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 1280호 (2020년 06월 08일)

‘흔들리는 금융 허브’…탈홍콩 조짐에도 중국이 후퇴하지 않는 진짜 이유

기사입력 2020.06.08 오후 06:10

-장기적 불확실성 높아질 수 있지만 대미수출 낮아…선전·하이난을 ‘제2 홍콩’으로 키울 계획도


‘흔들리는 금융 허브’…탈홍콩 조짐에도 중국이 후퇴하지 않는 진짜 이유


글로벌 금융 중심지 홍콩의 위상이 달라질까.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홍콩을 글로벌 금융 허브로 만들었던 ‘특별 지위’가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글로벌 금융업계와 투자 자본이 대탈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홍콩의 특별 지위가 사라지면 미·중 간 금융·무역의 관문이 됐던 홍콩의 위상이 순식간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후퇴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특별 지위를 박탈하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적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2년 제정된 홍콩 정책법에 따라 홍콩에 특별 지위를 인정하면서 관세·무역·비자 등에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최대 25% 추가 관세를 매기고 있지만 홍콩은 예외다. 비자나 금융 거래 역시 자유롭다.

이를 기반으로 홍콩은 세계 100대 은행 중 70여 곳이 자리한 아시아 금융 허브로 성장했다. 중국에 베팅하려는 글로벌 금융업계와 투자 자본이 홍콩에 몰리면서 외국인 직접 투자액의 65%가 홍콩을 통해 이뤄졌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 기업들의 해외 기업공개(IPO) 가운데 75%는 홍콩에서 진행됐다. 미국이 특별 지위를 박탈하면 홍콩의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도 홍콩에 소유한 부동산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홍콩 소재 미국 상공회의소가 5월 19일 발표한 설문 조사에서 조사 대상 기업의 4분의 1 이상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홍콩에 자리 잡았던 해외 투자금과 인구 이탈을 일컫는 ‘헥시트(홍콩+엑시트)’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성현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가 무사히 넘어가더라도 장기적 불확실성 때문에 글로벌 금융사들의 탈홍콩 행렬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트럼프 엄포에도 상승한 홍콩 증시

국제 사회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중국은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중국은 왜 글로벌 금융 허브 타이틀 대신 홍콩에 대한 통제권을 택했을까. 돈의 흐름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이 특별 지위 박탈 가능성을 엄포한 6월 1일 홍콩 증시는 상승 곡선을 그렸다. 홍콩 증권거래소에서 이날 항셍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36% 오른 2만3732.52에 마감됐다.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오히려 오른 것이다.

홍콩 금융 시장이 무너지면 중국만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기관투자가들도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영국 HSBC와 스탠다드앤드차타드(SC)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지지한다며 사실상 백기를 든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국의 해외 직접 투자 1430억 달러 가운데 870억 달러가 홍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중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액 역시 65%는 홍콩을 경유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홍콩 자체만 놓고 보면 미국·영국·유럽의 투자 비율은 51%다. 홍콩 시장이 박살 나면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손실로 이어지는 셈”이라며 “홍콩에 상장된 기업의 60%가 중국 본토 기업인데 이들은 이미 기업공개를 통해 투자금을 수혈 받은 상황이라 중국 기업이 받을 타격은 적다”고 분석했다.

현재 홍콩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 가는 돈보다 미국에서 홍콩으로 흘러들어 오는 투자액이 훨씬 많다.

2018년 기준 미국의 홍콩 직접 투자 금액은 825억 달러(약 102조1300억원)다. 홍콩의 대미 투자액 169억달러(약 20조9000억원)보다 5배 가까이 많다.

미국이 만약 홍콩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킨다면 홍콩에 투자한 글로벌 금융사와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손실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가 이를 즉흥적으로 결단내리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분간 주요 금융사들이 홍콩에서 발을 빼지 않는다면 자금 조달 창구로서의 역할도 한동안 유지될 확률이 높다.

중국은 그동안 홍콩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막대한 외국 자본을 통해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이 2014년부터 순자본 수출국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전병서 소장은 “과거 홍콩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금융 투자사의 역할이 외국의 자본을 중국에 조달하는 것이었다면, 2014년부터는 중국의 자본을 외국에 투자하면서 그 수수료를 통해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이 금융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더라도 금융회사들은 중국 자본을 받기 위해 싱가포르나 대만이 아닌 중국 본토에 있는 상하이로 옮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은 미국 국가 채무의 4.4% 정도에 해당하는 1조1000억 달러(약 1346조원) 상당의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홍콩금융관리국이 이를 매각하기 시작하면 미국 채권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29일 홍콩의 특별 지위를 박탈하는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홍콩의 대미 수출 역시 낮아

홍콩이 특별 지위 자격을 잃는다고 해도 중국의 수출 역시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7대 무역항인 홍콩은 그동안 중국 본토와 다른 낮은 관세를 무기로 중국의 무역 창구 역할을 해왔다. 홍콩은 총수입 가운데 89%를 재수출하는 중계 무역 거점이다. 특히 총수입 중 50%가 중국으로 재수출된다.

특별 지위가 박탈되거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670억 달러(약 82조원)에 달하는 미국과 홍콩의 교역 규모가 앞으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대홍콩 수출 의존도는 예전처럼 높지 않다.

홍콩 수출의 55.3%가 중국이고 미국으로의 수출은 7.3%밖에 안 된다. 홍콩 이외 지역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이번 미국의 홍콩 우대 조치의 철회가 홍콩이나 중국의 수출에 치명상을 입히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전 소장은 “홍콩 수출의 95%는 다른 곳에서 생산돼 홍콩으로 수출됐다가 홍콩에서 다시 재수출되는 상품”이라며 “홍콩의 대미 수출액 450억 달러 가운데 1%인 약 4억5000만 달러만이 홍콩에서 생산돼 MFN(최혜국 대우)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흔들리는 금융 허브’…탈홍콩 조짐에도 중국이 후퇴하지 않는 진짜 이유


이 때문에 홍콩의 '글로벌 금융 허브' 타이틀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홍콩에 대한 통제권을 선택한 것이다. 중국은 선전·상하이·하이난 등을 홍콩 대체지로 삼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선전에 2025년까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세계를 선도하는 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있다.

홍콩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하이난성에는 자유 무역항을 전면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상하이 주식 시장은 이미 홍콩보다 크다.

전 소장은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강행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홍콩의 ‘금융 주권’이 라며 중국이 홍콩에 대한 영토 주권은 확보했지만 홍콩 금융 시장은 여전히 인민은행장보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말 한마디에 출렁인다”고 말했다.

◆돋보기

홍콩을 금융 허브로 만든 ‘달러 페그제’…특별 지위 잃어도 유지할 듯

특별 지위 박탈 여부와 함께 홍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은 바로 ‘달러 페그제’의 철회 가능성이다. 홍콩은 달러당 7.75~7.85홍콩 달러로 환율을 고정하는 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다.

홍콩은 달러 페그제를 통한 환율 안정을 유지해 왔고 글로벌 기축 통화인 미국 달러에 가치가 고정돼 있어 글로벌 투자자들의 자유로운 외환 거래가 가능했다. 하지만 특별 지위 박탈과 정책 불확실성으로 글로벌 금융 자본이 홍콩을 떠난다면 홍콩 달러 수요가 줄어들어 페그제 유지가 어려워진다.

그간 홍콩 경제가 불확실성에 처할 때마다 홍콩의 페그제 포기 가능성이 고개를 들었다. 홍콩의 달러 페그제 존립은 지난해에도 흔들렸다. 중국의 송환법 제정에 반발하는 시위와 진압 과정의 폭력 사태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작년 6월 홍콩 내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이후 홍콩 부자들과 외국인들은 약 400억 달러(약 49조원)의 예금을 홍콩에서 인출해 나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홍콩의 달러 페그제 폐지가 쉽게 이뤄질 수 없다고 전망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달러 페그제에 대한 권한은 미국이 아닌 중국에게 있다”며 “홍콩은 이미 한국보다 더 많은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달러 페그제를 폐지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특별지위를 잃을 위험성이 있는 홍콩에 글로벌 기업과 자본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달러 페그가 갖는 기능이 약해지기 때문에 홍콩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중국이 장기적으로 글로벌 금융 허브를 유지하려면 페그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그제가 붕괴되면 중국으로선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외국 자본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김성현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 역시 “홍콩이 달러 페그제를 포기하면 위안화 약세에 힘을 실어줄 수 있지만 쉽게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라며 “국제 금융 시장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높고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면 단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위안화 약세를 이어 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0호(2020.06.06 ~ 2020.06.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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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6-10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