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기존 완성차 강자들, ‘반값 전기차’ 선언한 엘론 머스크에게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도전장
3년 뒤 쏘나타 값으로 테슬라 탄다…불붙은 전기차 가격 경쟁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월 ‘배터리 데이’를 통해 ‘반값 전기차’를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차의 쏘나타와 비슷한 가격인 2만5000달러(약 2900만원)의 보급형 전기차를 3년 내 출시한다는 목표다.

테슬라가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한 전기차 출시를 예고하면서 글로벌 완성차업계는 물론 배터리업계까지 요동치고 있다. 당초 우려를 불러일으킨 배터리 내재화와 미래 전기차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만한 차세대 기술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향후 전기차 관련 시장의 변화를 가늠하는 새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다.
3년 뒤 쏘나타 값으로 테슬라 탄다…불붙은 전기차 가격 경쟁

◆ 새로운 배터리 폼팩터로 원가 56% 절감


“신형 배터리 셀은 기존 테슬라 전기차 배터리와 비교해 에너지 용량 5배, 출력 6배, 주행 가능 거리를 16% 늘릴 것.”

테슬라 배터리 데이의 핵심 내용은 배터리 가격 절감을 통해 30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보급형 전기차를 2023년 출시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을 현실화하려면 배터리 원가 절감이 가장 중요하다. 전기차 제조 단가에서 배터리 가격이 차지하는 비율은 30~40%에 달한다. 결국 배터리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저가의 전기차 출시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날 테슬라는 배터리 원가 절감 방안의 일환인 신형 4680 배터리를 공개했다. 테슬라에 따르면 4680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보다 5배의 용량과 6배의 출력을 갖는다. 이에 따라 주행 거리는 16% 증가하고 kWh당 비용은 14% 절감된다는 설명이다

셀-모듈-팩의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모듈 단계를 생략해 에너지 밀도를 더 높이면서 생산 원가는 낮추는 CTP(Cell-to-Pack) 기술과 실리콘 음극재 등 기술 적용 계획도 밝혔다. 기존의 배터리 업체들과의 거래를 늘려 가면서도 2022년에는 100Gwh, 2030년에는 3Twh의 규모의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춘다는 방침이다.

새로운 배터리 기술을 제시하기보다 기존 배터리 공정의 생산성을 개선하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배터리 원가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테슬라의 구상을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선전 포고로 받아들인 업계는 배터리 내재화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테슬라가 자체 배터리 개발 계획인 ‘로드러너(Roadrunner)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기 때문에 시장에선 테슬라가 머지않아 배터리 자체 생산에 나설 것으로 보고 한국 배터리 3사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배터리 데이 하루 전날 머스크 CEO는 트위터를 통해 “파나소닉·LG·CATL의 배터리 셀 구매를 줄이는 게 아니라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2022년 이후 배터리 공급 부족을 예상한다며 배터리 자체 생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자체 배터리 개발을 지속하면서 기존 배터리 협력사와 협력을 강화해 향후 배터리 공급 부족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배터리 셀 제조업체 맥스웰테크놀로지스와 배터리 장비 업체 하이바시스템즈를 인수하며 자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향후 예상되는 배터리 수급난을 해소하고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자동차 배터리 모듈과 팩을 조립해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에 공급하는 독일 ATW 오토메이션 인수를 진행하며 세계 최대 광산 업체인 BHP와 니켈 공급 계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년 뒤 쏘나타 값으로 테슬라 탄다…불붙은 전기차 가격 경쟁


◆ ‘K배터리 동맹’으로 테슬라 맹추격


테슬라가 배터리 비용을 56% 낮춰 반값 전기차 대중화에 속도를 내기로 하면서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가격 전망에도 관심이 쏠린다. 테슬라와 가격 경쟁을 하려면 가격 인하가 필수적이다.

배터리 단가가 낮아지면서 이와 함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 기반의 모델 생산이 본격화돼야 가격 인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용 플랫폼을 적용하면 현재보다 성능이 뛰어난 전기차를 만들 수 있고 부품 공용화를 통한 원가 절감 등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 기반의 첫 차를 내놓은 폭스바겐을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현대차그룹 등은 내년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신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차는 E-GMP를 적용한 신형 전기차 NE(코드명)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적용되는 순수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IONIQ)’도 론칭했다.
3년 뒤 쏘나타 값으로 테슬라 탄다…불붙은 전기차 가격 경쟁
폭스바겐의 ID.3(약 5800만원)를 비롯해 신차들의 가격은 5000만원대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테슬라는 이미 가격 경쟁에 돌입했다. 10월부터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델3의 가격을 약 10% 인하해 중국산의 판매 시작가는 24만9900위안(약 4280만원)으로 알려졌다.

테슬라가 가격을 낮춘 모델3에 어떤 배터리를 사용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업계는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CATL이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채택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테슬라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는 파나소닉과 LG화학이 만든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사용돼 왔다. 테슬라를 추격하고 있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가격 파괴 전략을 경쟁적으로 펼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기존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플랫폼 기반으로 출시되는 전기차는 모두 테슬라 모델3를 경쟁 모델로 하고 있다”며 “완성차의 신차 사이클이 5~6년 주기라는 것을 감안할 때 테슬라와 같이 치밀한 디자인, 재료와 제조 공정의 혁신이 없다면 가격 경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대차 등 기존 완성차 업체는 3년 내 2만5000달러에 맞춰 원가 구조 재설계가 필요해진 상황이고 가격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다양한 혁신과 협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전기차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글로벌 업체는 대부분 배터리 회사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하고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포착됐다.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배터리 3사인 삼성·LG·SK가 동맹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과 이른바 ‘K배터리 회동’을 가지고 협업을 시작한 것이 고무적이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안정적인 배터리 확보가 중요한 만큼 공급처 다변화에 나선 것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수소전기차 연간 판매 대수를 11만 대로 늘리고 2030년까지 연간 50만 대 규모의 수소전기차 생산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자동차 산업에 대형 메기가 되면서 한국의 기술 혁신이 촉진되고 전기차 생태계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8호(2020.10.12 ~ 2020.10.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