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선 트럼프 재집권에 대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8년 전인 2016년 미국 45대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승리했던 때와는 달리 재계가 그동안 트럼프 재선에 미리 대비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쳤지만 주요 그룹은 이미 시나리오별 영향 분석을 마친 상태다. 쇼맨십 기질과 즉흥적인 성향에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웠던 경험을 되돌아보면 한국 경제 전반에 변화는 불가피하다.
재계 관계자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정책에도 일장일단이 있다”며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이 축소될 우려도 나오지만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차피 100% 대비는 불가능하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받는 부분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최선이고 핵심적인 부분은 정부가 통상외교력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외교 측면에선 트럼프 1기를 이미 경험해봤고 당시 상대적으로 접점이 약했던 트럼프 측 인사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네트워크를 쌓아온 만큼 이번에는 비교적 여유 있게 소통창구를 가동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트럼프 1기 때와 비교해 미국 내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한국은 반도체 제조의 핵심 국가로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 부흥전략에서 여전히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칩스법) 등으로 삼성, SK, 현대차, LG 등 주요 그룹이 미국에 반도체·배터리 등 현지 생산 공장 설립을 위해 대미투자를 대폭 늘리면서 한국은 지난해 사상 최초로 미국의 최대 투자국에 올랐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규모는 총 215억 달러(약 28조5000억원)에 달했다.
최근 현대차그룹, SK그룹에 이어 삼성과 LG그룹 등 4대 그룹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회비 납부를 결정하면서 실질적 회원사로 복귀한 것도 한경협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대미 아웃리치(대외접촉) 활동을 통해 국내 산업계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경협을 이끄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미국 민주·공화당을 넘나드는 인맥을 보유해 ‘민간 외교관’이란 평가를 받는다. 류 회장은 아버지인 류찬우 풍산 창업주가 구축한 해외 인맥 등을 토대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도 인연을 맺었다.
류 회장은 부시 부자와의 인연을 계기로 트럼프 측과도 인맥을 쌓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류 회장은 지난 7월 한경협 CEO 제주하계포럼에서 트럼프 당선 시 한국의 통상 영향에 대한 질문에 “(걱정하는 것만큼) 어려워지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는 “어려워지는 상황도 있겠지만 편한 면도 있을 것”이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은 노동조합과 관련된 기업들을 먼저 생각했는데 한국 기업들은 노조 없는 미국 주에 주로 진출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에 투자한 기업을 미국 기업과 똑같이 대우해 줄 것이기에 (한국과) 잘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는 사업가 출신인 만큼 인맥에 의존하기보다는 투자 등 거래를 준비하는 게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톱다운형 리더’인 트럼프는 백악관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고 비정례적, 수시적, 거래적 접근 방식의 외교가 예상된다.
트럼프는 보조금을 빌미로 한국 기업들에 추가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의 요구를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이고 어떤 반대급부를 요구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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