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전기·수소 이용 엔진 개발 속도 내…유럽·미국 기업과 ‘합종연횡’ 시작한 조선 3사
바다 위의 테슬라 온다...닻 올린 ‘친환경 스마트 선박’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미래형 선박은 크게 두 개의 키워드로 개발된다. 하나는 ‘친환경’이고 다른 하나는 ‘스마트’다.
현재 대부분의 대형 선박은 디젤 엔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디젤 엔진은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아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디젤 엔진을 대체하기 위한 엔진은 오래전부터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액화천연가스(LNG)선이다. 올해부터 발효된 국제해사기구(IMO)의 강력한 환경 규제(황산화물 함유량을 3.5%에서 0.5% 이하로 감축)를 피하기 위한 조선 해운업계의 방법은 두 가지다. 배의 연료를 LNG로 통째로 바꾸든지 선박에 탈황 장치(스크러버)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주요 기항지들이 스크러버 설치 선박의 입항을 제한하면서 선사들의 무게 추는 LNG를 연료로 쓰는 LNG 추진선 쪽으로 기울고 있다.

스크러버를 설치하는 방법은 저렴한 비용과 비교적 짧은 장착 기간 때문에 빠른 대응을 선호하는 선사들의 선택을 많이 받았다. 가격이 싼 연료인 벙커C유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한몫했다. 하지만 오염 물질을 바다에 버리는 구조라는 점 때문에 자국 인근 해안에서 스크러버를 장착한 선박 운항을 금지하는 국가가 점차 늘었다. 결국 규제를 피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LNG 추진 방식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LNG 연료는 기존 벙커C유보다 황산화물은 90% 이상, 질소산화물은 80% 이상, 이산화탄소는 15% 이상 배출이 줄어든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로 꼽힌다.

친환경 선박 발주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조선·해운 분석 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LNG 추진 방식의 선박 발주량은 전체 발주량의 17%로 전년보다 10%포인트 올랐다. LNG운반선을 포함하면 이 비율은 31%에 달한다. 2000년대 5~6% 수준에서 2배 이상 늘어났다.
업계는 2025년부터 시행 예정인 IMO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까지 고려하면 LNG 추진선이 장기적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 클락슨·로이드 선급 등은 2025년에 세계 신규 발주 선박 시장의 60.3%를 LNG 연료 추진선이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소들의 LNG 추진선 건조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한다. 특히 건조 경험과 노하우, 주요 기자재 제작 역량을 핵심 경쟁력으로 꼽는다. 한국의 대형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는 모두 독자적인 LNG 연료 공급 시스템을 구축했고 전용 엔진 적용 사례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글로벌 LNG 운반선 수주 비율은 80%를 넘어섰다. 2018년에는 글로벌 LNG선 발주량 72척 중 66척을 수주, 2019년에는 60척 중 48척을 차지했다.
바다 위의 테슬라 온다...닻 올린 ‘친환경 스마트 선박’
일례로 현대중공업그룹이 세계 최초로 LNG를 연료로 운항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싱가포르 이스턴퍼시픽시핑(EPS)이 발주한 1만48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시운전을 마무리했다고 8월 24일 밝혔다. 이 선박은 9월 15일 정식으로 선주에게 인도된다.

이 선박은 길이 366m, 폭 51m, 깊이 29.9m 규모다. 특히 이 선박엔 1만2000㎥급 대형 LNG 연료탱크를 탑재해 단 1회 충전만으로 아시아와 유럽 항로를 왕복 운항할 수 있다. 이 탱크는 섭씨 마이너스 163도의 극저온 환경에서도 우수한 강도를 유지하고 충격을 견디는 9% 니켈강을 주 소재로 만들었다. 이 탱크 외에 LNG 추진에 필요한 연료 공급 시스템(FGSS)과 이중 연료 엔진 등의 배치와 설계를 최적화해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였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자동차 업종에서 전기차가 각광 받듯이 조선업도 앞으로 LNG 추진선 같은 친환경 선박이 주목받을 것”이라며 “축적된 기술과 품질로 고객 신뢰를 확보해 LNG 추진선 분야를 지속적으로 주도해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LNG선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탈(脫) LNG 시대가 됐을 때 차세대 선박 핵심 기술을 선점하지 못하면 조선 분야 리더십과 기술적 주도권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 내 124억 달러 규모 될 전기 선박


실제로 국내 조선업계는 ‘포스트 LNG’ 시대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IMO의 환경 규제가 2050년엔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분주한 모습이다. 한국 조선업계는 이미 전기·연료전지·리튬 배터리 등을 이용한 운송 수단 마련에 착수해 조만간 전기·수소 선박 시대가 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선두 주자는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의 지주회사)이다. 8월 전기 추진 기술을 독자 개발한 한국조선해양은 수주까지 마무리하면서 다음 단계인 상용화에 착수한 상태다.

현대미포조선은 8월 말 울산정보산업진흥원(UIPA)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전기 추진 스마트 선박 1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그간 해외에서 전량 수입됐던 선박용 전기 추진 시스템을 국산화해 처음 상용화에 나선 것이다. 글로벌 시장 예측 전문 기관인 ID테크EX에 따르면 전기 추진 선박 관련 시장 규모는 2018년 8억 달러에서 2029년 124억 달러 수준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조선해양은 UIPA 등과 전기 추진 스마트 선박 기술 개발을 위해 업무협약(MOU)을 맺고 향후 대형 선박에도 적용할 수 있는 전기 추진선 기술 개발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연료전지를 활용한 친환경 선박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6월 말 미국의 세계적 연료전지 제조사인 블룸에너지와 선박용 연료전지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2022년까지 LNG선과 셔틀탱커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연료전지 핵심 기술을 추가 확보할 방침이다. 높은 발전 효율을 가진 연료전지는 황산화물·질소산화물·이산화탄소 등 환경 오염 물질에 대한 감축효과가 크다. 기존 내연기관용 선박 추진기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추진 동력으로 평가 받고 있는 이유다.

대우조선해양은 한화디펜스와 손잡고 연료전지와 함께 차세대 선박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리튬 배터리 기반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개발에 나섰다. 대우조선해양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선박 내 발전기와 전력 부하를 최적의 상태로 제어해 오염 물질 배출량을 줄이고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

암모니아 추진선은 조선 3사가 모두 개발 중인 친환경 추진 기술이다. 암모니아는 연소 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 무탄소 대체 연료로, 경제성과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선 3사는 각각 영국의 로이드 선급(LR)과 인증을 추진하고 있고, 한국조선해양은 이들 중 처음으로 지난 8월 LR로부터 암모니아 연료 추진 선박에 대한 선급 기본 인증서를 받아 2025년부터 상용화할 예정이다.
바다 위의 테슬라 온다...닻 올린 ‘친환경 스마트 선박’
◆곧 대서양 횡단할 자율 운항 선박


친환경 기술과 함께 미래형 선박의 또 다른 축은 IT와의 융합을 통한 ‘스마트화’다.

미국 IT 매체 등에 따르면 메이플라워라는 이름의 자율 운항 선박이 2021년 초 대서양을 횡단할 예정이다. 현재 영국 해양 기관인 프로메어와 IBM은 인공지능(AI) 자율 운항 선박 메이플라워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메이플라워는 자율주행차나 자율주행 드론과 같이 인간 선원 없이 AI를 통해 스스로 바다를 운항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메이플라워는 400년 전 영국 청교도들이 타고 와 미국 대륙을 발견했던 배인 ‘메이플라워’에서 이름을 따왔다

메이플라워는 내년 초 원조 메이플라워호가 지나왔던 영국 플리머스에서 미국 매사추세츠까지 선원 없이 항해할 계획이다. 항해에 성공한다면 선장이나 승무원 없이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자율 항해 선박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메이플라워 프로젝트 관계자는 “메이플라워의 대서양 항해가 끝나면 수집한 운항 데이터를 IBM의 왓슨 AI로 분석해 자율 선박이 장애물 회피, 해상 상태 변화 등과 같은 문제 발생 시 처리하는 방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며 “이러한 실제 데이터는 개발자가 미래의 자율 선박에 사용될 기계학습 모델을 개발하고 훈련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미래형 선박은 단지 동력원의 변화만 있는 게 아니다. IT의 발전으로 가장 떠오르는 것은 스마트 선박이다. 스마트 선박은 ‘상당한 수준의 모니터링과 운영 시스템에 대한 자동화와 데이터 통신 수준을 갖춘 선박’으로 정의된다. 이미 선박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동화와 통신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그보다 더 고도화된 설비를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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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조선 기술에 자율 운항 제어 시스템(ANS : Autonomous Navigation System), 선박 자동 식별 장치(AIS :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위성 통신망 선박 원격 제어 기술(IMIT : Integrated Maritime Information Technology) 같은 IT다. 자율 운항은 물론 보다 경제적이고 안전한 운항이 가능해진다.

현재 스마트 선박에 대한 기술 개발은 유럽이 가장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유럽은 2012년부터 3년간 유럽연합(EU)의 지원으로 진행된 타당성 검토 과제의 성격인 MUNIN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적·법률적·제도적·경제적·사업적 측면의 타당성을 연구하고 전략 방향을 제시했다. 이후 각국별 또는 국가 간 연구 기관과 대학·기업·해군사관학교 관련 기관 등의 폭넓은 협력과 국가적 지원하에 여러 개의 다양한 목적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특히 전자·해양 솔루션 부문에서 세계 1위의 경쟁력을 가진 콩스베르그는 현재 독자적 플랫폼 개발과 여러 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실선 건조 단계에 와 있고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자재 부문 사업의 확대까지 실행하고 있다. 유럽의 스마트 선박 개발은 기술 개발 영역뿐만 아니라 법률·제도·비즈니스 모델·안전·보안 등 모든 관련 부문에 대한 연구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 선박’ 개발 속도 내는 조선 3사


한국 조선업계는 조선 3사를 중심으로 개발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맏형인 현대중공업은 2011년 세계 최초로 스마트 선박을 건조한데 이어 2017년 업계 최초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경제적·안정적 선박 운항과 관리를 지원하는 통합 스마트 선박 솔루션(ISS)을 개발하며 스마트 선박 생태계를 마련했다.

ISS는 항해사의 숙련도와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항해 방법을 표준화하고 운항 정보의 실시간 수집과 분석을 통해 운항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이 기술을 통해 화물창의 온도와 압력은 물론 용기의 진동에 따라 액체가 떨리는 슬로싱 현상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바다 위의 테슬라 온다...닻 올린 ‘친환경 스마트 선박’
올해 1월에는 독자 모델인 힘센엔진에 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ICT를 접목해 기존보다 10% 이상 연료비 절감 효과를 내는 선박 운전 최적화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또 5월에는 카이스트와 공동 개발한 첨단 항해 지원 시스템 ‘하이나스(HiNAS)’를 SK해운의 25만톤급 벌크선에 탑재하기도 했다. 실제 운항 중인 대형 선박에 해당 기술을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우조선해양도 스마트 선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018년 7월 업계 최초로 영국 로이드 선급으로부터 스마트 선박 사이버 보안 상위 등급을 인증 받았고 세계적 엔진 업체인 독일 만-ES, 스위스 윈GD 등 디지털 선박 엔진 솔루션 개발을 위한 기술 협약을 맺는 등 스마트 선박 기술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는 HMM과 협력해 스마트 선박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양 사는 IoT 기반의 리얼타임 서비스 연구, 선대 운영을 위한 육상 플랫폼 연구, 선박 자재 창고 자동화 시스템 개발, 경제 운항 솔루션 개발 등의 과제를 공동으로 연구한다.

올해 5월에는 독자 개발한 스마트십 솔루션 DS4(DSME Smart Ship Platform)를 HMM의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에 탑재했다. 이 솔루션은 선주가 육상에서도 항해 중인 선박의 메인 엔진, 공조 시스템(HVAC), 냉동 컨테이너 등 주요 시스템을 원격 진단해 선상 유지·보수 작업을 지원할 수 있다. 최적 운항 경로를 제안해 운항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스마트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설치됐고 개방형 IoT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플랫폼’을 활용하면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쉽게 연결해 호환할 수 있다. 8월에는 세계 최고 디지털 항만으로 평가받는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과 향후 3년간 스마트 선박-항만, 자율 운항 선박-항만 연구를 진행하는 협약을 맺기도 했다.

삼성중공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2013년 경제 운항 솔루션을 자체 개발하고 다수의 선박에 실제 적용한데 이어 2017년 자체 개발한 스마트 선박 솔루션 에스베슬(SVESSEL)을 출시했다.

에스베슬은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기반으로 선박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ICT로 통합 관리해 선박의 경제적이고 안전한 운항을 지원한다. 또 연료 소모량을 절감할 수 있는 최적 운항 계획 수립, 실시간 장비 상태 감시 및 고장 진단, 육상 원격 관제 기능 등 다양한 솔루션이 포함돼 있다. 에스베슬은 2018년부터 삼성중공업이 수주한 모든 선박에 적용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SK텔레콤과 손잡고 5세대 이동통신(5G) 기반의 자율·원격 모형 선박 이지고(Easy go) 시험 운항에도 성공했다. 해당 운항에서는 원거리에서 목적지 정보만 입력하면 모형 선박이 주변 장애물을 인지하고 이를 피해 목적지에 도착하는 자율 운항 기술과 직접 제어가 필요할 경우 5G 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선박을 원격 운항하는 기술을 검증했다.

이어 올 5월에는 세계 최초로 스마트 선박 인증을 받은 15만 톤급 셔틀탱커 이글 페트롤리나를 인도했다. 해당 선박은 셔틀탱커로서는 세계 최초로 노르웨이·독일 선급인 DNV GL이 공식 인증한 스마트 선박이다. 해당 선박은 에스베슬을 통해 최적의 연비를 낼 수 있는 운항 경로, 엔진 출력 및 선박 기울기 등의 정보를 제공받고 연료 소비량,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같은 운항 정보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또 육상 관제실에서도 선박 운항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삼성중공업은 글로벌 기업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에스베슬 고도화와 관련해서는 글로벌 엔진 기술 업체인 독일 만-ES과 스마트십 선박용 엔진 기술 개발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지난해 6월부터 DNV GL과 2022년까지 승선 인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최신 자율 운항 선박 기술 확보를 목표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3호(2020.09.07 ~ 2020.09.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