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일본 총리 ‘등용문’ 된 관방장관이 이끄는 조직…광범위한 업무 수행

일본 관료도 설명에 진땀 흘리는 ‘내관방’ [글로벌 현장]
[한경비즈니스 칼럼 = 정영효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지난 9월 16일 스가 요시히데 전 관방장관이 제99대 총리에 취임했다. 덩달아 일본 총리의 등용문인 내각관방장관과 관방장관이 이끄는 ‘내각관방’이라는 조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가에서 관방장관은 일본 총리로 가는 필수 코스로 통한다. 헤이세이(1989년) 시대 이후 관방장관 출신으로 총리에 오른 인물은 오부치 게이조(재임 기간 1998~2000년)와 후쿠다 야스오(2007~2008년), 아베 신조, 스가 총리까지 4명이다.

관방장관 출신 총리가 많은 이유는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저녁 2차례 총리를 대신해 정례 기자 회견을 하는 덕분에 국민들에게 얼굴을 알릴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기용되며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정부의 사장실’로 정책 실현의 주역할
스가 총리는 2012년 12월 아베 정권의 출범과 함께 총리관저의 이인자인 관방장관에 임명된 뒤 7년 8개월 동안 재임한 역대 최장수 관방장관 기록을 갖고 있다. 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그가 가진 기자 회견은 3213회에 달한다. 상원인 참의원(245명)과 하원인 중의원(465명)을 합해 총 710명인 국회의원 가운데 총리를 제외하면 관방장관 만큼 이름을 알리기 좋은 자리가 없는 셈이다.

새 일왕이 등극하면서 함께 바뀌는 새 연호를 처음 발표하는 사람도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이다. 스가 총리가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은 것도 2019년 4월 나루히토 일왕의 새 연호 ‘레이와’가 쓰인 액자를 들어 올리면서였다. 이때부터 젊은 층들은 그를 ‘레이와 오지상(레이와 아저씨)’으로 부르며 사인을 요청한다. 30년 전인 1989년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헤이세이’를 공표했던 오부치 게이조 관방장관도 총리가 됐다. 이처럼 관방장관은 흔히 총리 관저의 2인자이자 정부 대변인으로 묘사되면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관방장관이 이끄는 내각관방이라는 정부 조직은 일본 국회의원과 관료조차 어떤 조직인지 설명하는 데 애를 먹곤 한다. 요미우리신문은 내각관방을 “‘정부의 사장실’로서 정권의 주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핵심 역할을 하는 정부 조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관방장관과 관방부장관에 이어 내각관방의 ‘넘버3’인 부장관보 산하에는 현재 39개의 분실이 설치돼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대책본부사무국, 일하는방식개혁실현추진실, 1억총활약추진실, 원자력발전소사고에 의한 경제피해대응실, 정보통신기술종합전략실, 전세대형사회보장검토실 등 하나 같이 아베 정권의 간판 정책들이다. 업무가 복수의 정부 부처 소관으로 나뉘어 있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손대지 못했던 정책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나카타초(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이 모여 있는 정치 중심가)와 가스미가세키(일본 정부 부처가 몰려 있는 행정 중심가)에서는 부장관보실을 ‘호시츠(보실)’라고 부른다. 총리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싶어 하는 정책을 정부 부처의 엉덩이를 두드려 진행하게 만들고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보실의 역할이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사장을 지원해 신사업을 선정하고 사업부 간 역할 조정을 지휘하는 사장실(전략기획실)과 비슷한 역할이다. 내정과 외정을 담당하는 2명의 관방부장관보를 중심으로 심의관·참사관 등 약 730명으로 구성돼 있다.


작년 가을 태풍으로 발생한 대량의 쓰레기를 처리할 때도 내각관방이 역할을 발휘했다. 재해 폐쇄물은 환경성, 토사는 국토교통성, 볏짚은 농림수산성이 소관 부처가 나뉘어 있어 서로 업무를 떠넘기기 급급하던 상황. 내각관방은 볏집도 재해 폐쇄물로 취급하도록 업무를 조정해 문제를 해결했다.


보실 외에 자연재해나 북한의 도발 등에 대비해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부장관보가 이끄는 사태실, 외교·안전보장정책의 사령탑인 국가안전보장국(NSS), 국내외 정부를 수집·분석하는 내각정보조사실, 각의(국무회의)의 운영과 왕위 계승의 의견 수렴 및 지원을 담당하는 내각총무관실 등도 모두 내각관방 소관이다. 아베 전 총리를 곤혹스럽게 했던 ‘벚꽃을 보는 모임’도 내각관방 총무관실이 담당한다. 일본 국회의원과 관료들도 내각관방을 한마디로 정의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업무 범위가 광대한 것 때문이기도 하다.

◆내각관방 주무기는 ‘종합 조정 권한’

내각관방에 순혈 직원은 거의 없다. 대부분 각 정부 부처에서 1~2년 임기로 파견된 관료들로 채워져 있다. 한국의 청와대와 같다. 내각관방의 주무기는 ‘종합 조정 권한’이다.

‘조정’이라면 동등한 지위에서 협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총리의 의향을 받들어 각 부처에 ‘시키는 대로 해’라고 압력을 가하는 작업이다. 종합 조정 권한의 작동 여부는 총리의 힘에 달렸다. 전직 내각관방 부장관보가 “총리가 곧 바뀔 것 같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처럼 총리의 정권 장악력이 떨어지면 정부 부처도 내각관방의 종합 조정에 따르지 않는다. 총리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민주당 정권(2009년 9월~2012년 12월) 시절에는 종합 조정을 앞두고 내각관방 관료에게 출신성이 “우리 부처에게 유리한 쪽으로 조정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아”라고 압력을 넣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아베 전 총리가 역대 최장수 일본 총리에 오르면서 내각관방의 힘도 유례없이 강해졌다. ‘정책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총리 관저에 불려 들어온 각 정부 부처 국장들이 “총리께서 바라십니다”라며 내각관방 간부가 전달하는 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베 전 총리가 2014년 내각관방 산하에 내각인사국을 설치해 정부 부처 간부 인사를 장악한 이후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아베 전 총리의 장기 집권으로 ‘관방 관료’, ‘관저 관료’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내각관방에서 2년 이상 근무하면서 소속 부처보다 총리에게 더 충성하는 관료를 일컫는 신조어다.

내각관방과 혼동하기 쉬운 조직이 내각부다. 조직명이 비슷하고 두 조직 다 총리 관저 옆의 내각부청사와 중앙합동청사 8호관에 있는데다 종합 조정권도 갖고 있다. 내각부는 현재 일본 행정 체계인 ‘1부12성청’의 ‘1부’를 차지하는 반면 내각관방은 성청에 포함되지 않는다. 내각관방이 총리를 직접 보좌해 종합 전략을 짜는 행정 조직이라면 내각부는 정부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각 성청의 시책을 통일할 필요가 있는 과제를 종합 조정하는 정부 부처다.

내각부는 ‘경제재정자문회의’와 ‘종합과학기술·이노베이션회의’ 등을 통해 정부의 큰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일본 관가에서 ‘지혜의 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2001년 성청 재편 당시 총리부와 경제기획청 등을 통합해 출범했다. 1부12성청의 하나지만 성청 사이의 종합 조정을 담당하기 때문에 다른 성청보다 한 단계 위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hug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5호(2020.09.19 ~ 2020.09.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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