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형로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기후 위기 시대, 지속 가능성 생각한다면 친환경 농산물 소비해야죠”
[한경비즈니스=김은아 SRT매거진 기자] 2020년 노벨 평화상은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돌아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 혼란에 대응하는 최고의 백신은 식량”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질문은 ‘무엇을 먹을까’가 아닐까. 더구나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인간과 지구가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먹거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주형로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친환경 농산물에서 답을 찾는다. 평생 친환경 농업 발전을 위해 힘써 온 그는 전국 최초로 친환경 벼 오리 농법, 메기 농법을 고안하고 논두렁 물막이 판을 보급한 바 있다. 지난 1월 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안정적인 친환경 농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근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주일에 하루 한 끼는 친환경 농산물로 차린 식사를 하자는 ‘에코-프라이데이’ 캠페인, 학교 급식에 납품되던 친환경 농산물을 활용한 꾸러미 등이 그가 중점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다. 그는 친환경 농산물 소비는 식생활을 넘어선 인류 생존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미뤄지면서 학교 급식에 납품되던 친환경 농산물이 납품되지 못했다. 농가와 유통 업체 모두 난항을 겪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친환경 농산물 섭취를 늘리기 위해 학교 유통을 확대해 왔던 터라 더욱 타격이 컸다. 위원회와 시민 단체가 급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를 가정에 지급하는 방식을 찾아냈다. 다행히 서울시와 경기도가 이런 취지에 공감하고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여 준 덕분에 다른 지역의 지자체에도 확대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꾸러미 사업을 지속할 계획이 있나.
“위원회·교육부·학부모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 같다. 농가도 농가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먹이는 것은 사회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다. 임산부에게 친환경 농산물을 제공하는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사업도 확대해야 한다. 두 사업 모두 사회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일이다.”
-현재 추진 중인 ‘에코-프라이데이’ 캠페인의 취지는 무엇인가.
“1주일 중 하루, 금요일 한 끼는 친환경 농산물로 차린 식사를 해 보자는 캠페인이다. 그 자체로 획기적인 소비 증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다음 단계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유기 농산물과 친숙해지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해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범위를 늘릴 수 있도록 현재 학교·공기업·병원 등이 참여하고 있는데 점차 지역 단위 운동으로 확대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대학들의 참여도 기다리고 있다. 대학교 내 식당은 저렴한 가격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수입 농산물 사용 비율이 높다. 농민과의 직접 계약을 통하면 금액을 절감하면서도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할 수 있다.”
-일반 소비자가 친환경 농산물 대신 관행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도 가격 부담 때문일 경우가 많다.
“친환경 농업은 화학 비료 대신 퇴비를 사용하는데 가격 차이가 10배 정도다. 또 기계 대신 사람이 직접 뿌려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도 발생한다. 그런데 소비자들도 가격을 다르게 계산할 필요가 있다. 쌀로 예를 들어 보자. 최고급 유기농 쌀로 한 끼를 차린다고 했을 때 원가는 300원에 불과하다. 커피 구입에는 고민하지 않고 그 열 배를 지출하지 않나.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식사에 300원 정도를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친환경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있나.
“화학 비료가 아니라 퇴비를 계속 사용하면 지력(地力)이 높아진다. 땅이 건강해지면 자연히 수확량도 늘어나고 가격도 저렴해진다. 그 시점에만 다다르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도 ‘공동 생산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책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친환경 농업은 어느 단계인가.
“한국 유기 농업의 역사는 4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 아직도 뉴스에 가격 폭락으로 농산물 시장에서 배추 몇 백 톤을 버렸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나. 창피한 일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계약 재배가 이뤄져야 한다. 재배 단계에서 소비자와 생산자가 계약함으로써 수급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농민이 편안한 마음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작물과 사람의 관계는 생명체와 생명체의 만남이다. 이 만남이 즐거울 때 가장 품질이 좋은 농작물이 나온다. 지금까지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가 재고 농산물을 처리하는 일을 맡아 왔는데 앞으로는 근본적인 틀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계약 재배가 현실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가.
“생산자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경작하는 땅에 어떤 작물을 심을 것인지 생산 시작 단계부터 통계화해야 한다. 씨를 뿌리는 단계에서 개체 파악이 되면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생산을 통제할 수 있다. 지금은 다 키워 수확한 다음에야 생산량을 파악하기 때문에 물적으로나 심적으로 고통이 크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니 기본 시스템만 마련한다면 금방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성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해 봤는데 생산자가 안정되고 농민들도 마음 놓고 경작에 집중할 수 있었다. 국가적으로 실시한다면 상당히 결과가 좋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8월 친환경 농어업 육성 및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 친환경 농어업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친환경 농어업의 정의가 ‘생물의 다양성 증진, 토양에서의 생물적 순환과 활동 촉진, 농어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해 건강한 환경에서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으로 변경됐다. 기존(합성 농약, 화학 비료, 항생제·항균제 등 화학 자재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을 최소화하고 농어업 부산물의 재활용 등을 통해 생태계와 환경을 유지·보전하면서 안전한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산업)과 비교하면 ‘생물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포함됐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농업이 가지고 있는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친환경 농업은 단지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태계에 일조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기후 위기의 해법으로 친환경 농산물 섭취를 꼽았다.
“21세기는 미생물의 시대다. 미생물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인간의 생사가 달려 있다. 코로나19도 미생물 생태계 균형이 깨졌을 때 발생한 바이러스 아닌가. 그 균형을 맞추려면 친환경 농법이 생태계 순환을 이끌고 생물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 흙 속의 미생물이 살아나면서 식물이 살아나고 이를 섭취하는 동물, 그 동식물을 먹는 인간이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이 순환 안에서는 분변도 폐기물이 아니라 자원이 된다. 하지만 화학 비료와 농약은 이 사슬을 가로막는다. 온실가스와 탄소 배출로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una@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0호(2020.10.26 ~ 2020.11.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