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채굴한 110만 개의 코인 둘러싼 미스터리
투자자를 괴롭히는 비트코인의 진짜 약점 [비트코인 A to Z]

[한경비즈니스 칼럼 = 오태민 지놈체인 대표,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비트코인은 강했다’·‘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현재 글로벌 금융 환경은 비트코인에는 더 없는 기회다. 전염병으로 야기된 유례없는 경기 위축으로 국가들은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됐다. 만약 몇몇 나라에 국한된다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분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화폐가 투입된다면 인플레이션에 이은 혼란은 피할 수 없다. 비트코인은 정부가 마음껏 찍어내는 종이돈과 신용의 무절제한 확장에 기초한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이번 위기는 바로 생태계가 형성되고 맞이하는 비트코인의 첫 실험 무대인 셈이다.
홍콩의 중국화는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진행돼 왔지만 임계점을 넘자 홍콩 젊은이들이 2019년 여름부터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한 발짝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중국 정부는 홍콩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뜻을 밝혔다.

물론 반작용이 만만치 않다. 미국은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한 지위를 박탈할 계획을 밝혔고 영국의 정치인들은 중국 정부에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홍콩에 평화와 안정이 돌아올 수는 있겠지만 홍콩은 중국이면서도 중국이 아니라는 독특한 지위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흐름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홍콩은 세계 3위, 아시아 1위라는 금융 허브의 지위를 잃고 세계 6위로 내려앉으면서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는 물론 상하이에도 뒤처지게 됐다.

자극적인 이벤트를 확대 보도하는 언론들은 벌써부터 ‘홍콩 엑소더스’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대만과 호주, 미국과 캐나다로 이민을 고려하는 홍콩인들의 문의가 평소의 20배 수준으로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홍콩의 은행과 환전소에서는 미화는 물론 엔화와 파운드화의 재고까지 일시적으로 바닥이 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국경이 없다’는 것이 비트코인의 특징


비교할 대상이 없다시피 한 비트코인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는 자산을 국경 너머로 보내는 것이다. 비트코인에는 국경이라는 개념조차 없다. 애초에 공간적 개념이 없기 때문에 국경이라는 공간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센카쿠열도 문제로 중국에서 반일 감정이 높았던 시절, 중국에 진출해 있던 일본 대기업들은 사업은 둘째 치고 신변의 안전까지 위협 받았다. 이후 일본 정부는 자국 대기업들이 핵심 생산 시설을 중국에서 동남아나 인도 등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중·장기 전략을 세웠다. 그런 가운데 한 영어권 매체에 첩보성 기사가 올라왔다가 얼마 뒤 삭제됐다. 2015년 일본의 T기업이 중국의 자회사와 협력 업체들에 비트코인을 사 모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산업 시설을 중국 밖으로 옮기려면 상당수의 자산은 현지에서 처분하고 위안화를 달러로 환전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환전해 주지 않거나 약탈적으로 환전 수수료를 부가할 경우 그에 대응할 방법이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협력 업체 중 상당수의 내국인들(중국인들)은 수요처를 따라 중국 밖으로 자산을 옮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삭제된 기사의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2016년 일본 의회는 비트코인을 합법적인 결제 수단의 하나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사실을 고려하면 외화를 통제하는 권위적인 정부로부터 해외에 산재한 자국 기업의 자산을 보호하는 수단의 하나로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2015년 무렵부터 진지하게 연구했던 것만큼은 사실로 여겨진다.

달러에 연동된 홍콩 달러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면 비트코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 수요와 관련해 홍콩 사태가 야기할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다. 중국의 특권층들에게 홍콩은 특별한 ‘수단’이었다. 중국이면서도 중국 정부로부터 독립됐던 홍콩의 특별한 지위를 이용하면 언젠가 있을지 모를 공산당 정부의 재산 압류에 대비해 자신과 자녀들의 부를 지킬 수 있었다. 중국의 부호나 지도층들은 홍콩에 주소지를 두고 여러 개의 금융 계좌를 가지고 있다. 홍콩을 통하면 전 세계 주요 도시로 금융 자산을 손쉽게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특권층들이 홍콩의 대체 수단으로서 비트코인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1년 동안 몇 차례 비트코인을 폭등시킨 계기가 됐던 그 어떤 외부 환경보다 더 강력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비트코인이 폭등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심지어 채굴 보상도 반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격이 비교적 평온한 것이 오히려 연구할 만한 사안이다.

폭풍 전의 고요일 수도 있지만 비트코인은 5월 말에 불거진 하나의 사건에 의해 발목이 잡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5월 21일 비트코인 세계에는 갑자기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코인을 움직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내용은 이렇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온 2009년 1월 이후 겨우 한 달이 지난 2009년 2월 채굴된 주소에서 비트코인이 이동했다. 무려 11년 동안 움직이지 않던 비트코인이 움직였다. 이 소식에 가격이 바로 반응했는데 2% 이상 폭락했다. 왜냐하면 사토시 나카모토가 최소 110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이 말하는 ‘파토시 코인’


비트코인은 현재 대략 1800만 개가 채굴됐지만 800만 개 정도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실제 유통량 1000만 개의 10%가 넘는 비트코인을 보유한 사람이 무대에 등장한다는 것이고 상당량의 비트코인이 한꺼번에 매도 물량으로 쏟아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 밝혀진다면 해당 국가의 세무 당국이 대응할 수밖에 없으므로 비트코인의 창시자는 막대한 세금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상당량의 비트코인을 급매로 처분할 처지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과연 문제의 블록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채굴한 것일까. 만약 사토시 나카모토가 의도적으로 이 주소를 선택했다면 그는 세상을 상대로 아직도 숨바꼭질을 할 마음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블록은 ‘사토시 패턴’을 띠지 않는 당시 몇 개 되지 않던 블록이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은 2009년 채굴에서 독특한 패턴을 찾아냈다. 하나의 컴퓨터가 연속해 계산하느라 패턴이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초창기 블록 중에서 어떤 것이 사토시 나카모토 컴퓨터로 채굴됐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 채굴자를 ‘파토시(Patoshi)’라고도 부른다. 자신의 지문을 확실하게 남긴 당사자가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 본인이 아닐 가능성도 희박하긴 하지만 잔존하기 때문이다. 즉 5월 21일 사건은 막대한 비트코인을 보유한 초기 채굴자가 세상을 향해 헛기침을 한 것과 같은데 놀랍게도 움직인 블록은 사토시 나카모토나 파토시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물론 패턴을 띠지 않는다고 해서 사토시 나카모토 혹은 파토시의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토시 나카모토 혹은 파토시가 한 대 이상의 컴퓨터를 사용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 말고도 여러 사람이 채굴에 참여했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소스 코드를 여러 개발자에게 보냈고 채굴해 보라고 권유했으며 이들에게 채굴 결과에 대해 어떤 피드백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해시레이트를 보면 한 대 이상의 컴퓨터가 꾸준하게 채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토시 나카모토나 파토시를 제외한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들은 채굴을 꾸준하게 하지는 않은 것이 분명하다.

5월 21일 사건은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남겼다. 게다가 아직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농락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비트코인의 약점을 새삼 각인시켰다. 일반적으로 꼽는 가격의 변동성은 비트코인의 진정한 약점이 아니다. 비트코인의 진정한 약점은 창시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끊이지 않는 미스터리다. 창시자가 미스터리를 선택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110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도 그와 함께 불확실성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이 문제는 잊을 만하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치통처럼 투자자들의 무의식 한쪽에 자리 잡은 채 깊은 불안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0호(2020.06.06 ~ 2020.06.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