재 제목에 ‘부자’라는 단어가 포함된 책은 무려 1000여 종에 이른다. 물론 대부분은 경제·경영 분야의 책이지만 최근에는 자기 계발, 인문학 등 다른 분야에서도 ‘부자’ 키워드를 제목에 포함하는 책들이 점점 늘고 있다. ‘부자’가 전 분야를 막론하고 베스트셀러를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키워드다.
서점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자’ 열풍의 시작에는 코로나19가 있다. 팬데믹(세계적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주식 시장은 크게 흔들리고 고용 시장 또한 불안해지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시대’에 부의 시장은 재편되고 새로운 기회가 열릴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이미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며 역사적인 경제 위기가 세상을 얼마나 크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 ‘학습한’ 효과다. 코앞에 닥친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부의 기회를 붙잡기 위해 열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부자 되는 법’과 관련한 책은 2015년부터 서서히 판매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더니 특히 올 들어 판매량이 급증하며 역대 최다 판매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1월 1일부터 지난 3월 말까지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1.6% 신장했다. 주요 독자층은 남성이 57%로 대부분이다. 연령별로는 30대가 39%, 40대가 26%로 가장 많고 20대와 50대도 각각 15%로 나타났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담당은 “‘부자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의 높은 인기에는 세계적인 저금리, 벌어지는 빈부 격차에 따른 불안감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경영 분야의 베스트셀러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최근 불고 있는 ‘부자 열풍’의 특징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가장 먼저 ‘내일의 부(조던 김장섭)’,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존리)’, ‘진짜 부자 가짜 부자(사경인)’, ‘부의 추월차선(엠제이 드마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부의 인문학(브라운스톤)’, ‘부의 확장(천영록)’ 등 친절하고 쉬운 언어로 부자가 되는 원리를 풀어놓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기본 원칙부터 ‘쉽고 구체적으로’
기존과 비교해 최근 ‘부’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들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한탕주의’를 경계한다는 데 있다. ‘부자가 되는 법’을 설파하고 있지만 남들이 모르는 어떤 특별한 비법이나 요행으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외치는 것일까. 자본주의 시장에서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본 원리’를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한 번 이해하고 나면 부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혹은 돈을 다루는 습관을 바꿔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 벅셔해셔웨이 회장이 특별해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바로 부의 원리를 ‘공부’하고 ‘실천’한 결과로 특별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이들 중에는 매우 구체적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 실천해야 할 ‘행동강령’을 서술하고 있는 책들도 적지 않다.
경제·경영 분야에서 ‘부자’ 만큼이나 자주 눈에 띄는 키워드는 ‘주식’이다. ‘주식 투자 무작정 따라하기(윤재수)’, ‘선물주는산타의 주식 투자 시크릿(선물주는산타)’, ‘재무제표 모르면 주식투자 절대로 하지마라(사경인)’, ‘저는 주식투자가 처음인데요(강병욱)’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잠든 사이 월급 버는 미국 배당주 투자(소수몽키)’, ‘미국 배당주 투자지도(서승용)’, ‘뷔페처럼 골라서 투자하는 해외 ETF 백과사전(김태현)’, ‘ETF 투자 무작정 따라하기(윤재수)’, ‘ETF 투자의 신(강흥보)’ 등 미국 배당주나 상장지수펀드(ETF)와 관련한 책도 상당하다.
최근 국내 주식 시장에 불고 있는 ‘동학개미운동’과 함께 더욱 주목 받고 있는 이 책들은 요즘 개미들의 주식 투자 트렌드를 한눈에 보여준다. 최근의 개미 투자자들은 예전과 비교해 정보를 접하고 공부할 기회가 많다. 무작정 주식 투자에 뛰어들기보다 먼저 ‘공부’하고 주식의 기본 원칙을 익힌 뒤 투자하는 똑똑한 개미들이 늘고 있다. 주린이들이 열공을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경로는 ‘유튜브’와 ‘책’이다. 주식 투자에 대한 기초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투자 매뉴얼과 원칙을 담고 있는 책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재테크와 관련해 가장 강세를 보였던 주제는 단연 ‘부동산’이다. 이와 비교하면 주식과 관련한 책들이 늘어나는 모습은 그동안 재테크의 ‘부동산 쏠림’이 어느 정도 완화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보다 다양한 분야로 분산되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예전보다 주춤해졌다고 해도 부동산은 여전히 재테크에서 관심 1순위다. ‘대한민국 부동산 지난 10년 앞으로 10년(채상욱)’, ‘서울 아파트 지도(핑크팬더)’ 등도 꾸준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대표적인 책들이다.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흐름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전망하는 책들도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시대의 진화 코드를 담고 있는 ‘언컨택트(김용섭)’, 바이러스가 바꿔 놓을 뉴노멀 경제학에 대한 세계 석학들의 전망을 담은 ‘코로나 경제 전쟁(폴 크루그먼)’, 코로나19가 방아쇠를 당긴 경제 위기에 대한 전망과 투자법을 담은 ‘디플레전쟁(홍춘욱)’ 등이다.
책이 다루는 주제나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들에게서도 기존과 다른 특징이 두드러진다. ‘똑똑해진 투자자’들에게 투자의 원리, 기초부터 구체적인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는 만큼 저자들 대부분이 오랫동안 금융 시장에서 투자를 업으로 삼았던 ‘전문가’들이 상당수다. ‘코리아펀드’로 유명세를 떨쳤던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와 무려 2권의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려 놓고 있는 사경인 회계사가 대표적이다.
책을 출판하기 오래전부터 ‘블로그’나 ‘카페’에서 활동하며 자신들의 투자 노하우를 많은 독자들에게 검증받고 상당수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저자들도 적지 않다. JD부자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조던 김장섭 작가와 오랫동안 약 2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블로그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투자 노하우를 게재해온 ‘선물주는산타’ 등이 이와 같은 사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은 존리·윤재수·채상욱·사경인 씨 등 인기 작가들의 대부분이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독자들과의 소통을 넓혀 가고 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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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6호(2020.05.09 ~ 2020.05.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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