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중고차업계 반발이 최대 관건…진출 가능 여부는 중기부 손에 달려
현대차, ‘레몬마켓’ 중고차 시장 바꾼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한국 중고차 시장에는 정해진 가격이 없다. 판매자가 부르는 게 값이다. 품질에 대한 문제도 개선되지 않는 ‘고질병’ 중 하나로 꼽힌다.

일부 중고차 판매자들이 하자 있는 차량을 속여 팔다가 구매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중고차 시장이 대표적인 ‘레몬마켓(저급품이 유통되는 시장)’으로 꼽히는 배경이다.

현대차가 이런 불투명한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들을 직접 나서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관련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정부 규제가 풀리는 대로 중고차 관련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소비자 보호해야”…시장 진출 배경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은 지난 10월 8일이다. 당시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국정 감사에 참석한 김동욱 현대차 정책조정팀 전무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완성차가 중고차 사업을 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었다. 현대차는 중고차 시장 진출을 통해 업계에 뿌리내린 ‘나쁜 관행’들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직 차량 매입이나 판매 방식 등과 같은 상세한 밑그림은 그리지 않고 있다. 중고차 시장 진출이 가능할지 여부가 아직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규제가 해결되는 대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해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3년부터 생계형 적합 업종에 지정되며 대기업의 시장 진출에 빗장이 채워졌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막아 영세 상인과 영세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초 규제가 일몰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중고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이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재신청했지만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에서는 이를 ‘부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고차 판매업의 소득 규모 및 안정적 보호 필요성에 대한 부분을 검토한 결과 생계형 적합업종의 지정은 부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중고차 시장 규모는 매년 급격하게 커져 현재 약 22조원 규모를 형성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판매 추이를 보면 중고차 판매량이 신차를 압도한 지 오래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신차는 판매량은 약 178만 대에 그쳤지만 중고차는 224만 대가 거래됐다. 하지만 늘어나는 판매량에 비례에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 역시 매년 급증하고 있어 문제다. 불법과 사기가 여전히 판치고 있고 일부 소비자는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튜브에서 중고차 허위 딜러들을 추적하고 잡는 영상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중고차 시장에 불법이 판치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수치도로 확인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중고자동차 중개·매매 관련 불만 상담 건수는 총 2만2497건이 접수됐다. 품목별 순위에서 중고차 중개·매매는 스마트폰과 정수기 대여, 침대, 점퍼·재킷류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가격이 1000만원대에 이르는 고가의 내구성 소비재 중에서는 불만이 제일 많은 상품이다.
현대차, ‘레몬마켓’ 중고차 시장 바꾼다
또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국내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조사한 결과 76.4%가 불투명·혼탁·낙후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중고차 시장이 변화하길 바라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고차업계 “단식 투쟁 불사”


아직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공은 중기부로 넘어간 상황이다. 관련 법에 따르면 생계형 적합 업종은 동반위가 지정 여부를 추천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중기부 장관이 결정하도록 규정한다.

동반위가 지난해 11월 초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 업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만큼 규정대로라면 중기부는 올해 5월 초 심의위를 열고 최종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를 유보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중고차업계의 반발 등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열린 중기부 국감에서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결국 중기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여부가 결정되는 셈인데 지금 상황만 놓고 본다면 이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여론’인데 현재 찬반 논란이 팽팽하다.

중고차업계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세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사실이 전해지자마자 성명서를 내고 “완성차 제조업체의 중고차 판매업 진출은 소상공인 위주의 현 시장을 붕괴시키고 대규모 실업을 일으킬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한층 수위를 높여 단식 투쟁을 펼치기 시작했다.

다만 소비자들은 이번만큼은 압도적으로 현대차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다. 각종 자동차 관련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간 중고차 구매 과정에서 피해를 봤던 수많은 이들이 “대기업이 나서 불투명한 중고차업계의 판매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여론들을 보면 이유를 불문하고 현대차에 대해 비판을 일삼던 이른바 ‘현까’들까지 이번 중고차 시장 진출 선언에 대해선 찬성하는 모습”이라며 “그만큼 기존의 중고차업계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서도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신규 진입에 대해 묻는 질문에 51.6%가 ‘긍정적’이라고 답해 ‘부정적(23.1%)’ 응답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그는 10월 26일 열린 중기부 종합 감사에서 “소비자들이 불편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그것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밝히며 중고차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시 독과점이 예상되는데 방치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독점 관련 부분은 엄격한 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그의 발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의 바람처럼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지금의 불투명한 시장 구조가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자동차업계에 정통한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답변이 많았다. 만약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경우 뒤를 이어 한국GM·쌍용차·르노삼성 등 한국 완성차업계들 역시 잇달아 중고차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A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중고차 시장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현대차가 실제로 시장에 진출해 중고차를 판매하면서 소비자 보호 등의 효과를 거둔다면 우리 회사 역시 (중고차 시장 진출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완성차 업계들이 자사의 간판을 내걸고 대거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기존에 소비자들이 중고차 구매 과정에서 느꼈던 문제점들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이는 기존 중고차 업체들이 큰 위기에 몰릴 수 있는 만큼 완성차업계들이 이들과의 상생을 고려하는 판매 정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1호(2020.10.31 ~ 2020.11.06) 기사입니다.]