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제 1295호 (2020년 09월 21일)

장그래도 못 넘은 ‘2년의 벽’… 하루라도 더 일하면 무조건 정규직 전환?

기사입력 2020.09.21 오후 05:13

-2년 1개월 근무한 예비군 연대 참모 패소…“중간에 근로 계약 바뀌면 전환 대상 아니야”


[한경비즈니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2014년 방영된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는 결국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장그래는 ‘고졸 검정고시 출신 낙하산’이라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묵묵히 일했고 성과도 냈다. 하지만 ‘2년의 벽’을 넘지 못했다. 기간제법에 따라 사업주가 계약직 노동자를 2년 넘게 사용했을 경우 그를 정규직(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이 임금 지급 능력 부족 등의 이유로 비정규직들에게 2년째 되는 날 계약 만료를 통보한다.


하지만 근무 기간을 합산한 수치가 2년을 넘는다고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또 아니다. 2년 1개월 동안 기간제 노동자로 일했으면서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사례를 소개한다. 해당 노동자 A 씨는 “기간제법 위반인 만큼 부당 해고”라고 항변했지만 대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동일 장소에서 사실상 동일 업무를 수행했더라도 중간에 근로 계약이 변경됐다면 2년 넘게 ‘근로가 연속됐다’고 보기 힘들다는 취지다.



◆2년 1개월 근무했으니 정규직?


예비역 소령인 A 씨는 2013년 6월 20일 조선대와 한 달 짜리 계약직 임용 계약(제1계약)을 하고 직장예비군연대 참모로 일했다. 전임자가 갑작스럽게 사직하자 조선대가 A 씨를 급히 채용한 것이다.


1계약은 2013년 7월 19일 만료됐다. 조선대는 A 씨와의 계약과 별개로 같은 해 7월 1일 1년 계약직 공개 채용 공고를 냈다. A 씨는 1계약에 따라 근무하던 중 이 같은 공고에 응했고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됐다. 이에 조선대는 A 씨와 같은 달 22일 1년짜리 계약직 임용 계약(제2계약)을 했다.


2014년 7월 근무를 1년 더 연장하는 계약(제3계약)을 재차 체결했다. 즉 A 씨는 조선대 예비군연대 참모로 2년 1개월 동안 일한 셈이다. 하지만 제3계약이 만료되는 2015년 7월 조선대는 A 씨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A 씨는 “(기간제법에 규정된 2년을 초과하는) 2년 1개월 동안 근무했음에도 조선대가 재계약 거부 사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등 갱신기대권을 침해했다”며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하지만 전남노동위에 이어 중앙노동위도 그의 구제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A 씨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동일한 조건의 근로 계약을 반복해 체결한 경우에는 갱신 또는 반복된 계약 기간을 합산해 계속 근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 대법원의 판례다. 하급심은 1~3계약이 사실상 동일한 조건의 근로 계약이라고 봤다.


1심(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원고는 각 계약 기간을 통틀어 동일한 근무 장소에서 모두 예비군 훈련 및 통제 관련 업무를 수행했고 새로운 계약이 체결된 경우에도 종전과 업무 내용이 달라지지 않았다”며 “1계약 종료 후 2계약이 개시되기 전에 이틀간의 계약 공백 기간이 존재하지만 그 기간이 매우 짧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해당했던 만큼 실질적으로 공백 기간이 존재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A 씨의 경우 2년을 초과해 기간제 노동자로 사용할 수 있는 예외에 해당한다는 조선대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근무 기간이 2년을 넘는 기간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하지만 기간제법 시행령에선 ‘국방부 장관이 인정하는 군사적·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갖고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 등은 예외적으로 2년 넘게 기간제 노동자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국방부에 문의한 결과 예비군연대 참모 직위는 예외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회신을 한 바 있다”며 “원고는 3계약의 만료일인 2015년 7월 21일 이전에 ‘정함이 없는 노동자(정규직)’가 됐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항소심(서울고등법원)도 1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원심 뒤집은 대법원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기간제 근로 계약의 종료와 반복 또는 갱신 과정에서 이뤄진 절차나 그 경위 등을 종합할 때 ‘새로운 근로 관계’가 형성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기간제 노동자의 계속된 근로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에 근로 관계가 단절됐다고 봐야 한다”는 또 다른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조선대 인사 세칙에 따르면 기간제 노동자 채용은 공개 채용을 원칙으로 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 기간제 노동자의 근로 계약은 1년을 원칙으로 하며 1회에 한정해 계약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또한 조선대는 A 씨와 1계약을 체결할 당시 ‘계약 기간 중일지라도 정규직이 선발되면 계약이 자동 종료된다’고 명시했다.
대법원은 이를 근거로 “조선대와 A 씨는 1계약이 전임자의 중도 사직이라는 우연한 사정으로 긴급하게 임시로 체결된 것이고 공개 채용에 따른 계약 관계(2~3계약)는 최대 기간을 총 2년으로 하기로 합의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2013년 7월 2계약이 체결됨으로써 A 씨와 조선대 사이에 기존 근로 관계의 단순한 반복 또는 갱신이 아닌 새로운 근로 관계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며 “(1계약의 1개월을 뺄 경우) A 씨가 계속 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않으므로 A 씨를 정규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4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생’. 대기업 인턴인 주인공 장그래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2년 계약 만료 뒤 해고된다./tvN

2014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생’. 대기업 인턴인 주인공 장그래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2년 계약 만료 뒤 해고된다./tvN



◆매년 급증하는 노동분쟁…노동법원 필요할까?


부당 해고 등 노동 관련 분쟁은 매년 급증하고 있는 데다 사실상 ‘5심제’로 운영돼 장기간의 다툼이 불가피하다. 법조계에선 신속한 분쟁 해결을 위해 ‘노동 사건 전문 법원(노동법원)’ 설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노동 분쟁 해결 절차는 크게 행정 구제(노동위원회)와 소송(행정법원) 2단계로 나뉜다.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조선대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한 A 씨의 사례처럼 먼저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을 거쳐야 한다. 사용자로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휴직·징계 등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노동자들은 구제 신청을 낼 수 있다.


중앙노동위의 재심 판정에 불복하는 쪽은 재심판정서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법원에 행정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대법원 단계까지 거친다고 가정할 때 앞서 제기된 지방·중앙노동위 절차까지 포함한다면 사실상 5번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노동 분쟁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당 해고 등 구제 신청 건수는 1만4323건으로 2018년(1만2041건) 대비 18.9% 증가했다. 2017년 이후 매년 증가세다. 노동위 단계에서 분쟁이 해결되지 못해 행정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15~2018년 동안 400건대에 불과하던 부당 해고 등 관련 행정 소송 제기 건수는 지난해 639건으로 급증했다.


법조계에선 현재 노동 분쟁 해결 절차가 이원화돼 사실상 5심제를 겪어야 하는 만큼 노동자의 신속한 권리 구제를 위해 노동법원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노동 사건을 둘러싼 법적 분쟁 해결이 노동법원으로 창구가 일원화되면 신속하고 전문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미 절대 다수의 노동 사건은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 단계에서 해결되고 소송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5% 내외인 만큼 노동법원 설치가 불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노동자에게는 법원보다 노동위가 보다 간편하고 저비용으로 신속하게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창구라는 지적이다. twopeopl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5호(2020.09.19 ~ 2020.09.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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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9-22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