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배터리에 미래 건 10대 그룹]
-천보는 세계 최초로 전해액 첨가제 양산
-‘클린 룸’ 설비 업체들도 전기차 열풍 반사 이익
‘NCA 세계 2위’ 에코프로·‘동박 강자’ 일진…K-배터리의 숨은 강자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대기업들이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을 새 먹거리로 삼으면서 관련 소재 기업들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양극재를 만드는 에코프로비엠, 동박을 제조하는 일진머티리얼즈, 전해질을 생산하는 천보가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의 제품은 ‘전기차 배터리(2차전지)’ 필수 소재로 꼽힌다.

기업들의 배터리 관련 시설 투자가 늘면서 신성이엔지 등 ‘클린 룸’ 설비 업체들도 반사 이익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에코프로비엠, 올해 영업이익 62% 증가 전망

금융 정보 제공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0월 21일 기준 에코프로비엠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전년 대비 61.94% 증가한 601억원이다. 매출은 42.54% 증가한 8782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많은 기업이 실적에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이는 것과는 대비된다. 에코프로비엠은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주력으로 한다.

전기차의 출력을 높이고 주행 거리를 늘리려면 사람의 심장 격인 배터리의 ‘지구력’이 중요하다. 양극재는 2차전지의 주요 소재로 꼽힌다. 전기 에너지를 저장·방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차전지에 쓰이는 양극재 소재는 크게 다섯 가지다. 이 중 니켈·코발트·망간(NCM)과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이 가장 많이 쓰인다.

최근 들어서는 NCA가 대세다. 고성능 전기차에 필수인 고출력·고용량 배터리를 만들려면 NCM보다 NCA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NCA는 NCM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높아 테슬라 등 주요 전기차의 배터리에 쓰인다.

에코프로비엠은 NCA와 NCM을 모두 생산한다. 2008년 한국 최초로 하이니켈계 NCA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NCA 시장은 지난해 10만 톤에서 2022년 25만 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에코프로비엠은 세계 NCA 시장에서 일본 스미토모에 이어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미토모는 테슬라에 NCA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팽창으로 에코프로비엠이 스미토모로부터 일정 부분의 파이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예측이다.

장정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에코프로비엠은 2024년을 목표로 현재 대비 3배 이상인 18만 톤 규모의 중·장기 증설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며 “상용 전기차와 가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하이니켈계 NCA 시장이 확대되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에코프로비엠은 2차전지 리사이클링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계열사 에코프로 씨엔지를 통해서다. 에코프로 씨엔지는 경북 포항 영일만 산단에 폐배터리 리사이클링(BRP)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2분기 완공 후 연간 2만 톤의 폐배터리 등에서 나오는 리튬·니켈·코발트 등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다.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은 “내년 말 BRP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양극재 가격 경쟁력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일렉포일(동박)을 생산하는 일진머티리얼즈도 배터리 수혜주로 분류된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일진그룹 소재 계열사다. 올해 전년 대비 47.65% 증가한 69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 컨센서스는 14.2% 증가한 6283억원이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의 81%를 동박에서 거둬들였다. LG화학·삼성SDI와 장기 공급 계약을 한 상태다.

동박은 구리를 얇게 만든 막이다. 2차전지를 구성하는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에 쓰인다.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 시장 규모는 연평균 30%씩 성장하고 있다. 2018년 1조원대에서 2025년 14조3000억원대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차전지용 동박은 얇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얇을수록 배터리 효율이 높아지고 차량 무게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리를 머리카락 두께의 15분의 1 수준으로 펴야 하는 만큼 고도의 공정 기술과 설비 경쟁력이 필요하다.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사용하는 고품질 동박을 제조할 수 있는 곳은 일진머티리얼즈와 SKC를 비롯해 중국 왓슨, 일본 후루카와 니폰덴카이, 대만 창춘 등에 불과하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연간 약 3만5000톤의 세계 최대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팽창하면서 이르면 내년 말부터 동박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말레이시아 공장 설비를 증설하고 있다. 동박 생산량을 내년까지 5만6000톤으로 늘려 세계 1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일진머티리얼즈 말레이시아 법인의 올 하반기 2차전지용 동박 생산 물량은 한국 익산의 1만6000톤을 웃돌면서 본격적인 레버리지 효과가 기대된다”며 “말레이시아 법인의 매출도 지난해 437억원에서 올해 1529억원, 내년 4206억원으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 룸’ 설비 업체 신성이엔지 등도 호재
‘NCA 세계 2위’ 에코프로·‘동박 강자’ 일진…K-배터리의 숨은 강자들
세계 최초로 전해액 첨가제인 F전해질(LiFSi) 생산에 성공한 천보도 2차전지 관련 숨은 진주로 꼽힌다. 전해질은 시장에서 ‘마법의 가루’로 불린다. 배터리의 수명을 늘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전해액은 배터리 작동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양극재는 리튬 이온을 만들고 음극재는 리튬 이온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전해액이 매개체가 된다. 천보가 생산하는 전해질은 전해액의 성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천보는 현대차·제너럴모터스(GM)·재규어에 F전해질을 공급한다. P전해질(LiPO2F2)은 폭스바겐과 쉐보레 등에 납품하고 있다. D전해질(LiDFOP)은 벤츠와 기아차에 주로 공급한다.

천보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전년 대비 13.19% 증가한 308억원이다. 매출은 19.34% 증가한 1615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연주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천보의 전해액 첨가제는 배터리 기술 발전 과정에서 소요량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며 “증설을 통해 설비 가동률을 높이고 있지만 공급이 달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편 배터리 기업의 증설 경쟁이 이어지면서 클린 룸 설비 업체들도 반사 이익을 보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 등 배터리 기업들은 2024년까지 연간 생산 능력을 올해의 세 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배터리는 습도에 민감해 생산 공정의 습도가 기준치를 넘어서면 제품이 폭발할 수 있다.

국내 클린 룸 설비 1·2위인 신성이엔지와 성도이엔지는 배터리 기업에 미세먼지가 없고 정밀한 습도 제어 설비까지 추가한 ‘드라이 룸’을 만들어 주고 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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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0호(2020.10.26 ~ 2020.11.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