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2017년을 능가하는 강력한 붐 예고…생태계 성숙하고 법적 제도 정비, 기관투자가 매집도
윙클보스 형제의 비트코인 투자 8년…“진짜 상승기는 이제부터” [비트코인 A to Z]
[오태민 지놈체인 대표, ‘비트코인은 강했다’·‘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비트코인 : 지혜의 족보] 저자]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사연이 복잡한 페이스북 만큼이나 복잡한 마크 저커버크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성격을 흥미롭게 묘사했다.

하버드대 캠퍼스의 ‘인싸’였던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가 해커로 소문난 저커버크 CEO에게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프로그램을 짜달라고 부탁한다. 저커버크 CEO는 프로그램을 짰고 이렇게 페이스북이 탄생했다.

영화는 입체적인 저커버크 CEO와 상반되게 윙클보스 형제를 전형적으로 묘사했다. 백인이고 부잣집 아들이며 올림픽 본선에 출전할 정도로 운동에도 소질이 있는 금수저였다. 유대인이자 평범한 외모에 여자 친구에게 차이기나 하는 저커버크 CEO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비트코인 세계에서 윙클보스 형제처럼 입체적인 인물들도 드물다.

페이스북 탄생을 둘러싼 소송은 합의로 종결된다. 2013년, 이 형제가 합의금으로 받은 6500만 달러(약 771억6000만원)의 상당 부분을 비트코인에 쏟아부으면서 윙클보스 형제와 저커버크 CEO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셈이다. 영화 속편이 나온다면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누군가에게서 비트코인에 대해 듣고 이 형제가 저커버크 CEO를 떠올리며 야심찬 미소를 짓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형제는 비트코인이 페이스북보다 거대한 무엇이 될 수 있다고 직감했다고 한다. 형제는 과감하게 투자해 당시 비트코인 유통량의 1%인 정도인 13만 BTC를 확보한다. 저커버크 CEO가 페이스북에서 비트코인 지갑을 활용하지 못하게 막았던 이유도 나중에 독자적인 암호화폐를 발행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윙클보스 형제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시작했음에도 페이스북은 미국 서부의 실리콘밸리에서 성장기를 보낸다. 반면 윙클보스 형제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미국의 동부다. 그들은 비트코인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미국 동부의 제도권 금융 산업과 연결돼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찌감치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신청했다. 관료 제도의 벽을 넘기 위해 막대한 법률비용을 충당하면서 비트코인의 ‘동부화’에 힘을 쏟았다.

◆법 제도 정비의 계기 만든 ‘2017년 붐’


미국 최초로 비트코인 관련 산업을 규제한 뉴욕 주 비트라이선스 법안의 발의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이 설립한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의 영업 승인을 받기도 했다. 당시 비트코인 주류들은 미국의 서부가 원산지인 반문화 운동의 취향을 공유했기 때문에 뉴욕비트라이선스 법안은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를 탄압하는 정부의 음모로 이해했다. 비트코인 주류들의 눈에 윙클보스 형제의 행위는 일탈 정도가 아니라 반역으로 보였다.

이들이 공들이던 비트코인 ETF는 결국 승인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형제가 가리킨 방향은 이후 업계의 주류적 관점이 됐으므로 이들은 영향력 있는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몇 달 전 이들은 체인링크를 극찬했는데 이후 가격이 500% 이상이나 뛰었다. 이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나게 보여준 사건이다.

최근 카메론 윙클보스 제미니 공동 창업자는 트위터에서 다가올 암호화폐 상승기는 2017년의 그것과 양상이 크게 다를 것이라고 예견했다. 생태계의 성숙과 법정 통화의 인플레이션을 근거로 제시했다. 즉 2017년의 붐보다 훨씬 견고하고 강력한 상승 압력을 암시했다.

2017년의 붐은 정부 관료들을 의식할 필요 없이 토큰을 발행해 자금을 그러모을 수 있다는 오해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해 주요 국가들이 암호화폐 공개(ICO)에 대해 규제를 선언하고 나서자 ICO 붐과 암호화폐의 붐이 동시에 꺼져 버렸다. 하지만 2017년은 성장의 발판이기도 했다. 많은 스타트업들은 손쉽게 모은 자본을 어이없게 탕진해 버리기도 했지만 생태계의 기반인 인프라스트럭처에 힘을 쏟는 회사도 많았다. 또 투자자들을 비롯한 대중의 이해도가 높아졌고 그만큼 얼치기 코인 프로젝트가 등장할 여지가 줄었다. 블록체인 만능론이 사그라지는 대신 블록체인에 맞는 산업 부문이 부각됐다. 지금 업계의 화두는 디파이(DeFi : 탈중앙화 금융)로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직접 금융의 가능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암호화폐가 금융 혁신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을 음미할수록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동부와의 관계 정립을 주창했던 윙클보스 형제의 안목이 도드라져 보인다.

무엇보다 2017년의 붐과 붕괴의 가장 큰 성과는 정부들이 법적 제도를 정비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한국도 최근 관련 세제를 확정했다. 미국에선 암호화폐를 은행들이 다루는 수준까지 정비됐다. 즉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거래소를 폐쇄할지 모른다는 대중의 공포감을 고려하면서까지 투자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개인들이 사기에는 이미 비싼지도 모른다. 물론 0.001 BTC를 구입할 수도 있지만 느낌은 좋지 않다. 이에 따라 비트코인의 상승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개인이 아니라 기관들에 의해 매집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100배 이상 상승을 기대하는 개인들에게 비트코인은 이미 둔중하고 성숙한 자산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산 관리의 원칙으로 안전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기관들은 오히려 비트코인을 선호할 것이다.

◆‘가격 안정성’ 얻기 시작한 비트코인


기관들로부터 암호화폐에 투자를 위탁받는 그레이스케일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얼마 전 세계 최대 기업 정보 제공 업체이자 나스닥 상장회사인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2억5000만 달러어치, 총 2만1454개의 비트코인을 매수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회사 자산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으면 위험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비트코인에 투자한 공식적인 이유다.

생태계의 성장, 인플레이션, 기관의 투자 말고 주목해야 할 요인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중국 국경 바깥으로의 자산 도피다. 이미 지난해 홍콩 사태 때부터 가능성이 대두됐다.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디커플링의 전개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미 스위스 은행에 감춰진 중국 공산당 지도부들의 비자금이 논란의 중심이 됐다. 한 명당 1조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이 스위스 은행에 은닉됐다는 것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이들의 명단을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 즉 중국의 부호들이 선호하는 자산 도피처 세 곳인 홍콩·미국·스위스 등이 모두 온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의 부호들이 비트코인을 확보해 장기간 묻어 놓는 방법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거래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채굴한 코인을 종이 지갑의 형태로 보관하고 있으면 들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을 때도 걸리지 않는다.

이미 블록체인 분석 업체 체인널리시스는 지난 1년간 중국에서 암호화폐로 빠져나간 자금이 약 500억 달러(약 59조원) 규모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단순한 이동이기 때문에 비트코인보다 달러와 가격이 연동된 테더가 주로 이용되고 있지만 현재 테더 경영진이 미국 뉴욕 검찰에 의해 기소 중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변수다. 테더에 대한 투자는 미국 금융 당국에 의해 파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부호들의 최종 선택 역시 비트코인일 가능성이 높다.

윙클보스 형제와 같이 제도권 주류를 지향하는 이들이 비트코인에 몰두하기 시작한 지도 8년이 돼 간다. 그들의 생각대로 비트코인은 제도권과 조우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글로벌 제도권과 연결 고리를 확보하려는 지구촌 시민과 개개인들의 욕망이야말로 비트코인의 진정한 존재 이유인지도 모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