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 기존 이론 통하지 않는 ‘뉴 노멀’ 시대…대통령·총리의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 중요해져
트럼프 대통령 코로나19 감염 사례로 본 경제·증시의 ‘최고통수권자 리스크’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한경비즈니스 칼럼=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코로나19에 전염되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46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2차 팬데믹(세계적 유행) 여부 그리고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


특정국 경제와 증시가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원내각제는 총리)에 의해 좌우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금융 위기 이후 종전의 이론과 관행이 통하지 않는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면서 최고통수권자의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 결정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코로나19 감염 사례로 본 경제·증시의 ‘최고통수권자 리스크’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대통령·총리가 제 역할 못하면 경제 추락

최고통수권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경제와 증시가 망가진 국가는 의외로 많다. 선진국에서는 프랑수아 울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다. 4년 전 국가 기밀 누설, 역외 탈세 등이 잇달아 겹치면서 국민 지지도가 4%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다. 낮은 국민 지지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해 4월 예정됐던 대통령 선거에도 나가지 못했다.


연일 탄핵 시위에 쫓겼던 당시 울랑드 대통령은 테러·난민·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나라 안팎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경제 현안을 제때 처리되지 못함에 따라 성장률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다시 10%대로 치솟았다.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의 금융 완화 정책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였던 다른 유로 회원국과는 대조가 됐다.


대통령이 부패를 저지르는 그 자체가 나쁜 일이지만 부패를 저질러 놓고 전·현직 대통령 지지층 간에 누가 많고 적으냐를 놓고 지금도 싸우는 국가가 있다. 바로 브라질이다. 전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국영 에너지 회사인 페트로브라스의 뇌물 사건에 휘말리면서 2016년 8월 말 탄핵 당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2014년 상반기 이후 국제 유가 추락과 심각한 부패 문제 등이 겹치면서 브라질 경제는 2015년 성장률이 마이너스 3.8%까지 떨어졌다. 그 이후 유가 회복과 호세프 탄핵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이너스 성장 폭이 둔화될 조짐을 보였지만 ‘재둔화(double dip)’ 국면에 빠지면서 지금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너무 많이 퍼 주다가 탄핵에 몰리는 대통령도 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라 대통령이다. ‘장기 집권’이라는 오로지 개인 목적만을 위한 정치 포퓰리즘적인 재정 지출로 국고가 바닥난 지 오래됐다. 설상가상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사 노력이 1970년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경제가 파탄됐다.


국제 유가가 추락하기 시작한 2014년 1분기 이후 베네수엘라 경제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한때 200%에 근접할 정도로 ‘살인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더 이상 생활고에 참지 못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한편으로는 마두라 탄핵 시위에 연일 가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경을 탈출해 조국을 등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처럼 비선 조직에 의해 경제가 망가진 국가도 있다. 2009년 취임한 제이콥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인도의 굽타그룹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국정 운영의 윔블던 현상(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자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인이 우승하는 횟수가 많은 데서 유래)’이 발생한 셈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괜찮아 보였지만 비선 조직인 인도 굽타그룹의 국부 유출로 남아공 경제는 ‘속 빈 강정’이 됐다. ‘종속 이론’을 태동시켰던 1970년대 중남미 경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경제 주권을 되찾기 위해 시작된 주마 대통령 탄핵 시위가 범국민 운동으로 확대되면서 쫓겨났다.


당초 기대와 달리 국가 지도자 역할을 잘해 경제도 살리고 집권 후반기에 자신의 지지도가 더 올라간 대통령도 있다. 재정 위기·난민·테러 등 수많은 유럽의 난제를 총대를 메고 풀어 가고 있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가정을 위해 직접 장을 보는 일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지지도가 더 견고해졌다. 경제도 구인난을 겪을 정도로 탄탄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높은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가화만사성 국정 운영’으로, 전임자 시절에 경제 위기에 몰렸던 아이슬란드의 구르마 요하네슨 대통령은 연봉 인상을 단칼에 거절해 국민의 지지도가 높아졌다. 2016년 당선됐던 트럼프 대통령은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해 미국 경제가 더 견고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오히려 받은 연봉의 탈세 문제로 대선을 앞두고 곤욕을 치르고 있다.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인 코로나19 사태가 국제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최고통수권자의 역할에 따라 경제와 증시가 좌우되는 정도는 더 심해졌다. 심지어 해당국 국민의 보건과 자신의 운명까지 좌우됐다. 전염 통제, 경제 활동 재개 시기 결정, 긴급 경기 대책 추진 등이 통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코로나19 감염 사례로 본 경제·증시의 ‘최고통수권자 리스크’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트럼프 대통령 코로나19 감염 사례로 본 경제·증시의 ‘최고통수권자 리스크’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트럼프 코로나19 감염, 10월의 이변 될까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축출설’까지 나돌았던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발병 진원지’라는 오명을 극복하고 2차 전염 통제, 경제 활동 재개, 긴급 유동성 공급 등을 과감하게 결정해 약화됐던 정치적 입지가 만회됐다. 지난 1분기 마이너스 6.8%까지 추락했던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도 2분기에는 3.2%로 ‘V’자형 반등에 성공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방역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코로나19 대응을 잘한 최고통수권자로 분류된다. 올해 성장률이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1위로 예측될 정도로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잘 관리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내년 성장률이 34위로 떨어지고 2차 팬데믹 우려를 극복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다.


최고통수권자로 처음 감염된 영국의 보리스 총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 2분기 성장률(전 분기 대비)이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마이너스 20.4%를 기록했다. 브렉시트와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등의 대내외 당면 현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인증 사진을 찍을 정도로 만용을 부렸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탄핵에 몰리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잔자 수와 시망자 수는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경제는 ‘파탄’이 우려될 정도다. 리우데자네이루 등 주요 도시 거리에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전 대통령의 얼굴 사진이 재등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미숙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국민 방역의 책임을 지고 있는 최고통수권자가 뒤늦게 마스크를 착용한 사례나 코로나19 감염 이후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뒷받침해 준다. 경제도 지난 2분기 성장률(전 분기 대비 연율)이 1947년 상무부가 국민소득 통계를 맡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마이너스 31.4%를 기록할 만큼 추락했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1차 TV 토론까지 뒤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코로나19 감염이 2016년 대선 당시처럼 10월의 이변, 즉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가 될지 모른다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의 여론 조사 결과가 더 벌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와 증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바이든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시각이 늘고 있어 최고통수권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8호(2020.10.12 ~ 2020.10.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