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데이터를 기업 아닌 개인이 소유하는 권리
-내 정보 활용해 맞춤형 대출·투자 가능
막 오른 ‘마이데이터’ 시대…금융업 무한 경쟁 시작됐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3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전세 임대차 계약 만기를 2주일여 앞두고 집주인에게서 보증금 7000만원을 올려 달라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급한 마음에 ‘오후 반차’를 내고 은행 창구 네 곳을 돌아다닌 끝에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한 첫째 은행으로 다시 가 신용 대출을 받기로 했다.

급전이 필요해 대출을 받을 때 흔히 벌어지던 풍경이다. ‘마이데이터’ 시대가 열리는 8월부터는 이러한 수고로움이 차츰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번거롭게 은행 창구를 방문할 필요가 없다. 금융회사에 개인 신용 정보 열람권을 제공해 뒀다가 대출이 필요할 때 금리가 가장 낮은 은행을 선택하면 된다.

◆금융 혁신 서비스 쏟아진다
막 오른 ‘마이데이터’ 시대…금융업 무한 경쟁 시작됐다
마이데이터는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 이용 내역 등 금융 데이터의 주인을 금융회사가 아닌 개인으로 정의하는 개념이다. 개인 의사에 따라 데이터 열람권을 제삼자에게 넘겨줄 수 있다. 각 회사에 흩어져 있는 개인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의 혜택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세계적으로 마이데이터 개념이 가장 활성화한 곳은 유럽이다. 유럽연합(EU)은 2016년 4월 마이데이터에 대한 개인의 통제권 확대를 목적으로 한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법령 ‘개인 정보 보호 규정(GDPR :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제정했다. 개인의 요청이 있으면 금융회사 등 데이터 보관 기관은 제삼자에게 의무적으로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미국·호주·일본 등에서도 마이데이터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정부는 개정 신용정보법 시행을 계기로 금융 분야 마이데이터 사업을 추진하는 중이다.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8월부터 사업자들이 개인의 동의를 받아 금융 정보를 통합 관리해 주는 마이데이터 사업이 가능해진다.

사업이 활성화하면 신용 데이터를 활용한 금융 분야 혁신 서비스가 줄줄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5월 시행한 라이선스 사전 수요 조사에는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토스 등 테크핀(기술 금융) 회사와 은행·카드사·증권사·보험사 등 119개 기업이 몰렸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7월 13일부터 마이데이터 예비 허가 사전 신청서 접수를 하고 있다. 사전 신청서를 제출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8월 중 라이선스 허가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라이선스를 받은 기업끼리는 개인 동의가 있으면 재무 정보 등을 의무적으로 공유하게 된다.

금융사와 테크핀 회사들은 마이데이터 라이선스를 받은 뒤 금융 상품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플랫폼 서비스와 자산 관리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금융 소비자가 최저가 대출을 추천받는 ‘역경매 서비스’가 당장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보다 한층 강화된 투자 자문 서비스도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AI)이 소비자의 자산 정보와 주식 매매 패턴 등을 감안해 포트폴리오의 보완점을 진단하고 맞춤형 투자 상품을 판매하는 식이다. 금융사에 분산된 개인 정보에 대해 당사자가 공유를 허락하면 각 금융사 등이 데이터를 종합해 투자에 대한 의사 결정을 돕는 형태다.

정부는 마이데이터 라이선스를 받은 기업에 비금융 업무도 허용할 방침이다. 기존 금융 서비스가 데이터 기반으로 고도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비금융 서비스도 탄생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마이데이터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개인”이라며 “의도와 달리 활용하는 데 제약이 있던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의사 결정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의료 데이터 개방은 아직 먼 얘기

정부는 금융을 시작으로 다른 영역에서도 마이데이터 사업을 추진한다. 진료·교통 이용 내역 등 성격이 다른 데이터 간 결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막 오른 ‘마이데이터’ 시대…금융업 무한 경쟁 시작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와 관련해 마이데이터 기반 실증 서비스 과제를 공모했다. 최근 의료·금융·공공·교통·생활·소상공인 등 6개 분야의 8개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선정된 프로젝트만 봐도 개인 데이터를 활용한 비금융 서비스 범위의 향후 확대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시는 BC카드 등과 함께 ‘교통 마이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한다. 개인은 플랫폼을 통해 버스·지하철·택시 등 자신의 교통 이용 내역을 서울시에 제공해 토큰 형태의 보상을 받고 서울시는 이를 바탕으로 대중교통 혼잡도 관리, 방역 관리 등의 대책을 수립하는 형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신한카드 등과 협업해 상가 임대료와 권리금 등 소상공인 데이터를 통합한 뒤 맞춤형 대출 정보 등을 제공하는 ‘소상공인 마이데이터 플랫폼’을 만든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특히 의료 분야와 관련해 다양한 신규 사업 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이 보유한 처방전이나 건강검진 결과 등의 데이터가 오픈된다면 특정 기업이 개인을 대상으로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 질환별 특성에 맞춘 건강 정보·식단을 제공한다거나 질환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등을 추천하는 식이다. 보험사들은 개인 건강검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향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질환에 대비한 보험 상품을 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법 개정 등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국내에서는 개인 의료 정보의 거래가 금지돼 있다. 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공 기관에 축적된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조차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의해 사실상 막혀 있다.

권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병원 진료 기록 등을 스마트폰으로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헬스 애플리케이션’이 있고 데이터를 분석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존재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먼 얘기”라고 말했다.

마이데이터 사업과 관련한 역차별 논란도 풀어야 할 과제다. 금융회사들은 사업이 테크핀 기업에만 지나치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업에 참여하는 금융사는 모든 정보를 개방해야 하는 반면 정보기술(IT) 기업인 네이버는 사업에 참여하는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의 정보만 공개하면 된다는 이유에서다.

테크핀 기업들이 금융사가 쌓아 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게 되면서 금융사들도 네이버가 가진 검색·쇼핑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형 금융 상품 등의 제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네이버가 자회사를 앞세워 사업에 참여하면서 금융사들은 네이버파이낸셜의 제한적 데이터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테크핀 활성화를 명목으로 금융사에 적용하는 규제가 공정 경쟁과 서비스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6호(2020.07.18 ~ 2020.07.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