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2B 서비스 ‘블라인드 허브’ 론칭
- 머신러닝과 AI 분석으로 냉정한 목소리·솔루션 제공
‘직장인 대나무숲’ 블라인드, 기업 문화 컨설팅 나선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직원들의 불만은 무엇일까.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만 하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많은 이들이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조언한다. 과연 옳은 것일까.

물론 상황에 따라 무시하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경쟁사를 파악하는 것만큼 자신의 회사에 대한 평가도 냉정히 파악해야 한다. 특히 내부의 목소리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많은 기업 경영자들은 직원들의 목소리를 두려워한다. 이 때문에 익명 기반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영자들도 많다. 회사의 민감한 정보가 새나갈 수도 있고 회사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기폭제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블라인드를 통한 내부 고발로 많은 기업들이 후폭풍을 맞기도 했다. 워낙 파급력이 크다 보니 블라인드 게시판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블라인드가 만들어진 궁극적인 목적은 고발이 아니다.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문화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를 경영자가 인식하게 함으로써 건강한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앱)을 운영하는 팀블라인드의 문성욱 대표는 “블라인드는 회사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플랫폼”이라며 “기업이 직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의사 구조를 만드는 것이 블라인드를 만든 목표”라고 말했다.

◆ 가입자만 450만 명, 기업 수 15만 곳 달해

올해로 창업 7년 차를 맞은 팀블라인드는 그동안 고속 성장을 거듭해 왔다. 2013년 창업한 이후 그해 12월 블라인드 앱을 출시했고 이듬해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아예 미국에 본사를 차렸다.

이제는 가입자만 직장인 450만 명, 기업 수는 15만 곳에 이른다. 대표를 포함해 6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직원이 100명이 넘을 정도로 조직의 규모도 커졌다.

이제 온전히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지만 문 대표는 ‘아직 절반’이라고 말한다. “직장인 유저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공간을 만들었으니 이제 이들의 목소리를 기업에 전달해 올바른 기업 문화가 정착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 대표는 지난 1년여간 준비해 왔다. 바로 ‘블라인드 허브’다. 올해 8월 5일 정식 론칭한 블라인드 허브는 직원들의 목소리에 담긴 의미와 외부에서 기업을 보는 각종 시선을 머신 러닝 기법과 인공지능(AI) 분석으로 얻은 결과를 데이터화해 해당 기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제공하는 일종의 B2B 서비스다.

쉽게 말해 기업 문화 컨설팅을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기업 문화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들과는 차이점이 있다.

기존의 컨설팅 업체들은 사내 인터뷰, 경쟁사와의 비교를 통해 기업의 분석 자료를 제공하고 있지만 블라인드 허브는 블라인드에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객관화된 정보를 전달하는 서비스다.

문 대표는 “기존의 컨설팅 기업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컨설턴트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고 익명으로 얻어진 데이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블라인드 허브는 정확하다 못해 냉정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블라인드 허브는 크게 3가지 측면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첫째, 위기관리다. 경영진이 직원들이 올리는 글에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사안에 대해 블라인드 허브가 경고음을 보내 기업들이 대응과 변화를 모색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둘째, 평판 관리다. 블라인드 이용자들은 이직 등을 위해 관심 있는 회사의 정보를 얻기 위해 커뮤니티에 많은 질문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재직자는 물론 퇴사자들이 해당 기업에 대한 수많은 정보 제공한다.

장병준 블라인드 허브 프로젝트 매니저(PM)는 “기업들에 블라인드 사용자들은 잠재적인 채용 대상이며 이들이 만들어 내는 콘텐츠를 분석하면 현재 회사의 평판이나 브랜딩 현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셋째, 고용 시장 트렌드 분석이다. 예를 들어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어떨 때 특정 회사에서 대량 이직이 발생할지 대략 짐작해 낼 수 있다. 특정 기업 사용자들이 ‘이직’ 키워드를 검색하기 시작하면 인사 시스템의 문제를 파악해 해당 기업 인사팀에 경보음을 보내게 된다.

장 PM은 “블라인드 허브가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다양한 분석 기법을 개발했다”며 “여러 기업들의 인사관리(HR) 담당자들에게 유용한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인드 허브는 이제 시작 단계다. 올해 세일즈를 통해 서비스를 알리고 내년부터 한국과 미국에서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B2B 비즈니스 모델인 만큼 팀블라인드의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로 개발했고 회사 내부에서는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일단 분위기는 좋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직장인들의 신뢰성을 최우선 가치로

문 대표는 “서비스 개발 단계에서부터 기업들의 관심이 높았다”며 “아직 오픈할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는 몇몇 기업과 서비스 제공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사실 팀블라인드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선 새로운 수익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지금까지 팀블라인드의 주요 수익은 대부분 광고 수익이었는데 회사가 더 성장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선 새로운 먹거리가 나와야만 했다.

하지만 블라인드 허브를 개발·출시하기까지 문 대표와 팀블라인드 임직원들은 많은 고민과 논의를 진행했다. 사업적으로 경쟁력이 있지만 자칫하면 블라인드의 근본인 익명성 보장이라는 것이 왜곡될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블라인드에 축적된 내용을 분석해 기업에 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오해가 생길까 우려해서다. 물론 블라인드 시스템 자체는 그리 허술하지 않다. 블라인드의 철학은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면 애초에 갖고 있으려고도 하지 말자’는 것이다.

팀블라인드는 작성자 데이터를 아예 시스템에 보유하지 않는데, 회원 가입시 적는 회사 이메일은 재직자 확인 목적으로만 활용하고 이후엔 복구 불가능한 데이터로 바뀐다.

즉 블라인드는 갖고 있는 작성자 정보가 없기 때문에 기업이든 어디든 정보를 제공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팀블라인드가 직장인 익명 게시판 서비스를 선보인 이후 많은 국가에서 유사한 서비스가 나왔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기술보다 서비스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운영 철학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블라인드는 기술보다 신뢰가 훨씬 중요한 상품”이라며 “블라인드 허브 역시 직장인들의 신뢰성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블라인드 허브의 탄생은 비즈니스적인 문제보다 직원들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전함으로써 그 기업이 더 건강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1호(2020.08.22 ~ 2020.08.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