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혁의 신산업 리포트]
⑫ 코로나 피해 업종 : 항공

- 미국 빅3 항공사 올해 2분기 매출 전년 대비 80% 감소
- ‘생태계 재편’ 불가피
“지금까지 본 탑승객 수 중 가장 적었어요” 항공사 승무원의 한숨
[최중혁 칼럼니스트] “지금까지 본 탑승객 수 중 가장 적었어요.”

필자는 얼마 전 한국에 방문해야 할 일이 생겨 공항에 가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출장이 취소된 후 처음 비행기를 탄 것이다. 델타 항공을 이용한 뒤 갈아타게 된 인천행 대한항공 승무원이 이렇게 말했다.

이 승무원은 이 여정이 마지막이고 다시 휴직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미국 항공사 승무원들도 비슷한 사정이다.

방문할 때마다 활기차고 부산했던 디트로이트공항은 텅 비었고 북적거리다 못해 매시간 수많은 사람들을 비행기에서 토해내던 시카고공항은 상점이 대부분 닫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도착지인 인천공항은 전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은 산업 중 하나는 항공 산업이다. 전통적인 리테일러들의 타격으로 이커머스가 수혜를 본 것처럼 이로 인해 특별히 반사 수혜를 본 업종도 없다. 항공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 팬데믹으로 미국 항공 수요 96% 감소

미국 교통통계국에 따르면 미국 각 주에서 자택 대기 명령(stay-at-home)이 내려지고 약 한 달 정도 지난 4월 14일 공항 보안검색대를 지난 사람의 숫자는 8만7534명에 불과해 지난해 같은 날에 비해 무려 96%나 감소했다.

이 숫자는 조금씩 회복됐지만 8월 26일에도 전년 같은 날에 비해 75% 줄어든 54만 명에 그쳤다. 코로나19를 우려해 출장과 여행을 비롯해 이동 자체가 사라졌다.

항공기를 띄울 수 없기 때문에 항공사들이 꺼낸 대책은 비용 절감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2020년 2분기에 글로벌 항공사들은 2019년 2분기 980억 달러를 사용했던 변동비용을 290억 달러까지 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승무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같은 기간 동안 180억 달러에서 120억 달러로 줄이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미국 항공사들은 감원을 단행하지 못했다. 경기부양법(CARES Act)에 따른 미국 정부의 급여 지원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관련 경기 부양 패키지로 항공사에 전체 고용의 90% 이상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6개월 동안 250억 달러를 지원했다.

아메리칸항공 58억 달러, 델타항공 54억 달러, 유나이티드항공 50억 달러, 사우스웨스트항공 32억 달러 순으로 미국 대형 항공사 4곳이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치료제가 출시되지 못한 상황인데다 이 프로그램은 9월 30일 끝나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추가 지원이 없다면 미국 항공업계의 감원은 불가피하다.

미국 항공 노조 또한 정부에 이 재정 지원책 연장을 요구하는 가운데 미국 항공사 경영진이 이를 지지하고 있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다.

미국 대형 항공사들의 부채 규모는 상당하다. 2019년 말 기준 아메리칸항공의 총 부채는 601억 달러였지만 팬데믹을 겪은 후 2020년 2분기에 677억 달러로 늘어났다.

또 아메리칸항공은 2019년 말에도 자기자본(-1억 달러)이 마이너스인 상태인 완전 자본 잠식 상태였지만 2분기 말엔 상황이 더 심각(자기자본 -32억 달러)해졌다.

작년 말에 부채 비율이 320%였던 델타항공은 이번 2분기 말에 732%까지 치솟았고 유나이티드항공 또한 같은 기간 이 비율이 391%에서 545%까지 높아졌다.

그나마 건실한 운영으로 인정받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이번 2분기 말 부채 비율은 227%로 나은 편이다. 현재 이 회사들은 미국 정부의 도움 없이 위기를 타개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 9·11 테러 때보다 더 심각한 ‘역대 최악’
“지금까지 본 탑승객 수 중 가장 적었어요” 항공사 승무원의 한숨
항공기 객실은 코로나19에 위험할까. 코로나19 위험이 사라지기 전까지 비행기를 타지 말아야 할까.

항공기 객실엔 외부로부터 헤파필터로 걸러낸 신선한 공기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순환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실내보다 안전한 환경이라고 한다.

보잉은 이러한 환경이 항공기 운항 중 지속되도록 항공기가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이라도 기내 전력을 이용해 끊임없이 환기하라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일부 미국 항공사들은 미국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메이오 클리닉과 같은 의료 기관이나 위생 업체 클로락스 등과 파트너십을 맺어 엄격한 위생 절차를 거친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승객보다 항공기 객실에서 오래 지내는 승무원들이 코로나19에 특별히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아메리칸항공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된 직원 중 승무원들의 비율은 21%였고 그중 14일 이상 출근하지 않은 사람이 20%라고 한다.

하지만 항공기 객실은 어떤 곳보다 적절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이 크다.

IATA가 지난 6월 전 세계 11개국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항공기 탑승 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코로나19 감염자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때문에 델타항공·사우스웨스트항공 등 일부 항공사들은 수익 감소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운데 좌석을 지속적으로 비우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우려는 미국 항공사들의 실적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났다. 미국 빅3 항공사의 2020년 2분기 손실이 매출보다 컸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감소했다. 아메리칸항공은 이번 2분기에 매출은 16억 달러(-86%, 전년 동기 대비)였지만 21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

같은 기간 델타항공은 매출 15억 달러(-88%), 손실 57억 달러, 유나이티드항공은 매출 15억 달러(-87%), 손실 16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운용하는 항공기가 보잉737로 대부분 동일해 다른 항공사보다 단위 비용이 적은 데다 여행 제한을 덜 받는 미국 국내선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에 비용이 그나마 덜 들어갔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항공도 이번 2분기에 매출 10억 달러(-83%), 손실 9억 달러를 기록해 타격이 컸다.

이 중 3분기 들어 매출을 반등시키려고 가장 애쓰는 항공사는 완전 자본 잠식에 빠져 있는 아메리칸항공이다. 노사 협약에 따라 승무원이나 조종사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월 75시간 기준의 급여가 나가기 때문에 기름값만 충당할 수 있다면 항공기를 띄우는 게 낫겠다는 의도다.

이 항공사는 다른 미국 항공사들보다 먼저 중간 좌석을 반드시 비우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커머스의 폭발적인 수요로 사람의 이동이 줄고 화물의 이동이 늘고 있어 가능하면 화물을 더 많이 실을 수 있는 항공기를 띄우는 것도 손실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 연방우체국(USPS)과 계약한 항공 우편, 신선식품 화물 등은 미국 항공사들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다.

과거에 항공 산업이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9·11 테러 때다. 사람들이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을 불안해했고 항공 산업이 다시 회복하는 데 약 5년 이상이 걸렸다. 미국 항공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은 2001년 52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2010년 37만 명을 기록할 때까지 계속 감소했다.

업계의 구조 조정과 전산화 등에 따라 종사자가 감소한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항공 수요에 대한 둔화가 가장 컸다.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계의 영향은 얼마나 갈까.

아마도 바이러스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예전처럼 여행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기간이 길어진다면 항공업계가 완전히 재편될 가능성도 낮지 않아 보인다.

ericjunghyuk.choi@gmail.com
“지금까지 본 탑승객 수 중 가장 적었어요” 항공사 승무원의 한숨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3호(2020.09.07 ~ 2020.09.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