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신용법, 형평성과 공정성 유지가 필요하다 [김상봉의 경제 돋보기]
[한경비즈니스 칼럼 =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정부는 소비자신용법안 제정을 두고 논의하고 있다. 연말까지 입법 예고, 관련 기관 심사 등 정부 입법 절차와 이해관계인을 대상으로 설명회나 공청회를 거쳐 내년 1분기 중 국회에 소비자신용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소비자신용법은 대출 계약, 회수나 추심의 이행, 채무 조정과 같은 변경, 소멸 시효 완성 등 대출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개인 채무자와 채권 금융회사 간 사적 채무 조정 활성화, 개인 채무자의 과도한 연체·추심 부담 완화, 채권 금융회사의 채무자 보호 책임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올해 초부터 계속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대표적인 부분이 채무조정교섭업 도입이다.


채무조정교섭업자는 채무 조정 요청서의 작성·제출 대행, 제출 후 채무 조정 조건의 협의 대행 등 채무 조정 과정에서 개인 채무자에게 조력하는 역할을 한다. 채무조정교섭업자가 개입해 연체 채무자의 채무를 조정하거나 채무 상환을 연기할 수 있게 하는 지원 제도는 성실한 상환자들에 비해 경제적 형평성에 위배되며 성실하게 상환하는 사람들에 비해 과도한 보호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채무조정교섭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할 여력이 있거나 받을 수 있는 연체 채무자와 그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연체 채무자 간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또 채무조정교섭업자 도입으로 금융권에서 계속 문제가 되던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문제를 부추기고 채무 불이행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 금융 혁신 시기에 채무 상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여러 경로를 통해 채무를 늘리려는 역선택이 발생할 수 있다. 채무 상환 여력이 떨어지거나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성실히 상환하려는 노력보다 채무조정교섭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해 상환 유예 기간을 늘리거나 채무를 탕감 받으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채무조정교섭업이 영리법인 운영되든 비영리법인으로 운영되든 운영에서 직접 비용이 수반되고 채무자나 전체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 즉, 채무조정교섭업 도입은 채무자에게 조정 수수료가 발생하게 되며 이로 인해 채무자들에게 이중 부담이 될 우려가 있다. 채무조정교섭업자의 개입으로 채무 회수 기간이 길어지거나 채무자의 회생 노력의 저하가 발생할 가능성에 따라 금융회사의 부실 채무 회수 및 처리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채무조정교섭업 도입은 연체 채무자에 대한 소비자 보호라는 사회적 편익은 크지 않고 사회적 비용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사회적 비용 증가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신용 점수나 신용 등급이 높은 차주와 거래하게 되고 기존 금융권 거래 가능 차주는 불법 사금융으로의 이동이 예상된다. 최근 법정 최고 금리 1%포인트 인하가 약 5.5%가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채무조정교섭업 도입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다. 선의의 정책이 오히려 서민을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게 된다.


지금도 신용 정보 회사가 채권 금융회사의 채무 조정 기준을 채무자에게 제시해 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채무조정교섭업은 사실상 수탁 추심업과 거의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수탁 추심업자가 채권 금융회사를 대리하는 반면에 채무조정교섭업자는 채무자를 대리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오히려 채권 추심 회사에 비해 채무조정교섭업자의 업무 범위가 한정적이다. 따라서 채권 추심 회사를 채권조정교섭업자와 분리해 채권 추심 회사가 채무 조정과 관련한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되면 채권 추심 단계에 채권조정교섭업자가 새롭게 개입하는 것으로 전체 채권 추심 관련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소비자신용법은 형평성과 공정성 위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5호(2020.09.19 ~ 2020.09.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