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국가마다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공공 임대 주택과 비슷한 주거 형태를 유럽에서는 흔히 ‘사회주택(social housing)’이라고 부르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015년)에 따르면 이 세 개 국가의 사회 주택 비율(전체 주택 수 대비)은 모두 20%가 넘는다.
수치로만 따졌을 때 국민 10명 중 2명 이상이 임대료가 저렴한 사회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 국가들의 사회주택 역사는 모두 100여 년이 넘었을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도입 배경은 모두 비슷하다.
1900년대 초 산업화를 거치며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주택이 부족해졌고 노동자들의 주거 안정화를 목적으로 사회주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회주택은 점차 보편적인 주거 형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 나갔는데 그 핵심 비결은 바로 사회주택을 ‘누구나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 나간 것이다.
한국의 공공 임대 주택은 눈으로 봐도 확연하게 티가 나지만 이 국가들의 사회주택은 다르다. 겉모습만 놓고 보면 과연 그 건물이 사회주택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
◆사회주택이 ‘랜드마크’ 된 오스트리아 빈
유명 건축가가 건설에 직접 참여한 사회주택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도심의 랜드마크가 된 사례도 흔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난 외관을 가진 사회주택들이 많다.
게다가 사회주택들이 교통이 편하고 땅값이 비싼 도심 요지에 자리한 것도 특징이다. 이렇듯 사회주택을 누구나 살고 싶을 만한 주거 공간으로 조성하고 낮은 임대료를 책정해 저소득층이 ‘주거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은 유럽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회주택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머서(Mercer)가 매년 발표하는 전 세계 살기 좋은 도시 순위 발표에서 오스트리아 빈은 지난해까지 10년째 1위를 기록 중인데 사회주택을 앞세워 뛰어난 주거 복지를 구현한 것이 이 같은 순위를 기록한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에서 공공 임대 주택은 아파트 단지 내 후미진 곳에 있거나 땅값이 싼 외곽 지역에 들어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도심의 요지라고 할 수 있는 거리 곳곳에 사회주택이 들어서 있다. 저소득층이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도 교통의 요지에 살 수 있는 셈이다.
사회주택이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만큼 외관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훈대르트바서 하우스’를 예로 들 수 있다. 관광 명소이자 빈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이곳은 알고 보면 사회주택이다.
이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다. 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가 직접 참여했는데 이런 사례는 빈에서 그리 특별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사회주택 설계에 참여하는 것이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 일로 여겨진다. 이렇듯 사회주택이 빼어난 외관과 입지를 갖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거주를 희망하고 있고 이를 바라보는 편견은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사회주택을 제공하는 방식도 돋보인다. 정부와 비영리 기업이 이른바 ‘비영리 주택법’에 근거해 서로 협력하며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사회주택의 핵심이 낮은 임대료인 만큼 비영리 주택법은 건축에 들어간 비용만큼만 집세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다.
주택을 짓는데 들어가는 건설비용과 부지 매입비용 등을 계산하고 이 비용을 갚기 위해 약 30~40년 동안 얼마나 돈이 들어가는지 고려해 집세를 정한다. 이 경우 시장 원리에 따른 주택 공급 방식에 비해 집세가 30% 정도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건축에 필요한 비용을 회수한 뒤에는 발생하는 수익을 다시 사회주택 건설에 재투자해야 하는 제도도 있다. 이 과정에서 시 정부는 매년 비영리 기업들에 그간 저렴한 값에 매입해 온 토지와 기금 등을 제공하며 사업을 계속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소셜 믹스’에 중점 둔 네덜란드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네덜란드 역시 사회주택을 눈으로 구별하는 게 어렵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수도 암스테드담은 주요 거리 곳곳에 사회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일반 주택에 비해 오히려 일부 사회주택이 더 유려한 디자인을 뽐내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은 민간에서 비영리로 운영하는 ‘주택협회’가 중심이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약 380개의 주택협회가 있는데 이들이 그간 공급한 사회주택이 전체 주택 물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율 높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사회주택을 짓는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임대료를 낮게 책정하는데 임대 수익의 약 25%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도 특징이다.
네덜란드 주택협회가 사회주택을 공급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바로 ‘소셜 믹스’다. 한국으로 예를 들면 일반 거주자와 임대 거주자가 서로 잘 융합해 한 아파트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 믹스를 실현하기 위해 네덜란드는 사회주택을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공급 대상으로 삼고 이를 제공하는 데 주력해 왔다.
예컨대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은 건설비용이나 개인의 소득 등 여러 항목을 종합해 최종 임대료를 결정한다. 그런데 정부는 사회주택 월 임대 상한선을 약 700유로(약 95만원)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소 금액이 큰 것 아니냐고 느낄 수 있는데 여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정도 임대료를 낼 수 있는 낼 수 있는 계층, 즉 중산층까지 유입시켜 사회주택에 좋지 않은 편견을 깨고 다양한 소득 계층의 사람들이 혼합돼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통해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회주택을 공급할 수 있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집을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부동산이 아닌 주택협회에 간다. 여기에서 집을 구하지 못하면 민간 부동산에서 살 집을 알아보는 것이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최근에는 주택협회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땅이 점차 줄고 있고 이에 따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을 공급하도록 유도하는 규제들이 하나둘 마련되는 상황이다.
사회주택 비율이 약 20%에 달하는 덴마크는 소득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주거를 필요로 하는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사회주택 분류를 가족·노인·청년 등 3가지 유형으로 마련한 이유다.
덴마크도 비영리 단체들이 주축이 돼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공적 대출, 세입자들의 초기 임대료, 은행의 장기 대출을 동원해 건설비를 충당하고 이를 토대로 낮은 임대료를 산출해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한다. 가장 큰 특징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 번 사회주택으로 지어진 건축물은 영원히 사회주택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코펜하겐 시 정부 관계자는 “일부 유럽 국가들은 기존에 사회주택의 목적으로 사용되던 건물의 용도가 상업용 등으로 변경되기도 하는데 덴마크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며 “거주자가 원할 때까지 사회주택에서 안정적인 주거를 이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회주택에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서로 소통한다”며 “이에 따라 지역 사회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이나 소통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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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8호(2020.10.12 ~ 2020.10.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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