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의 하자는 현대중공업이 독일 기업인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스(이하 티센크루프)’에서 납품받은 잠수함 부품 문제 때문이었는데 법원은 티센크루프의 과실이 곧 현대중공업의 과실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6월 11일 정부가 현대중공업 등을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지었다. 1·2·3심이 모두 현대중공업에 손해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쪽으로 같은 결론을 내렸다. 2014년 5월 이 소송이 접수된 지 6년여 만이다.
◆2014년 소송 시작 후 6년여 만에 마무리
이 사건의 기초적인 사실 관계는 다음과 같다. 정부는 2000년부터 1조2700억원을 투자해 2009년까지 차기 잠수함을 국내에서 만들고 독자적인 설계 기술을 확보하는 ‘차기 잠수함 사업’을 계획했다.
그리고 이런 사업에 참여할 업체를 찾던 중 2000년 11월 25일 국내 업체로 현대중공업을 선택했다. 현대중공업은 같은 해 12월 11일 티센크루프와 자재 공급에 관한 계약을 했고 그 다음 날 잠수함 세 척을 만들어 해군에 인도하겠다는 잠수함 건조 및 납품 계약을 정부와 체결했다.
현대중공업은 티센크루프에서 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받아 만든 잠수함 중 한 척을 2007년 12월 해군에 넘겼다.
그런데 약 4년 뒤인 2011년 해군은 해당 잠수함으로 훈련하던 중 이상한 소음이 나는 것을 발견했다. 또 같은 해 6월 방위사업청장 등에 잠수함의 추진 전동기에 문제가 있다고 통보했다.
추진 전동기는 현대중공업이 티센크루프에서 공급받은 원자재 중 하나로, 티센크루프의 하급 업체인 독일 기업 지멘스가 제조한 것이었다.
정부는 국방기술품질원 소속 연구원들과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팀을 꾸려 2012년 6월부터 8월까지 독일 현지에서 추진 전동기의 하자 원인을 밝히는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추진 전동기의 제조 공정 중 볼트가 파손돼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 정부는 2013년 12월 현대중공업에 손해 배상금으로 200억4329여만원을 내라고 고지했다.
1심은 계약 당사자인 현대중공업에 손해 배상 책임이 있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잠수함의 하자 문제는 현대중공업이 ‘잠수함 건조’라는 계약(채무)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부품을 납품한 티센크루프는 현대중공업 측의 계약 이행 보조자이기 때문에 이행 보조자의 과실은 곧 현대중공업 측의 과실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민법 제391조는 이행 보조자의 고의·과실을 채무자의 고의·과실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행 보조자는 채무 이행 행위에 속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이면 족하고 반드시 채무자의 지시 또는 감독을 받는 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티센크루프는 현대중공업의 이행 보조자에 해당하고 지멘스는 현대중공업의 복이행 보조자에 해당한다”며 “민법 제391조에 따라 지멘스 등의 고의·과실은 현대중공업의 고의·과실로 인정되고 현대중공업은 추진 전동기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 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민법 제391조 조항은 ‘채무자의 법정대리인이 채무자를 위하여 이행하거나 채무자가 타인을 사용하여 이행하는 경우에는 법정대리인 또는 피용자의 고의나 과실은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재판부는 현대중공업 측이 부품 제조업체의 과실을 통제할 수 없었던 점, 정부가 부품 공급 업체를 선정한 점 등을 들어 손해 배상 금액을 청구액의 30%로 줄였다.
재판부는 “추진 전동기의 결함은 설계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납품 단계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현대중공업은 위 결함이 발생하는 것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현대중공업이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라 티센크루프와 계약을 체결하기는 했지만 결국 부품 공급 업체를 선정한 것은 원고”라며 “현대중공업은 원고에게 청구액의 30%인 58억6499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 “현대중공업도 부품 관리 책임 있어”
해당 사건에 대해 티센크루프 측은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당사자 간 계약과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분쟁은 국제상업회의소(ICC)의 중재 규칙에 따라 해결하기로 약정했으므로 소송이 제기된 것은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정부의 티센크루프에 대한 소는 원고와 피고 사이의 중재 합의에 따라 중재 절차에 의해 최종적으로 해결돼야 하는 분쟁”이라며 “티센크루프의 항변은 이유가 있고 원고의 티센크루프에 대한 소는 각하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티센크루프를 제외한 정부와 현대중공업 측은 모두 항소했는데 2심은 이들의 항소를 기각하며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민법상 채무자는 현대중공업이며 그 이행을 도운 이행 보조자 및 복이행 보조자의 과실에 대해서는 채무자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원자재’란 이 사건 계약에 따라 티센크루프가 피고에게 공급하는 장비·자재·기술자료·용역의 일체를 말하므로 티센크루프가 공급하는 자재도 포함됨이 명백하다”며 “‘자재’의 결함에는 추진 전동기와 같이 티센크루프가 피고에게 공급하는 원자재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중공업이 정부에게 납품한 잠수함이 부품의 내재적인 결함으로 인해 이 사건 건조 계약이 정한 성능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현대중공업은 실제로 이 사건 계약과 관련된 부품의 규격이나 하자 보증에 대해 별도로 정한 바가 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채무의 내용을 이행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 추진 전동기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중공업의 비용으로 구매해 잠수함에 장착한 도급 장비”라며 “원자재에 대한 하자 보증 책임을 티센크루프만이 부담하기로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민법 제391조의 해석에 대해서도 1심과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복이행 보조자인 지멘스의 고의·과실은 피고의 고의·과실로 인정되므로 현대중공업은 정부에 대해 이 사건 추진 전동기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 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해 배상의 범위를 일부 제한한 것도 1심과 비슷한 결의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추진 전동기의 결함인 볼트 파손은 추진 전동기를 해체해야 확인할 수 있다”며 “원자재 등에 관한 검사에 참여하거나 포장 과정에서 육안 검사를 실시하는 등의 업무로는 위 사항을 검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6월 11일 이러한 원심을 확정지었다. 대법원은 “피고는 이 사건 국외 계약에 따라 티센크루프로부터 원자재를 공급받아 잠수함을 건조했고 그중 한 척을 해군에 인도했다”며 “복이행 보조자인 지멘스의 고의·과실은 피고의 고의·과실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 판단은 법리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며 판결을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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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장보고-Ⅱ’ 잠수함.
현대중공업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2호(2020.06.20 ~ 2020.06.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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