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20억원 최종 확정 앞둬...펀드 판매사 첫 제재 여부 금융권 촉각
농협은행 ‘시리즈 펀드’ 과징금…법적 근거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금융 감독 당국의 NH농협은행(이하 농협은행)의 ‘시리즈 펀드 제재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앞두고 법적 근거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일명 ‘시리즈 펀드’는 사실상 유사한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사모 형태로 쪼개 파는 것을 말한다. 농협은행은 ‘시리즈 펀드’를 통해 공모로 인한 규제를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는 지난 6월 3일 농협은행에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증선위의 이 같은 판단은 6월 24일로 예정된 금융위 정례회에 상정돼 최종 확정을 앞두고 있다.

농협은행의 시리즈 펀드 제재 여부가 업계의 촉각을 모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리즈 증권 규정이 펀드에 적용되는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 운용사 외에 ‘펀드 판매사’에 제재를 가한 사례는 없었다. 이 때문에 농협은행이 과징금을 최종적으로 부과 받게 된다면 펀드 판매 창구의 역할을 맡고 있는 다른 은행들도 광범위한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금융 당국, 1년 넘는 논의 끝에 결론 앞둬
농협은행은 2017년 3월~2018년 3월 파인아시아자산운용·아람자산운용과 연계해 사모펀드를 시리즈로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모펀드는 공시 의무가 면제되는 등 각종 규제에서 공모펀드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이 ‘시리즈펀드’를 통해 공모로 인한 규제를 회피했다고 보고 있다.

금융 당국이 농협은행 시리즈 펀드 제재의 근거로 삼고자 하는 법은 일명 ‘미래에셋방지법(자본시장법 제119조 제8항)’이다. 하나의 증권을 둘 이상으로 쪼개 발행하면 이를 동일한 증권으로 판단하고 이 경우 사모펀드라도 공모펀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는 발행인인 운용사에 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농협은행이 사모펀드 설정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판단 아래 주선인 자격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금융위는 이 사안을 두고 2019년부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심의를 진행해 온 바 있다.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이하 자조심) 2회, 법령해석위원회 1회, 증선위 4회 등 총 7회의 심의를 거쳤다. 법령 해석을 거친 자조심에서는 과징금 부과가 어렵다는 결정을 받았지만, 증선위에서 농협은행이 자본시장법을 우회적으로 위반했다는 의견과 판매 회사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견이 대립하며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제재 여부에 대한 결정이 1년 넘게 보류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증선위는 지난 6월 3일 심의위원회를 열고 농협은행에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증선위에 올린 과징금 부과 안건(농협은행 100억원)에 비하면 대폭 경감된 금액이다.

이에 대해 농협은행 측은 과징금 부과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의 대상 펀드는 채권형 펀드로 안전성 등에서 최근 문제가 된 DLF 사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DLF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했지만 시리즈 사모펀드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금융당국이 제재의 근거로 삼는 법적 근거가 모호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법을 적용한다면 향후 법 해석상에 많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추후 금융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이번 사안을 둘러싼 우려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강희주 증권법학회 회장(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은 농협은행의 경우 대상 펀드와 관련해 운용사들로부터 주선 수수료(펀드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강 회장은 “통상 과징금은 ‘수수료 수익의 몇 퍼센트’로 부과가 되는데, 농협은행의 경우 수수료 수익이 0이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금융당국이 투자자 손실 발생여부에 상관없이 시리즈 사모펀드가 공모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건전한 금융거래 질서를 해치는 행위로 제재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이에 대한 제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난 후 제재를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인 법집행일 것이다"고 말했다.

◆ “DLF와는 다르다” 핵심 쟁점 3가지

농협은행의 시리즈 펀드 제재 여부와 관련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법률 소급 적용 논란이다. 금융당국이 농협은행을 제재하는 데 근거로 삼고 있는 일명 ‘미래에셋방지법’은 2018년 5월 개정됐다. 하지만 농협은행이 해당 펀드를 판매한 것은 법 시행 전(2017년3월~2018년3월)이다. 시리즈펀드에 대한 명확한 법규와 기준이 부재했던 때 이뤄진 과거의 행위를 이후의 규정으로 소급적용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다.

실제 농협은행의 시리즈 펀드 제재와 관련한 심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자조심은 법령해석위원회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관련 법규상 펀드판매회사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던 바 있다. 과거의 법을 적용해 현행법상 판매회사에게 과징금을 부과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김홍기 한국경제법학회장(연세대학교 로스쿨교수, 금융위 법령해석위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과징금 부과 등의 행정처분은 그 근거가 되는 법규를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대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농협은행의 펀드들은 투자자 손실이 없었고, 관련 법규와 행정당국의 사전지도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리하게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법률 불소급 및 확대해석 금지원칙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둘째, 해당 혐의의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증권법 규정 전면 개정을 계기로 학계와 법조계에서 관련 논의가 불붙고 있다.

한국증권법학회는 지난 5월16일 정기세미나에서 ‘미래에셋방지법으로 대변되는 금융당국의 공시 규제가 적정한가’를 주제로 논의를 펼쳤다. 당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이슈가 미 SEC의 ‘거래통합지침 폐기 결정’에 대한 논의였다. 거래통합지침은 둘 이상으로 나눠진 증권을 하나의 발행으로 취급하는 기준을 뜻하는 것으로, 미래에셋방지법의 모체가 된 규정이다. 이번 SEC의 개정안에는 개개의 증권발행에 관해 공시의무를 준수했다면 통합을 통해 증권법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했다.
농협은행 ‘시리즈 펀드’ 과징금…법적 근거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김연미 성균관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이날 주제 발표를 통해 미래에셋방지법 등 현행 규정이 추상적인 문구로 구성돼 있어 증권 발행인과 펀드판매회사 등에게 지나친 불확실성을 부담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선의의 시장참여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미 SEC 규정안이 전면 개정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농협은행 사례는 시리즈증권규정이 펀드에 적용되는 첫 사례이고, 발행인이 아닌 판매회사에 신고서 제출의무를 부과하는 첫 사례인 만큼 매우 신중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펀드판매사를 ‘주선인’으로 처벌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증선위는 지난해 12월 제재여부 판단을 한 차례 보류하는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정책 가이드라인’을 위해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의 공시의무 위반 사건의 소송결과를 확인한 후 제재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 4월3일 서울행정법원은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의 유상증자 주선인이 증선위에 제기한 과징금부과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농협은행 측에서는 증선위가 제재 여부를 판단하는 데 참고하기로 한 바이오인프라 사건은 농협은행의 제재안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바이오인프라 사건의 경우 개인이 유상증자를 위해 지분증권 투자를 권유한 반면, 농협은행은 판매회사로서 수익증권을 판매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또, 바이오인프라 사건의 경우 개인이 발행인으로부터 ‘투자유치의 대가’를 수령했다는 점에서 ‘주선인’에 해당하지만, 농협은행의 경우 발행인인 운용사로부터 ‘수수료 취득이 없다’는 점을 들어 ‘주선인이 아니다’는 판단이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농협은행 사건은 유사소송 판례(바이오인프라사)와 사실관계부터 다르고, 법적 쟁점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자본시장법에서 ‘주선인’이란 투자자에게 투자 위험 정보를 제공해 투자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리고 모집주선에 의한 증권발행이 증가하는 시장상황을 고려했을 때 주선인이 실질적인 기업실사를 소홀히 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13년 도입된 개념이다. 이와 같은 면을 고려했을 때, 증권 발행인에 대한 실사를 하지 않고 집합투자증권(펀드 등)의 판매 업무만을 담당하는 판매사는 자본시장법상 주선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권 원장은 “바이오인프라 사건에서 ‘주선인’에 해당하는 A씨에 대한 소송은 법해석상 논란이 많아 항소심에 계류되고 있는 만큼 이를 금융시장에 단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1호(2020.06.13 ~ 2020.06.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